"안녕하세요. 꽃 화분 하나 데려가시겠어요?"
예상 못했던 인사에 노트북 화면의 시선을 들어보니, 어라,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다.
두 손에 든 바구니에 가득 담긴 작은 화분의 이미지와 빠르게 포개지면서 단번에 기억이 되살아난다.
"어, 안녕하세요. 저 모르시겠어요?"
나도 모르게 약간은 들뜬 목소리로 인사했다. (물론 신기하면서도 반가운 마음에서였다.)
"네...?"
"예전에 압구정 cgv에서 뵙지 않았어요? 휴게실에서 영화 상영 기다릴 때 오셔서 꽃 파셨던 분 같은데..."
나는 괜히 다 아는데 모른 척하지 말라는 듯, 입가에 웃음까지 띠며 말을 건넸다.
그제서야 "아, 네, 그렇네요." 한다.
그새 얼굴이 좀 발그레해졌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네요. 반경이 넓으시네요."
그렇게 말하는 내가 그 시각에 자리 잡고 있었던 곳은 동네 근처 맥도날드 매장 2층. 내가 종종 애용하는 테이블이다.
"아, 그때는 제가 가장 멀리까지 가서 팔 때였어요. 주로 이 근처에서 일해요."
본의 아니게 꽃장수의 평소 행적까지 심문하는 꼴이 되었다.
답하는 이분의 표정도 점점 민망해져 갔다.
얼른 화제를 바꿨다.
"오늘은 무슨 꽃이 좋은가요?"
두 손에 나눠 든 가방 속 화분은 두 종이다. 히아신스와 수선화.
비교적 손이 덜 가도 잘 자란다는 히아신스를 택했다. 흰색으로.
지난번에도 흰색이었다. 카랑코에. 그때 처음 집에 들여와 키우게 된 식물이었다.
그때도 1만원을 주고 샀지만, 그 이상의 기쁨과 온기를 집 안 한가득 선물로 누릴 수 있어 두고두고 기특하게 여겼다.
이미 1년이 훌쩍 지났지만 지금도 사시사철 창문턱 제 자리에서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다.
처음에 흐드러지게 피었던 꽃은 한참 뒤에 명을 다한 뒤로 아직 다시 피는 건 못 봤지만 줄기와 잎은 여전히 무성하다. 올해는 꽃망울을 피워줄까 기대하고 있다.
그나저나, 참 우연 치고는 희한하다.
헤어지고 난 후에도 예전의 장면과 번갈아 떠올리며 꽃을 연결고리로 한 만남과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인생에서 우리는 무수한 것들과 한 번씩 만나고 또 헤어진다.
그렇게 생각하면 무려 두 번은 극히 드문 일이다.
불가에선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한다지만(그것도 맞는 말 같다), 두 번이라면 확률적으로도 어마어마한 인연이다.
꽃장수는 그때 처음 보는 내게 다가와 이런 요지의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꽃집을 하는 게 꿈인데요, 그 꿈을 위해 지금 모바일 영업을 하고 있는 중이에요. 하나 사 주시면 큰 힘이 되겠습니다."
요즘 세상에 그토록 무모한 꿈을 그렇게나 밝은 얼굴로 부끄러움 없이 털어놓는 사람에게 나는 내가 줄 수 있는 것을 아낌없이 주고 싶었다.
시간이 흘러 이번에 본 얼굴은 안타깝게도 그때보다는 조금 초췌해 보였다.
게다가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내 몇 마디의 말이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를 좀 무안하게 만든 것도 같았다.
계좌 이체용 통장 번호를 적은 코팅된 종이를 두고 갔다가는 다시 와서 찾아간 것은 어서 자리를 뜨고 싶은 마음이 작동한 탓은 아니었을까.
사실은, 내 마음은 절대 그렇지 않았다고, 이번에도 당신을 응원하는 마음은 한결같다고, 그러니 힘내시라고, 그 꿈이 무엇이든 꾸던 꿈을 마음껏 꾸시라고, 그렇게 따라가서 크게 말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했어야 했을까.
부디
그런 꿈을 꾸는 사람이 긴 겨울을 견디고 난 봄 날 화분의 꽃처럼 저마다 활짝 만개할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나는 꿈꾼다.
*꿈 같은 건 꿔보지도 않은 사람은 꿈꾸는 사람에게 ‘꿈 깨’라는 허튼소리를 함부로 하지는 말기 바란다. 철들며 막연히 꿈꿨던 삶을 결국 지금 살아내고 있는 사람을 나는 적어도 한 사람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예상 못했던 인사에 노트북 화면의 시선을 들어보니, 어라,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다.
두 손에 든 바구니에 가득 담긴 작은 화분의 이미지와 빠르게 포개지면서 단번에 기억이 되살아난다.
"어, 안녕하세요. 저 모르시겠어요?"
나도 모르게 약간은 들뜬 목소리로 인사했다. (물론 신기하면서도 반가운 마음에서였다.)
"네...?"
"예전에 압구정 cgv에서 뵙지 않았어요? 휴게실에서 영화 상영 기다릴 때 오셔서 꽃 파셨던 분 같은데..."
나는 괜히 다 아는데 모른 척하지 말라는 듯, 입가에 웃음까지 띠며 말을 건넸다.
그제서야 "아, 네, 그렇네요." 한다.
그새 얼굴이 좀 발그레해졌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네요. 반경이 넓으시네요."
그렇게 말하는 내가 그 시각에 자리 잡고 있었던 곳은 동네 근처 맥도날드 매장 2층. 내가 종종 애용하는 테이블이다.
"아, 그때는 제가 가장 멀리까지 가서 팔 때였어요. 주로 이 근처에서 일해요."
본의 아니게 꽃장수의 평소 행적까지 심문하는 꼴이 되었다.
답하는 이분의 표정도 점점 민망해져 갔다.
얼른 화제를 바꿨다.
"오늘은 무슨 꽃이 좋은가요?"
두 손에 나눠 든 가방 속 화분은 두 종이다. 히아신스와 수선화.
비교적 손이 덜 가도 잘 자란다는 히아신스를 택했다. 흰색으로.
지난번에도 흰색이었다. 카랑코에. 그때 처음 집에 들여와 키우게 된 식물이었다.
그때도 1만원을 주고 샀지만, 그 이상의 기쁨과 온기를 집 안 한가득 선물로 누릴 수 있어 두고두고 기특하게 여겼다.
이미 1년이 훌쩍 지났지만 지금도 사시사철 창문턱 제 자리에서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다.
처음에 흐드러지게 피었던 꽃은 한참 뒤에 명을 다한 뒤로 아직 다시 피는 건 못 봤지만 줄기와 잎은 여전히 무성하다. 올해는 꽃망울을 피워줄까 기대하고 있다.
그나저나, 참 우연 치고는 희한하다.
헤어지고 난 후에도 예전의 장면과 번갈아 떠올리며 꽃을 연결고리로 한 만남과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인생에서 우리는 무수한 것들과 한 번씩 만나고 또 헤어진다.
그렇게 생각하면 무려 두 번은 극히 드문 일이다.
불가에선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한다지만(그것도 맞는 말 같다), 두 번이라면 확률적으로도 어마어마한 인연이다.
꽃장수는 그때 처음 보는 내게 다가와 이런 요지의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꽃집을 하는 게 꿈인데요, 그 꿈을 위해 지금 모바일 영업을 하고 있는 중이에요. 하나 사 주시면 큰 힘이 되겠습니다."
요즘 세상에 그토록 무모한 꿈을 그렇게나 밝은 얼굴로 부끄러움 없이 털어놓는 사람에게 나는 내가 줄 수 있는 것을 아낌없이 주고 싶었다.
시간이 흘러 이번에 본 얼굴은 안타깝게도 그때보다는 조금 초췌해 보였다.
게다가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내 몇 마디의 말이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를 좀 무안하게 만든 것도 같았다.
계좌 이체용 통장 번호를 적은 코팅된 종이를 두고 갔다가는 다시 와서 찾아간 것은 어서 자리를 뜨고 싶은 마음이 작동한 탓은 아니었을까.
사실은, 내 마음은 절대 그렇지 않았다고, 이번에도 당신을 응원하는 마음은 한결같다고, 그러니 힘내시라고, 그 꿈이 무엇이든 꾸던 꿈을 마음껏 꾸시라고, 그렇게 따라가서 크게 말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했어야 했을까.
부디
그런 꿈을 꾸는 사람이 긴 겨울을 견디고 난 봄 날 화분의 꽃처럼 저마다 활짝 만개할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나는 꿈꾼다.
*꿈 같은 건 꿔보지도 않은 사람은 꿈꾸는 사람에게 ‘꿈 깨’라는 허튼소리를 함부로 하지는 말기 바란다. 철들며 막연히 꿈꿨던 삶을 결국 지금 살아내고 있는 사람을 나는 적어도 한 사람 알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