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두루미 탐조 북캠프 안내 · 놀러 오기 참여도 가능합니다 · 북클럽 오리진은 어떤 모임?

헤드 랜턴과 달빛

봉천동 조지오웰 프로필 봉천동 조지오웰
2026-01-04 20:52
해가 뜨지 않은 이른 아침 산 초입에 들어섰다. 나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헤드 랜턴을 꺼내 우리의 앞길을 밝혔다. 한 3분 걸었나? 일행이 랜턴을 꺼도 잘 보일 거라고 해서 불을 껐다. 아주 잠깐 눈앞이 어두워졌으나 2..3..4 초가 지나니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홍체가 열리고 그 안으로 달빛이 스며들어왔다. 랜턴을 착용했을 때는 딱 빛이 비추는 그만큼만 보였지만, 이제는 더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왼쪽에 조용히 흐르는 계곡 오른쪽에 나무, 내가 가지 않을 또 하나의 갈래 길. 우리는 놀라워했고 일행이 말했다. 사람들은 인간의 감각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모르고 도구에 너무 쉽게 의존한다고 말이다. 우린 다시 걷기 시작했다. 마주치는 모든 등산객은 랜턴을 키고 있었다. 여명이 트고 이제 정말 의심의 여지 없이 모든 게 잘 보였지만 등산객들은 랜턴에 의지하고 걸었다. 바로 뒤에서 비추는 랜턴에 눈이 부셔 앞으로 먼저 보내드렸다. 랜턴을 착용하지 않은 우리의 홍채도 수축하게 만들어, 아름다운 여명과 달빛을 선명하게 보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랜턴은 실용적이다. 유용하다. 발밑의 위험 요소를 식별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무용한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달빛 별빛 그리고 여명.. 그 아름다운 것들로 고개를 돌리면 불빛도 따라와 흐릿하게 만든다. 랜턴의 강한 빛에 놀란 달빛 별빛은 숨어버린다. 물론 칠흑같이 어둡다면 실용과 안전에 집중해야 하지만, 우리에게는 충분한 빛이 있었다. 

우리는 중간중간 고개를 돌려 붉은 여명과 선명한 달에 감탄했지만, 랜턴을 킨 사람들은 딱 한걸음 내디딜 땅에만 집중했다. 불빛은 시선을 끌고, 헤드 랜턴의 특성상 시선은 불빛을 불러온다. 이 '시선'과 '빛' 사이에 인력이 맞물려 아름다움으로 고개를 돌릴 수 없게 된다. 주위는 충분히 밝고 발아래에는 규칙적인 나무 계단이 있더라도 말이다. 도구는 필요해서 쓰이기도 하지만, 도구를 사용하는 순간 필요를 강요당하게 된다. 설령 필요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내가 도구를 쓰는 것인가? 도구가 나를 쓰는 것인가? 

위 모든 생각이 '헤드 랜턴 = AI', '시각 감각 = 쓰기 감각'으로 연결됐다. 주위 사람들이 편지, 감사 글, 카카오톡마저 AI로 쓰는 것을 보면서 참 씁쓸해지는 요즘이다. 사람의 '쓰기(생각) 감각'은 얼마나 뛰어난가. AI라는 강렬하고 당장 실용적인 빛에 의지하기보단, 내면 깊숙한 곳에서 은은하게 뿜어져 나오는 나만의 달빛에 집중하자. 달빛이 강렬한 AI 빛에 가려지지 않도록, 달빛이 세상에 반사되어 돌아오도록. 반사된 빛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탐구할 수 있도록, 더 넓은 더 우연한 세상을 내게 드러내도록.. 무용한 것들까지도
목록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