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뒷세우스보다 8년을 더 헤맨 사내

wanderlust 프로필 wanderlust
2026-10-30 08:28
'걸어서 세계 속으로'라는 TV 프로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도 계속 하는지 모르겠다. 그런 프로는 지난 방영물을 다시 봐도 좋을 것이다.
그 프로의 제목을 보면서, 나도 걸어서 지구를 한 바퀴 돌아봤으면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냥 지나가는 생각이 아니라 아주 조금은 진지하게 어림으로 시간 계산을 해 본 적도 있다.
언젠가 얼어붙은 바이칼호 빙판을 걸을 때는 아주 오래 전 호모 사피엔스가 대륙을 가로질러 북동쪽 끝까지 가서 베링해협을 건너 미주로 진출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암튼 걸어서 지구를 여행하는 것은 내 영원한 로망이다.
그런데 이걸 실행에 옮긴 사람이 나타났다.

어제 뉴욕 타임스를 읽는데 '28년 동안 전 세계를 횡단한 끝에 이제 곧 집에 도착할 예정'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뜬 것이다.
칼 버시비라는 영국 남성인데 29세 때 여행을 시작해서 이제 57세가 되어 집에 돌아온다는 얘기였다. 오뒷세우스보다 8년을 더 긴 귀향 여행을 한 셈이다. 오뒷세우스에게 아들 텔레마코스가 있었던 것처럼, 칼 버시비라는 남성에게도 여행을 떠날 때 여덟 살짜리 아들 하나가 있었는데 지금은 36세가 되었고 12세 딸(버시비에겐 손녀)을 두고 있다고 한다.
기사 내용을 발췌해 옮기면 다음과 같다.

칼 버시비의 세계 일주 도보 여행 계획은 생일 카드에 적힌 한 줄의 메모에서 시작되었다.
1990년대 중반 버시비는 영국 육군 낙하산병으로 복무 중이었는데 지구력 테스트에 푹 빠져 있었다. 그는 도보로 이동할 수 있는 최장 거리를 찾으려 했지만, 수천 마일에 그치는 기존 선택지 중 어느 것도 자신에겐 충분히 도전적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그의 아버지가 생일 카드에다, 겨울에는 얼어붙는 알래스카와 러시아 사이 베링 해협을 횡단해 보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제안했고, 그 길로 4개 대륙을 가로지르는 여행에 나서게 되었다.

버시비는 검은색 마커로 벽에 걸린 지도 위에다 자신이 살고 있던 영국에서 출발해 유럽과 아시아를 거쳐 해협을 건너 북미로, 그리고 남미 최남단까지 이어지는 선을 그어 봤다. 자신이 찾던 바로 그 경험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는 남미로 비행기를 타고 건너가 집으로 걸어서 돌아오는 여정을 시작했다. 칠레 남단 푼타아레나스에서 출발할 때는 수중에 약 500달러의 돈이 있었고, 그가 '야수Beast'라고 부르는 개조된 골프 카트에 캠핑 용품, 의류, 세면도구, 식량, 물을 실었다.

이달 초 그는 영국 해협을 헤엄쳐 건너, 인생의 절반을 타국에서 보낸 끝에 고국에 도착했다. 1998년 11월, 그가 29세였을 때 칠레 파타고니아 남부에서 시작던 여정은 다음 주 중 영국 헐에 있는 어머니 댁에 도착하는 것으로 막을 내릴 계획이다. 그때면 그는 57세가 된다.

기나긴 여정은 파란만장했고 별별 일들을 다 겪었다. 다리엔 갭의 정글부터 시베리아의 툰드라에 이르기까지 세계에서 가장 혹독한 지형들을 횡단했다. 도중에 체포되고, 추방당하고, 빈털터리가 되고, 길을 잃고, 포기당하는 일을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겪었다. 전쟁, 경제 붕괴, 팬데믹 등으로 인해 중단되기도 했다. 그런 중에도 그는 이동 수단을 이용하지 않겠다는 수칙을 고수했다고 한다. 그의 여정에 대한 소문이 퍼지자 사람들은 차를 타고 지나가며 그에게 음식과 돈을 건네주기 시작했다.

그는 “처음 몇 년간은 소년들의 모험 같은 꿈을 사는 것 같아서 정말 좋았지만 그 후에는 정말 고된 일상이 되어버렸다”고 회상했다. “정말, 미치도록 지루했다”고 표현한 길 위의 삶에서 벗어나 기력을 회복하기 위해 몇 주 또는 몇 달씩 멈춰 서곤 했다. 2002년 미국 국경을 넘어 애리조나주 노갈레스에 도착했을 때는 위협을 느끼기도 했다. 당시 9·11 테러가 발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라 모두가 매우 예민한 상태였다. 경찰은 그를 고속도로에서 쫓아내거나 텐트를 옮기게 하거나 공공장소에서 몰아내곤 했다.

미국에서는 웹 호스팅 회사와 신발 깔창 브랜드를 비롯한 후원사들을 확보해 매달 수백 달러의 수입을 올리기도 했다.

2003년 캐나다에 도착했을 때 큰 깨달음을 얻었다. 수년 동안 카트를 끌고만 다니다가, 어느 날 우연히 뒤에서 밀어보게 되었다. “실수로 밀어보았는데, ‘이쪽이 더 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밀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힘든 구간은 베링 해협이었다. 2006년 3월 그와 프랑스계 미국인 모험가 디미트리 키퍼는 알래스카에서 베링 해협의 변화무쌍한 광활한 얼음 위를 가로질러 러시아 쪽으로 가기 시작했다. 2주 동안 매일 밤 야영지를 마련할 가장 큰 얼음 덩어리를 찾아다녔다. 한 번은 발밑에서 얼음이 갈라지기 시작해 한밤중에 텐트에서 대피하기도 했다. 운 좋게도 마지막 며칠은 날씨가 좋아서 무사히 러시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곳 국경 경비대원들은 그들이 걸어서 해협을 건넜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고, 당국에 등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두 달간 구금했다.

특히 흥미로운 대목은 이 부분이다.

영국 해협을 헤엄쳐 건너고 난 다음 날 아침 그는 엄청난 상실감을 느끼며 잠에서 깼다고 했다. 항상 너무나도 멀게만 느껴졌던 여정의 끝이 눈앞에 다가오자, 오히려 불안을 느끼게 된 것이다. “살아갈 목적을 잃게 될 것 같아요. 모든 게 갑작스럽게 끝나려 하고 있어요.”

그는 앞으로 뭘 할지 아직은 모르지만, 과학 교육자가 되는 데 관심이 있다고 했다. 그는 여정에서 가장 놀라웠던 점이 낯선 사람들의 친절함이었다고 했다. (크세니아!)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숙소와 음식, 도움을 주거나 포옹을 건넸다. 그는 “모든 문화, 모든 나라”에서 따뜻한 환영의 마음을 느꼈다고 했다. 그 사실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다고 했다. 이미 여정 중에도 강연자로서 젊은이들에게 그런 메시지를 전파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학교 아이들 앞에 서서 세상이 여러분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곳이라고 말해줄 수 있다는 게 큰 기쁨입니다.”

나는 그가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하는 체험을 했다는 점에서 참 근사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그는 긴 여행이 끝나간다고 생각하니 삶의 목표가 사라지는 것 같고, 당장엔 뭘 해야 할지도 막막하다고 했지만, 지금까지 28년의 여행을 돌아보며 그때그때 겪은 숱한 일과 소감과 생각들을 차분히 글로 반추하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남은 생도 좋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 다양한 삶이 많다.
목록

댓글

로그인하고 이야기에 함께해 주세요. 로그인

아직 댓글이 없어요. 가장 먼저 생각을 나눠보세요.

모집 중 3
고정글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