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음과 시시한 삶

더듬이 프로필 더듬이
2026-03-01 11:14 (수정됨)
기계의 쉽고 빠르고 편리함에 점점 길들여지고 익숙해져 인간은 그 사람만의 땀과 노력과 수고와 체험과 애환을 통해 이룰 수 있었던 개성적인 형체와 이야기를 잃어간다.

기계는 쉽고 빠르고 편리해져 가지만 세상 전체는 그리고 우리의 삶은 결코 더 행복해져 가는 것 같지는 않기에 기계가 주는 쉽고 빠르고 편리한 느낌은 작위적이고 수상쩍다. 진실을 가리거나 흐리게 하고 그것과 멀어지게 해 진짜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아 보지 못하게 한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 나오는 존의 절규가 예전엔 과장된 거라 생각했다. 점점 그렇지 않은 쪽으로, 그렇지 않을 것 같은 쪽으로 다가간다.

나는 쉽고 빠르고 편리한 (그래서 더없이 가볍고 얄팍하고 태연한) 삶과는 반대되는 그런 사람이, 그런 이야기가 그립다. 이대로라면 그 그리움은 더 짙어갈 것 같다. 그러니 내가 그런 인간이 되고 싶고 그런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해진다.

인간 정신의 일렁이는 불꽃을 살려 나가는 것, 지금 내 관심사는 그것이다.

유제프 차프스키는 포로수용소에서 기억만으로 진행한 프루스트 강의 도중 이런 말을 한다.

“이른바 양립 불가능한 것들이 서로 얽혀 짜여 있던 당시 예술의 형식을 훨씬 고양된 형태로 표현한 것이 바로 드가였다.”

양립 불가능한 것들이 얽혀 있는 예술의 형식을 한층 높은 형태로 표현하는 것. 매 시대를 마주한 정신의 과제다. 이때 고통과 희열이란 일란성 쌍생아 같은 것이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고전주의 기법의 붓질 자국 하나 없는 깨끗한 표면이나 완벽한 균형을 갖춘 구성, 그리고 추상성 같은 원칙과 규칙을 멸시하며 자제한 반면, 드가는 그런 것에 얽매이지 않았다. 드가는 조화와 구성이라는 추상성과 물리적 실재에서 느끼는 즉각적 감성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달리 말해, 그는 평생 고전주의의 전통과 인상파 화가들이 행한 탐색을 연결하려고 노력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화자-주인공은 당대 예술에 관한 한 드가에게 최고의 정통성을 부여한다. 프루스트의 관점은 이런 19세기 말의 경향에서 나온 것이다. 19세기 말은 프랑스 예술이 절정에 아르러 수많은 천재적 작가들을 배출한 시기다. 시대를 다 찢어발길 것처럼 뿌리 깊은 모순과 대치가 만연했지만 예술은 이를 모두 극복하고 마침내 어떤 종합의 단계에 이르렀다. ‘추상성’과 ‘실재 세계를 즉각적으로 받아들이는 정확한 감각’이 하나가 된 것이다. 이런 ‘종합’은 추상적이고 지적인 요소들로 만들어내는 개념에서가 아니라, 한 분석가의 매우 사적인, 못내 예민한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런 개인이어야 한다. 그런 경험이어야 한다. 바로 39년을 경이롭게 살다 간 척의 세계다. 그런 척의 세계엔 수학도 있지만, 수학적 세계엔 추상적 개인은 있어도 ‘경이로운 척’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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