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생을 꿈꾸는 기생충

서해 프로필 서해
2026-07-14 13:41 (수정됨)
어제 그 남자는 청양고추를 베어 물었는데, 속을 가득 채운 시꺼먼 가루를 발견했다. 씹던 건마저 씹으면서, 자신의 치아 모양으로 베어진 고추를 관찰했다. 고추 표면에는 작은 구멍이 뚫려있었다. 아뿔싸. 고추가 자라날 때, 정체 모를 벌레가 안에 들어가 안에서 기생해온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게 맞다면, 남자가 씹고 있던 건 벌레 사체와 똥이었다. 놀랍게도, 그는 개의치 않았다. 어째 생채기 하나 없는 고추를 씹어 먹을 때보다도 태연한 듯했다. 은은한 미소까지 띠고 있을 정도였으니까. 남자는 생각했다.
‘기생충은 자생하기 위해서라면, 기생하는 수밖에 없겠구나.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그게 고추라고 할지라도.’. 
벌레의 터전과 그 시체를 인정 없이 삼켜버린 데에는 유감이었으나, 남자는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이 자연과 꼭 닮아있다는 사실이. 부모님 사시는 아파트 끝방에서 기생하며, 똥만 싸놓는 자신이, 꼭 그랬다. 그렇게 살다가 언젠가는 누군가 자신을 보지 못하고, 터전과 자신이 희생 당할 수도 있지만,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자신을 삼켜버린 자를 숙주 삼아서 기생하면 되니까! 여태 꿈 같은 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건만. 기생함으로 이룰 수 있는 꿈이라면, 꿔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남자는 오늘부로 더욱이 방에 틀어박혀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공책에 글을 끄적였다.
‘자기 앞을 가로막는 돌을 두꺼비는 그저 돌아서 간다.* 
보석은 돌을 깨부수고, 빛난다......’

*샤를 크로의 시를 차용한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일부를 차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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