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에 집을 나섰다. 아직 해가 뜨기도 훨씬 전이다. 더구나 일요일이다. 사방이 어둡다. 도시가 깨어나기 전이다. 이럴 때 홀로 길을 나서는 신선한 느낌이 나는 좋다. 지하철 안은 드문드문 사람들이 서서 차를 기다리고 있다. 여기서 버스 터미널까지는 금방이다. 내리기 무섭게 편의점에 먼저 들러 샌드위치와 바나나 우유를 사서 차에 오른다. 가는 길에 먹을 아침 먹거리다. 따뜻한 커피를 잠시 생각했다가 모임에 가서 마실 걸 생각해서 참았다.
버스가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동안 책을 펼쳐 든다. 가끔 차창 밖 풍경도 봐 가며. 세상이 밝아 오는 풍경은 언제 봐도 좋다. 좋은 아침이다. 오늘도 어김 없이 주어진 하루에 감사한다. 고속버스에서 내려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한다. 잠시 후 버스가 온다. 이 시간엔 앉아 갈 수 있다. 이제는 여러 번 타서 익숙한 노선의 버스다.
그런데, 오늘 따라 버스 안에 희한한 것이 눈에 띈다. 가만히 보니 낙엽이다. 더 자세히 보니 생 낙엽은 아니고 합성수지로 만든 장식용 낙엽이다. 버스 곳곳에 붙어 있다. 누군가 장식해 놓은 거다. 그러고 보니 낙엽이 떨어지는 계절에 와 있다.
누가 붙였을까. 기사 아저씨? 아니면 버스 회사의 전담 직원? 이 버스 회사에는 버스 실내 환경을 꾸미는 사람을 따로 둔 걸까? 어찌 됐건 사람이 했을 것이다. 그 마음을 생각한다. 별 것 아닌 일일 수 있다. 시내 버스야 노선에 따라 목적지까지 승객을 안전하게 잘 데려다 주면 된다고 생각하고 말 수도 있다. 대개는 그렇다. 더구나 요즘은 시내 버스 안까지 온갖 광고와 홍보물로 도배가 되다시피 한다. 한 푼이라도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런데 이 버스 안은 계절에 맞는 장식을 해 놓았다. 인간으로서 산다는 게 뭔지 아는 사람의 마음을 본 것 같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남들은 사소하게 여길지 모르지만 사소하지 않게 대하고 살아가는 사람. 상상 속 동질감에 덩달아 기분이 흐뭇해진다. (그 사소한 것들이 사실은 지금 이 순간 내게는 전부이고 모든 것이다.) 모임에서도 버스에서 본 낙엽 이야기를 함께 나눴다. 다들 그 누군가의 마음에 깊이 공감하는 눈치다. 그밖에 서로가 일상에서 본 것과 느낀 것들을 나누는데 하나같이 내 삶에 새로운 의욕과 활기와 운치를 불어넣어 준다. 그리고 책 이야기. 다양성과 깊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세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다.
어떤 생각을 붙들고 문제를 풀어보는 ‘의식의 창’은 약 평균 7초간 열린다. 그러나 우리가 누군가에게 말을 하고 있는 동안이라는 커다란 예외가 있다. 대화하는 중에는 생각을 붙들 수 있고 어떤 문제에 대한 성찰을 여러 시간 끝도 없이 이어갈 수 있다. 우리가 혼자서 뭔가를 파악하려고 애쓸 때에도 누군가와 토론하거나 그에게 설명하는 상상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간의 생각은 원천적으로 대화적이다.. 인간은 서로 토론할 때, 상대방의 견해를 흔들려고 애쓸 때, 혹은 공통의 문제를 풀어보려고 할 때에야 자의식이 완전히 발휘된 상태가 된다.
/데이비드 그레이버 & 데이비드 웬그로, <모든 것의 새벽> 중에서
*반짝 딴 생각
인류의 세계 인식에서 천동설로부터 지동설로의 이동은 획기적인 전환이었다. 마찬가지로 자기 인식에서 가장 큰 깨달음은 자아 중심적 시각에서 비자아=타자/세계 중심으로의 전환이다. 내 중심으로 안간힘을 쓰는 게 아니라 내 밖의 것(타자와 세상)을 잘 살피고 그 흐름에 맞추고 흐름을 타게 되는 경지. 수영을 할 때도 나의 억지스런 힘을 빼고 물결의 흐름에 몸을 내맡기고 팔다리를 맞춰 부드럽게 휘저을 때 비로소 물을 타면서 나아가게 되는 것과 같다.
버스가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동안 책을 펼쳐 든다. 가끔 차창 밖 풍경도 봐 가며. 세상이 밝아 오는 풍경은 언제 봐도 좋다. 좋은 아침이다. 오늘도 어김 없이 주어진 하루에 감사한다. 고속버스에서 내려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한다. 잠시 후 버스가 온다. 이 시간엔 앉아 갈 수 있다. 이제는 여러 번 타서 익숙한 노선의 버스다.
그런데, 오늘 따라 버스 안에 희한한 것이 눈에 띈다. 가만히 보니 낙엽이다. 더 자세히 보니 생 낙엽은 아니고 합성수지로 만든 장식용 낙엽이다. 버스 곳곳에 붙어 있다. 누군가 장식해 놓은 거다. 그러고 보니 낙엽이 떨어지는 계절에 와 있다.
누가 붙였을까. 기사 아저씨? 아니면 버스 회사의 전담 직원? 이 버스 회사에는 버스 실내 환경을 꾸미는 사람을 따로 둔 걸까? 어찌 됐건 사람이 했을 것이다. 그 마음을 생각한다. 별 것 아닌 일일 수 있다. 시내 버스야 노선에 따라 목적지까지 승객을 안전하게 잘 데려다 주면 된다고 생각하고 말 수도 있다. 대개는 그렇다. 더구나 요즘은 시내 버스 안까지 온갖 광고와 홍보물로 도배가 되다시피 한다. 한 푼이라도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런데 이 버스 안은 계절에 맞는 장식을 해 놓았다. 인간으로서 산다는 게 뭔지 아는 사람의 마음을 본 것 같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남들은 사소하게 여길지 모르지만 사소하지 않게 대하고 살아가는 사람. 상상 속 동질감에 덩달아 기분이 흐뭇해진다. (그 사소한 것들이 사실은 지금 이 순간 내게는 전부이고 모든 것이다.) 모임에서도 버스에서 본 낙엽 이야기를 함께 나눴다. 다들 그 누군가의 마음에 깊이 공감하는 눈치다. 그밖에 서로가 일상에서 본 것과 느낀 것들을 나누는데 하나같이 내 삶에 새로운 의욕과 활기와 운치를 불어넣어 준다. 그리고 책 이야기. 다양성과 깊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세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다.
어떤 생각을 붙들고 문제를 풀어보는 ‘의식의 창’은 약 평균 7초간 열린다. 그러나 우리가 누군가에게 말을 하고 있는 동안이라는 커다란 예외가 있다. 대화하는 중에는 생각을 붙들 수 있고 어떤 문제에 대한 성찰을 여러 시간 끝도 없이 이어갈 수 있다. 우리가 혼자서 뭔가를 파악하려고 애쓸 때에도 누군가와 토론하거나 그에게 설명하는 상상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간의 생각은 원천적으로 대화적이다.. 인간은 서로 토론할 때, 상대방의 견해를 흔들려고 애쓸 때, 혹은 공통의 문제를 풀어보려고 할 때에야 자의식이 완전히 발휘된 상태가 된다.
/데이비드 그레이버 & 데이비드 웬그로, <모든 것의 새벽> 중에서
*반짝 딴 생각
인류의 세계 인식에서 천동설로부터 지동설로의 이동은 획기적인 전환이었다. 마찬가지로 자기 인식에서 가장 큰 깨달음은 자아 중심적 시각에서 비자아=타자/세계 중심으로의 전환이다. 내 중심으로 안간힘을 쓰는 게 아니라 내 밖의 것(타자와 세상)을 잘 살피고 그 흐름에 맞추고 흐름을 타게 되는 경지. 수영을 할 때도 나의 억지스런 힘을 빼고 물결의 흐름에 몸을 내맡기고 팔다리를 맞춰 부드럽게 휘저을 때 비로소 물을 타면서 나아가게 되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