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각계각층의 사람들 사이에서, 시간이 수십 년 전, 심지어 코로나 팬데믹 이전보다 더 빨리 흐르고 있다는 확신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모두가 시간의 흐름이 얼마나 빨라졌는지 의아해하며 이 기이한 속도에 혼란을 느낀다. 집단적인 인지 부조화 같다. 시간의 흐름을 가늠하는 우리의 내적 메커니즘에 뭔가 변화가 생긴 걸까.
원문: Your Perception Of Time Is, In Fact, Warped
원문: Your Perception Of Time Is, In Fact, Warped
시간 인식의 상대성 이론
1890년대 프랑스 철학자 폴 자네는 인간은 나이에 비례해 시간을 경험한다고 제안했다. 10살 때 1년은 전체(10년)의 10%를 차지하므로 그만큼 시간을 느리게 그만큼 생생하게 받아들인다. 반면 50세가 되면 전체(50년)의 2%에 불과하므로 그만큼 덧없게 느낀다.
이어받아 윌리엄 제임스도 <심리학 원리>에서 매일같이 거의 새로운 경험을 하는 젊은이들에게는 시간이 더 느리게 흐른다고 주장했다. 이때의 “인식은 생생하고, 기억력은 강하며, 따라서 그 시절에 대한 우리의 회상은 빠르게 흥미로운 여행을 한 때와 마찬가지로 복잡하고, 다채로우며, 길게 이어진다”고 썼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자주 마주치는 몰입도 높은 경험들이 뇌에 처리할 거리를 더 많이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런 경험은 그 순간뿐만 아니라 시간이 지나서도 오랫동안 지속된다. 어릴 적 모험은 끊임없이 새롭고 자극적이기에 회상했을 때도 더 풍요롭고 깊고 알차게 느껴진다.
반면,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반복된 패턴과 일상에 깊이 빠져들면서 새로운 정보를 처리하거나 새로운 기술을 기르거나, 지성을 자극하는 낯선 상황을 헤쳐 나갈 기회를 예전만큼 얻지 못하게 된다. 말하자면 일상을 기계적으로 살아가며, 의식은 점점 더 무뎌지고 밋밋한 상태로 빠져든다. 그 결과 “매일 매주가 기억 속에서 내용 없는 단위로 평탄해지고, 세월은 공허해지며 무너져 내린다”고 제임스는 지적했다.
지금도 그의 통찰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오늘날 많은 연구자들은 우리가 시간을 길거나 짧게 느끼는 방식이 뇌의 활동성과 몰입도, 그리고 기억을 형성하는 정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의 감각을 자극하는 이국적인 풍경이나 소리, 질감, 음식 같은 것을 보고, 듣고, 만지고, 맛볼 때, 새로운 기억을 형성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아지고, 이런 기억들은 우리가 시간의 흐름을 회고적으로 평가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새롭거나 흥미롭거나 무섭거나 본능적 의미가 담긴 것들만 기억하며, 그 기억을 토대로 시간에 대해 회고적을 인식한다.” 맨체스터대 심리학자 루크 존스의 설명이다.
2023년 베일러 대학 연구진이 팬데믹이 절정에 달했을 때 수집된 갤럽 설문 자료를 활용해 분석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시간이 빨라지기도 하고 느려지기도 하며, 하루하루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뒤섞이는 등 여러 측면에서 ‘시간적 방향감의 상실’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 <Time & Society>에 실린 우루과이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또 다른 연구에서도, 참여 학생의 80%가 팬데믹 기간 동안 시간이 빨라지거나 느려졌다고 느꼈다. 흥미로운 점은 사람들이 봉쇄나 기타 공중보건 조치로 인해 여유 시간이 지나치게 많아 지루함을 느낀 경우, “그 순간엔 시간이 느리게 흘렀지만 뒤돌아보면 순식간에 지나간 것처럼 느껴졌다”는 점이다.
이는 시간 지각의 핵심적인 측면을 시사한다. 즉, 우리는 그 순간의 특정 요소들-우리가 얼마나 몰입했고, 얼마나 자극을 받았는지-을 바탕으로 시간의 속도를 가늠하는 반면, 되돌아볼 때는 또 다른 기준(기억의 내용이 얼마나 형성되었는지)을 사용해 시간을 평가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팬데믹 기간 중 할 일이 거의 없이 집에 갇혀 지낸 사람들은 최악의 상황을 겪었다고 할 수 있다. 하루하루의 공허함(하는 일 없음)은 시간을 거북이 걸음처럼 느리게 만들었고, 경험의 단조로운 반복은 기억을 거의 남기지 않아, 제임스가 표현한 대로 광범위한 시간이 “텅 비어 무너져 내리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2022년 연구의 공동 저자인 독일 심리학자 마르크 비트만은 하루하루가 비슷비슷해 보여 시간 감각을 잃게 되는 것을 ‘흐릿한 날(Blursday)’이라 부른다. 그럴 때 우리는, 말하자면 ‘기계적으로 살아가며, 의식은 점점 더 무뎌지고 침체된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지금 2026년에 가장 중요한 질문은 팬데믹이 우리의 시간 경험 방식에 영향을 미쳤는지 여부가 아니다. 이미 수많은 학술 논문들은 그 영향을 입증하고 있다. 이제 문제는 우리의 시간 지각이 그 세대적 사건 이전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갔는지 여부다.
'생체 시계'는 없다
시간 지각 연구자들은 그동안 인간이 주관적으로 시간의 길이를 어떻게 측정하는지 설명하려고 노력해 왔지만 답하기 어려웠다. 우리에게는 시간을 감지하는 특화된 기관이나 체계가 없기 때문이다. 2016년 한 논문이 설명하듯이, 우리에게 “심리적 시간이란 추상적 개념이며, 사건들의 일관성을 설명하기 위해 우리가 만들어낸 마음 기능의 산물 또는 부수적 현상이다.”
그럼에도 연구자들은 한동안 인간이 시간을 측정하는 특정 메커니즘, 즉 일종의 ‘내부 시계 모델’을 갖고 있다고 확신해 왔다. 이 모델 이론은 인간이 시간을 어떻게 파악하는지에 대한 편리한 설명 수단이 되었지만, 생체 시계 모델의 문제는 확실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다른 학자들은 대안 이론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2022년 서섹스 대학교 연구진이 우리가 주변 세상의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과 시간의 흐름을 측정하는 방식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음을 확인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참가자들에게 짧은 동영상을 보여주는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뇌를 자극한 동영상 속의 활동량과 시간 경과에 대한 주관적 인식 간에 강한 상관관계가 나타났다. 동영상에서 일어난 일이 많을수록 시각 처리와 관련된 뇌 활동에 큰 변화가 일어나 더 많은 시간이 지났다는 감각을 만들어 냈다.
연구진은 우리가 시간을 “지각 처리 계층 구조 내에서 두드러진 변화의 누적”을 바탕으로 판단한다고 결론지었다. 공동 저자인 맥신 셔먼은 “뇌는 그저 얼마나 많은 ‘사건’이 일어났는지 ‘세어’ 볼 뿐”이라며 “이는 매우 직관적인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이 논문의 핵심 시사점 중 하나는 우리의 시간 지각이 어떤 고정된 지속적인 시간 감각에 기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실 우리에게는 일시분초를 측정하는 ‘내부 시계’란 것은 없다. 대신 우리는 외부 환경을 시간의 흐름을 가늠하는 지표로 활용한다. 감각 피질이 포착하는 ‘사건’이 많을수록, 우리는 더 많은 시간이 흐른 것으로 인식한다.
시간 지각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관점은 오늘날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시간이 빨라지는 것처럼 느끼는지를 설명해 줄 수 있다. 우리는 하루 24시간 동안 동영상, 이미지, 알림, 그리고 쏟아지는 콘텐츠의 홍수에 휩싸여 지낸다. 이로 인해 우리 뇌는 10년이나 20년 전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처리해야만 한다.
라스베이거스 네바다 대학교의 신경과학자 제임스 하이먼은 새로운 시간 지각 이론을 지금의 미디어 생태계에 적용하면,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삶의 속도에 당혹스러워하는지 설명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끊임없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만약 우리 뇌가 단순히 사물을 세는 방식으로만 시간을 파악할 수 있다면,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경험을 많이 하면 할수록, 뇌에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우겨넣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텍스트와 이미지, 그리고 푸른 빛에 휩싸일 때, 우리 뇌는 시간을 측정하는 데 사용하는 내부 메커니즘의 속도를 가속화하게 되고, 그 결과 시간은 점점 더 빠르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
“이번 주는 순식간에 지나갔어”라고 말할 때, 우리는 회고적으로 시간을 인식을 한다. 이런 판단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생생한 기억을 얼마나 많이 형성했는지가 된다.
기억은 우리의 과거를 장식하는 나무와 관목, 굽이굽이 솟은 봉우리들이며, 과거가 속이 텅 비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막아준다. 회고적 시간 인식은 “새롭거나, 흥미롭거나, 무섭거나, 본능적인 의미를 지닌 것들”에 많이 의존한다는 점에서 다른 형태의 시간 판단보다 훨씬 더 주관적이다. 이러한 자극에서 비롯된 기억들은 눈 위에 남긴 우리의 발자국과 같아서 과거에 견고함과 실재감을 부여한다.
우리의 기억은 이 정보 과포화 세상의 핵심적인 아이러니를 이해하는 열쇠다. 워릭 로즈붐의 이론에 따르면, 시각 정보가 넘쳐나는 지금의 환경에서 보낸 시간은 본래 길고 탄탄하게 느껴져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면에서 최악의 상황에 처해 있다.” 매 순간 우리를 유혹하며 감각 피질을 자극하는 앱, 게임, 동영상의 눈부신 별무리를 마주하지만, 그것들은 기억 형성에 필수적인 지워지지 않는 경험을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루가 끝날 무렵 뒤돌아보면 거기에는 의미 있는 내용이 없다. 그저 똑같은 흐릿함, 똑같은 내용들뿐이고, 그 어떤 독특한 점도 없다.”
스마트폰 화면에서 앱을 이리저리 넘기거나 인스타그램 릴스로 감각을 마비시키는 행위는 시간에 대한 우리의 회고적 인식을 빈곤하게 만들 수 있다. 디지털 미디어를 사용할 때 우리는 자신을 잃기 십상이다. 앱 사이를 미친 듯 이리저리 뛰어다니지만 그 경험들은 그냥 사라져 버리기에 기억에 저장했다가 나중에 떠올릴 수 없게 된다.
화면을 쉴 새 없이 훑어보고 내리고 넘기는 행동은 기억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방식으로 뇌를 활성화하기보다는 오히려 뇌를 침묵하게 만들거나 심지어 마비시킬 가능성이 더 높다. 그 결과 틱톡에서는 한 시간이 10분이나 15분처럼 느껴질 수 있다. 시간의 깊이와 충만함을 주는 “복잡하고, 다채로우며, 길게 이어지는” 감각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모든 것이 격렬한 소용돌이 속에서 뒤섞여, 지속 가능한 수준에서 감각을 자극하기보다는 압도해 버린다.
더 확장해 보면, 하루에 몇 시간씩 소셜 미디어에 시간을 쏟는 것이 우리의 시간 감각을 왜곡해, 깨어 있었던 시간이 실제보다 훨씬 짧게 느끼지도록 만든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몇 달, 몇 년에 걸쳐 이토록 많은 시간을 가짜 같은 디지털 얽힘 속에 내어주다 보면, 우리 삶은 몇 년이 그냥 깎여 나간 듯한 결핍감을 느끼게 될 수 있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소셜 미디어는 우리의 회고적 시간 인식을 단절시키는 데 유독 효과적이다. 여기서 오랜 시간을 보냈을 때 우리 마음의 눈은 최근 경험을 이해하기 위해 끌어오는 추상적인 영역이 황폐해지고, 궁극적으로 우리의 과거가 되는 희미한 기억의 궁전 속으로 통합할 감성적 단서들을 잃게 된다. 그 결과 많은 사람이 이제는 지속적인 기억상실의 현재에 갇혀 있다. 이곳은 인공의 생명으로 펄떡거리지만,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향하는지 헤아릴 수 없는 곳이다.
‘시간 왜곡’은 왜 일어날까
오늘날 시간이 예전에 비해 더 빨리 흐른다는 집단적 인식은 많은 과학자들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유럽의 심리학자들은 ‘유럽 디지털 시대의 시간 경험(Time Experience in Europe’s Digital Age, 약칭 TIMED)’이라는 연구 컨소시엄까지 결성했다. 독일, 스페인, 스위스, 영국 등지의 최고 시간 지각 연구자들로 구성된 이들은 인터뷰, 설문조사, 실험을 통해 기술 사용 방식이 우리의 시간 지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탐구하고 있다.
TIMED는 지난 3년 동안 전 세계 수만 명 참여자의 데이터를 수집해 몇 가지 중요한 결론을 도출해 냈다. 첫째, 기기나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은 시간이 더 빨리 흐른다고 느낀다. 이 상관관계의 핵심 요인으로는 기억을 꼽았다. 디지털 기술 사용이 사람들의 경험 폭을 제한하고 우리가 가장 자주 기억하는 사건들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앱을 반복적으로 확인하거나 업무 목적으로 장시간 온라인에 머무는 일상적인 활동이 새롭고 신체 체험적인 능동적 경험의 빈도를 줄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자서전적 기억에 저장되는 풍부하거나 의미 있는 사건의 수가 줄어들게 한다. 결과적으로, 그러한 기간은 회고해 보면 덜 다사다난하고 더 압축된 것처럼 보일 수 있으며, 이는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는 느낌에 기여한다.”
기술 기기의 과도한 사용이 시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조장한다. “참가자들은 디지털 기술 사용을 시간의 상실, 모든 시간을 채우고 싶은 욕구, 시간을 잊어버리는 경향, 그리고 결과적으로 시간에 대한 더 큰 통제력을 얻고 싶은 욕구와 연관 지었다,” 시간과의 관계가 통제 불능 상태에 빠졌다는 느낌은 결국 “죄책감, 수치심, 그리고 자제력 상실”을 낳았다.
일부 참가자들은 기기가 자신의 시간 감각을 변화시키는 방식에 대해 좌절감과 심지어 무력감까지 표현했다. “둠 스크롤링이나 그 밖의 소셜 미디어 활동에 몰두할 때 일어나는 일 중 하나는 시간을 완전히 잊어버린다는 것. 마치 시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래서 결국 이런 활동에 투자하는 시간을 엄청나게 초과하게 된다.”
하지만 기술만을 시간 인식 왜곡의 유일한 원인으로 봐서는 안 된다. 이러한 관계의 긴장은 밈, 엉터리 AI 콘텐츠, 무한 스크롤보다 더 깊은 곳에 뿌리를 두고 있다. 즉, 현대 사회가 지루함이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같은 비활동적이고 비생산적인 상태를 어떻게 규정하는지에서 비롯된다.
응답자들은 비활동적인 시간이 불편하며, 일정의 빈틈을 모두 메우기 위해 기기를 사용해야 한다는 강박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시간이 있어도 그 시간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데 쓰지 않는다. “우리는 끊임없이 바쁘고 항상 할 일이 있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에 살고 있다. 사람들은 자유 시간이 생길 때마다 화면으로 향한다.”
사람들이 ‘생산성’ 없는 시간-조용한 지루함, 권태의 순간, 혹은 목적 없는 성찰의 시간을 더 편히 받아들인다면, 시간을 경험하는 방식을 확장하고 풍요롭게 만들 가능성이 더 커질지도 모른다. “바로 그런 고요한 순간에, 우리의 기억 형성을 돕는 뇌 영역에서 독특한 활동 패턴이 관찰된다,” 그 고요하고 공허한 시간들 속에서 우리는 최근의 과거를 되새기며, 이를 우리 삶의 더 큰 흐름 속에 통합한다.
그러나 이런 상태들이 지난 10년 동안 대부분 사라져 버렸다. 오직 우리의 가치관과 이상에 지각변동 수준의 변화가 일어날 때만 이를 되찾을 가능성이 있다. 해법은 간단한 이 한가지 질문에 달려 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다시 편안함을 느끼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게으름의 징후가 아니라고 믿게 할 수 있을까?”
지루함의 가치 발견
지금까지 말한 위험은 사소해 보일 수 있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간다는 느낌은 당장 먹고사는 데 결정적인 문제가 아니다. 세금이 오르게 하지도, 굶주리게 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을 잃는 사람은 진정으로 불행하고 실제로 고통을 받는다. 특히 Z세대는 삶의 속도가 빨라지는 현상을 무관심한 호기심이나 경박한 흥미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들은 한탄한다. 시간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삶마저 놓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서구 문화는 시간을 활용하고, 유도하며, 최적화해야 할 통화로 여긴다. 언제나 생산성을 발휘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은 너무나도 강렬하고 끊임없이 만연해서 많은 이들이 속도를 늦추고 시간 고유의 느림을 만끽할 능력을 잃어버렸다.
기술은 이런 ‘동기화된 순응’ 문화를 이용해 왔다. 기기를 제조하고 실행 프로그램을 만드는 기업들은 생산성과의 이 비정상적인 관계에 끼어들어, 일정한 진취적인 역량을 상징하는 배지와 모티프를 제공하고 있다. 제니 오델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에서 지적했듯이, “우리의 시간을 둘러싼 싸움, 즉 생산성과 효율성에 대한 자본주의적 사상이 자아를 식민지화하는 과정”이 펼쳐지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제품들을 통해 실용성과 근면함이라는 이상을 체현하게 된다.
팬데믹 역시 우리의 생산량을 극대화하고 ‘성공’이라는 제단에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는 탐욕스러운 시대정서에 힘을 더했다. 슬랙, 팀즈, 줌 같은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의 사용 증가는 업무와 가정 생활 사이의 경계를 허물었고, 오델이 “과도한 자극을 받아 생각의 흐름을 이어갈 수 없는 일종의 불안감”이라고 부르는 감정이 오랫동안 그로부터 격리돼 있던 공간들까지 침투하게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많은 사람들이 팬데믹 기간 동안 시간을 경험했던 방식이 코로나 이전으로 되돌아가지 않았다고 느끼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그 여파로 24시간 내내 생산성은 낮지만 끊임없이 웅웅거리는 소리로 남아 있는 이러한 플랫폼과 기타 가상 공간에 더욱 얽매이게 되었다. 우리의 마음이 더욱 불안해지고 과도한 자극을 받게 되면서, 시간에 대한 인식은 예전처럼 차분한 속도로 돌아갈 기회를 얻지 못했다.
게다가 코로나 이전 트렌드들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우리의 처지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변의 압박은 우리 문화에 실리주의적인 성향을 불어넣었다. 우리 모두는 더 많은 돈을 벌고, 집을 마련하고, 일자리를 확보하며, 라이브 행사에서 #YOLO를 외치기 위해 경쟁하듯 달려갔다. 이 경쟁적인 소용돌이 속에서 그리고 우리의 불안감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는 기술들 속에서 모든 것이 더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전제를 받아들인다면 시간의 가속화 위기는 그리 절망적인 것만은 않을지도 모른다. 최신 시간 지각 연구에 따르면, 우리 뇌가 처리하는 정보의 양이 시간이 얼마나 빨리 흐르는지에 대한 주관적인 감각을 형성한다. 하루나 일주일 동안 우리가 접하는 자극을 의도적으로 줄인다면 우리 뇌는 점차 느려질 것이다. 뇌가 느려지면 시간에 대한 우리의 인식도 함께 줄어들 것이다.
TIMED 연구진은 사회가 기술 사용을 제한하는 책임을 개인에게 너무 많이 떠넘겼다고 생각한다. 이제 책임의 일부를 기술 개발자들에게 넘겨야 할 때일지도 모른다. 현재 디지털 기술의 성공 핵심 지표는 얼마나 많은 사람을 최대한 오래 사용하게 하는지에 달려 있다.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뒤집을 수 있을까? 더 큰 체계적 변화가 이루어질 때까지는 기기를 좀 더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해당 디지털 기술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자신만의 목표를 명확히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각자의 행동을 수정하는 것 외에도, 우리가 시간을 보내는 방식을 둘러싼 문화도 바꿔야 한다. 지루함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부끄러운 일도, 피할 수 없는 악도 아니라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데에는 엄청난 가치가 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을 이상하거나, 게으르거나, 단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윌리엄 제임스는 <심리학의 원리>에서 한 가지 실험을 제안한다. “눈을 감고, 누군가가 1분이 지났다고 말해줄 때까지 그저 기다려 보세요.” 그 1분의 길이가 압도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대양 횡단 여행의 첫 주처럼 그 시간의 심연 속으로 빠져들게 되며, 역사가 그 과정에서 어떻게 그토록 많은 기간을 극복해 왔는지 의아해하게 될 것이다.” 60초가 그토록 충만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시간 그 자체의 단순한 감각에만 지나치게 집중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감각이 동원되고 자극받을 때 시간은 압축되고, 위장되며, 가려진다. 그러나 ‘순수한 시간의 감’은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자극이 적은 경험”이다.
예전에는 붐비는 식료품점 계산대 줄에 서서, 비행기의 볼록한 유리창을 바라보며, 오븐 타이머의 칙칙한 붉은 숫자가 0이 될 때까지 끝없이 길게 느껴지던 몇 분을 참아내곤 했다. 이제 이런 순간들은 일상에서 사라져가는 희귀한 경험들이 되었다. 그것들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소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