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좋은 삶의 목표는 왜 물질적 생물학적 감각적 행복을 넘어서는가
과학과 고전 철학을 연결시키는 저술로 주목받아온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레베카 뉴버거 골드스타인의 최신작 The Mattering Instinct: How Our Deepest Longing Drives Us and Divides Us 리뷰를 발췌 번역해 올린다.
원문 A New Understanding of Human Beings’ Most Basic Desire
과학과 고전 철학을 연결시키는 저술로 주목받아온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레베카 뉴버거 골드스타인의 최신작 The Mattering Instinct: How Our Deepest Longing Drives Us and Divides Us 리뷰를 발췌 번역해 올린다.
원문 A New Understanding of Human Beings’ Most Basic Desire
40세에 무리한 트레드밀 운동 후 심장마비를 겪었다. 고통스런 회복 과정에서 떠오른 질문: 내 삶에 목적이 있나? 내 존재를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나? 저자는 이런 감정을 철학적 사치가 아닌 인간 존재의 근본적 측면으로 본다.
우리는 ‘중요해지길 열망하는 물질적 존재’다. 이 표현은 인간 조건의 핵심적 역설을 포착한다: 우리는 무관심한 자연 법칙에 지배받는 물리적 존재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중요성에 대한 집착에 사로잡힌 존재다.
인간 삶이 번성한다는 게 뭘까. 행복은 늘 달성 가능하거나 바람직한 건 아니지만, 누구나 자연의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창조하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좋은 삶을 이룰 수 있다.
열역학 제2법칙, 엔트로피의 원리에 따르면 모든 닫힌 계는 질서에서 혼돈으로 향한다. 집이 무너지고, 관계가 소원해지며, 몸이 늙는 이유다. 이 틀에서 생은 일시적 저항의 행위가 된다. 모든 생명체는 ‘엔트로피에 대한 끊임없는 투쟁’에 몰두하는 복잡한 에너지 주도적 프로젝트다.
이 투쟁에는 몇 가지 유형이 있다. A+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영웅적 노력가heroic striver, 신과의 관계에서 성취를 추구하는 초월자transcender, 타인을 이기는 데 동기 부여받는 경쟁자competitor, 남들의 인정으로 존재감 추구하는 사교가socializer.
저마다 나름의 방식으로 엔트로피에 저항하지만, 모두가 ‘자기중시self-mattering’라는 원초적 생물학적 본능을 실행하고 있다. 모든 생명체는 대사적으로 자기 생존을 최우선하게 돼 있다
물리학의 최고 법칙에 대한 응답이 생물학이며 이는 자기중시성을 어떤 본능보다도 깊게 만들어 모든 본능의 조직 원리가 되게 한다.
이것은 끊임없이 그리고 절박하게 유기체를 앞으로 나아가도록 독려하며 이렇게 말한다: 너는 특별해, 정말 특별해.
이 보편적 동기는 우리 이야기의 원재료이지만 완성품은 아니다. 인간만의 독특한 드라마는 사람들이 이 본능을 되돌아보기 시작할 때 시작된다.
이 대목이 이 책의 핵심적 전환점이다. 단순 생명체에서 인간으로의 도약은 자기 성찰 행위를 통해 이뤄지며, 이때 우리는 호모 유스티피칸스Homo iustificans: 이유가 필요한 존재로 바뀐다.
철학자 토머스 네이글이 쓴 대로, 한 걸음 물러서 자신을 관찰하는 능력은 생존을 향한 생물학적 충동과 모든 생명이 결국 죽음으로 끝난다는 사실 사이의 극명한 불협화음을 드러낸다.
이 깨달음은 모든 중요성의 근원적 질문인 ‘내가 중요한가?’라는 물음을 낳는다. 이젠 생물학적 중요성의 감각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 대신, 우리는 자신의 존재가 가치 있음을 스스로 확신시켜야 한다.
우리는 주관적으로 중요함을 느끼는 이유가 객관적으로도 그렇기 때문임을 증명하고 싶어 한다. 바로 이 욕구가 ‘존재의 가치 추구 본능’이다.
인간의 본질적 존엄성은 영혼이나 신의 형상 같은 불변의 본질이 아니라 바로 이 투쟁 자체에 있다.
엔트로피 개념 이전의 에덴 이야기도, 낙원에서의 추방이 타락이 아니라 인간으로의 진입, 즉 ‘가치 추구적 존재’가 된 순간을 뜻한다.
우리가 존재를 정당화하려는 탐구에 의해 움직인다는 주장을 한 철학자가 처음은 아니지만, 저자는 이 탐구가 우리의 시도가 결함이 있거나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이끌 때조차도 지배적인 본능이라고 본다.
이 ‘존재의 의미 추구 본능’을 인간의 핵심 동력으로 본다면 좋은 삶의 목표는 재정의된다. 현대인이 집착하는 행복은 덧없는 감정, ‘신경전달물질의 급증’이다.
진정한 목표는 더 풍부한 고전적 개념인 유다이모니아eudaimonia여야 한다. 자신의 삶이 잘 영위되고 있다는 깊고 성찰적인 감각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유다이모니아는 “오락에 있지 않다. 목적이 오락이고, 우리의 평생 노력과 고통이 우리 자신을 즐겁게 하는 데 있다면 터무니없는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번영은 오히려 우리 삶이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의미 있다고 느끼는 데서 비롯된다.
중요한 점은, 이 번영의 상태가 큰 고통과 공존할 수 있으며 종종 그러하다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 같은 인물은 끊임없는 정신적 고통을 겪었음에도 임종 직전 “내가 멋진 삶을 살았다고 전해줘”라고 말했다.
고통으로 가득했지만 그의 삶은 의미 있는 프로젝트에 맹렬히 몰두했다: 언어와 사고의 한계를 이해하려는 그의 노력은 삶에 일관성과 목적을 부여했다.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도 젊은 시절 정신적 붕괴 위기를 겪었다. 그의 회복은 자신의 ‘개별적 현실과 창조적 힘’을 믿기로 한 결심에서 나왔고, 이는 경험적 심리학 분야에 크게 기여하고 미국 실용주의를 확장하며 20세기 신학을 재구성하는 데도 일조했다.
두 사람은 삶을 그저 견딜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의미 있는 것으로 느끼게 해준 프로젝트를 위해 힘겹게 투쟁했다.
존재감 본능이 삶의 엔트로피 저항에서 비롯된다면 같은 원리가 ‘존재감을 올바르게 얻는’ 기준을 제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저자가 말하는 인간적 번영과 도덕적 선의 삶은 엔트로피를 거스르는 것이다: 바로 인간적 번영, 지식, 사랑, 기쁨, 평화, 친절, 우호, 아름다움의 확산을 증가시키는 것. 반대로 잘못 살아가는 삶은 엔트로피와 조화를 이루며 세상의 혼돈, 잔혹함, 해체의 총량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저자의 메시지는 책의 마지막 인물인 루 샤오잉의 삶에서 가장 강력하게 구현된다. 루는 쓰레기를 뒤지며 살아남은 가난한 중국 여성으로 2012년경 사망했다. 88년 생애 동안 쓰레기통과 길가에 버려져 죽어가던 30명 이상의 여자 아기를 찾아 키웠다. 입양딸 주주는 어머니가 행복했다고 묘사한다. 사회가 오직 폐허와 부패만을 남긴 곳에서 생명과 유대, 사랑을 창조해냈으니 본질적으로 엔트로피에 역행하는 목적에 의해 충족된 삶이었다.
존재의 의미 본능은 시인 루미가 말했듯 “우리가 사랑하는 아름다움을 우리의 행동으로 삼을 때” 목적을 찾게 된다는 사상을 증명한다.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한 상반된 주장들로 분열된 세상에서 저자는 지적 공감을 불러일으키면서도 인간적인 비전을 제시한다. 우리 존재의 정당성을 증명하려는 투쟁 자체가 바로 우리 존재를 의미 있게 만든다는 점을 일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