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을 때 일어나는 일
버지니아 울프가 생각한 독서와 실제의 경험
(아래 원문 발췌)
원문: Reading at Random with Virginia Woolf
원문: Reading at Random with Virginia Woolf
울프에게 독서란 단순히 글자를 받아들이는 행위를 넘어, 마음의 능동적 표현이자 ‘실제를 경험‘하는 한 방식이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1941년 3월 사망 당시 영국 문학사에 대해 책을 쓰던 중이었는데 제목이 '무작위 독서Reading at Random'였다. 자신의 독서 철학을 담은 것이기도 했다. 초고의 두 장이 각각 Anon과 The Reader였다.
문학사라고 하면 연대기를 연상시키지만 울프는 그 시작이 무질서하고 일탈적이었다고 쓴다. 아논의 목소리는 ‘비틀대고 중언부언하며 횡설수설하는‘ 목소리였다. 청중이 많을 때도 있었고 그들을 주제로 즉흥 연주를 하기도 했다. 아논은 그저 가수였으며 “다른 사람들의 입에서 노래나 이야기를 건져 올리고 청중이 합창에 참여하도록 했다.”
처음엔 사회 변방에서 떠돌이 가수로 살던 익명의 인물은 엘리자베스 시대 극장과 그 시끄러운 관객의 등장으로 명성을 얻었고, 이어 인쇄술의 위세가 커지면서 독자라는 고독한 개인이 탄생한다. 이것은 집단적 경험이 개인의 의식으로 깎여 나간 이야기다.
울프의 근원적 탐구는 독서를 책의 원초적 공동체적 경험적 기원으로 다시 연결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마음속에서 희미해진 길’을 여행하고, ‘잠겨 있는 충동의 근원… 진흙 속 깊이 숨겨진 샘, 물줄기’를 발견하며, 터널을 뚫고 책의 ‘밑바닥에 깔린 노래’라 부르는 곳으로 돌아가는 법을 찾는 것.
1940년 10월 17일 울프는 일기에 새 책 구상을 기록하며 “평소 습관적으로 하는 메모-홀수 날에 하는 일-를 무작위 독서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에 무질서의 방법론이 있다.
무작위성은 독자와 책 사이에 존재하는 상상력의 공간, 즉 전체적인 마음의 상태를 대변하게 된다. 그녀는 개요에서 자신에게 ‘아주 폭넓게 읽되’ ‘기억에 의지해 쓰라’고 지시한다.
책의 두 번째 장 ‘독자’에서는 “시를 읽고 이해할 때 읽지 않는 것 역시 똑같이 중요하다”고 관찰한다. 왜일까? 이 텅빈 공간, 정신의 부재, 독서가 우리 안에 불러일으키는 이 ‘읽지 않음’의 힘은 무엇인가?
독자가 읽지 않음으로써 얻는 것은 “그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책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의 상태”다. 독자와 작가 사이의 이 뜻밖의 투과성은 근대 이전의 문학 전통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다.
“익명의 목소리가 여전히 익명으로 말하고 있으며, 청자는 이미 그 목소리를 반쯤 알고 있거나 반쯤 기억하고 있다. 청자는 그 목소리를 부분적으로 자신 안에서 듣는다.” 읽지 않음은 익명의 저자가 한때 청중이나 청취자와 더불어 가졌던 협력적 효과를 독자 안에서 재현한다.
“반은 알고 반은 기억한다.” 예지와 기억: 미래와 과거를 동시에 향해 뻗어 나가는 직관적 인식이다. 독자와 작가 사이의 관계가 지닌 이 ‘늘 이미 존재하는’ 상태에는 유령 같은 특질이 있다. <자기만의 방>에서 이렇게 추측한다:
자연은 가장 비이성적인 기분으로 마음의 벽에 보이지 않는 잉크로 예감을 새겨 놓았는데, 위대한 예술가들이 이를 확인해 준다. 천재의 불꽃에 비추기만 하면 드러나는 스케치다. 그렇게 드러내고 생명을 얻는 모습을 보면 황홀함에 “이건 내가 항상 느끼고 알고 원해왔던 바로 그거야!”라고 외치게 된다. 그리고 흥분으로 끓어오르며 책을 닫는다…
이 황홀경은 인식이다. 인식은 이미 존재하는 것에 의존하며, 이것이 바로 울프가 추구한 글쓰기의 이상이다: 독자 안에 이미 존재하지만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을 불러내는 것. 일종의 감정적 지식이라 부를 수도 있고 무의식이라 부를 수도 있다.
<익명> 원고의 한 구절에 연필로 적은 주석은 독서를 인식의 과정으로 보는 울프의 생각을 보여준다: “그것은 오래전 숨겨진 세계를 표면으로 끌어올렸다.”
<익명> 원고의 한 구절에 연필로 적은 주석은 독서를 인식의 과정으로 보는 울프의 생각을 보여준다: “그것은 오래전 숨겨진 세계를 표면으로 끌어올렸다.”
<등대로>에서 램지 부부는 저녁 식사 후 서재에 함께 앉아 책을 읽는다. 서로 소통하고 싶어 하지만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한다. 램지 부인이 시집을 집어 들고 “여기저기 무작위로 읽기 시작했다.” 그 시구들은 그녀의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며 생각과 매끄럽게 얽히고 그녀를 ‘가벼운 잠에 든 사람처럼’ 달래준다. 그 책은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모음집이다.
셰익스피어가 울프에게 글쓰기에서 익명의 정수라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무작위 독서> 노트에 이렇게 적혀 있다. “셰익스피어에 관하여: 인물은 소멸된다. 셰익스피어는 결코 봉투를 뜯지 않는다. 우리는 그에 대해 알고 싶지 않다. 완전히 표현되었다. 주문이 멈출 때 우리는 그 인물을 본다.” 여기서 ‘그 인물’이란 정확히 누구인가-셰익스피어인가 아니면 독자인가? 주문이 지속되는 한, 둘은 함께 ‘소멸’된다.
울프의 이상은 언어가 필요 없는 소통이다. 이것은 표면적으로는 읽기나 쓰기와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말 없는 교감의 순간은 오로지 그전에 펼쳐진 긴 독서의 장면에 의해서만 가능해진다. 그것은 독서가 그 인식의 순간, 즉 책을 닫을 수 있는 마음의 상태-마치 책 속 목소리를 자신의 목소리인 양 흡수한 상태-에 선행하는 것과 같다. 독자와 저자의 관계는 이러한 공유된 의식의 가능성을 본으로 보여준다.
울프는 어린 시절 처음으로 읽은 시를 이해했던 결정적 순간을 묘사한다. “단어가 더 이상 단어가 아닌 투명한 존재가 되어 극도로 농축될 때, 마치 그 단어들이 내가 이미 느끼고 있는 감정을 예견하며 발전시킨 것을 체험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소설 <등대로>에서 램지 가족이 바로 이 감각을 통해 서로 연결되는 반면, <스케치> 속 젊은 울프가 시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언니 바네사에게 설명하려 할 때는 명확히 전달하지 못한다. “내가 뜨거운 풀밭에서 느꼈던 그 기묘한 감정-시가 현실이 되어 다가오는 듯한 그 느낌-을 내 말로 이해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거야.”
그 감각은 울프만의 것이면서도 동시에 그녀의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공유되는 것이기에. 바네사와는 아니더라도 (익명의) 시인과, 그리고 이제는 울프의 독자와도 공유된다. 우리는 그녀를 정확히 이해한다. 이 ‘기묘한 느낌’은 독자들이 항상 느껴왔기 때문이다.
(에밀리 디킨슨: “책을 읽다가 온몸이 불로도 녹일 수 없을 만큼 차가워지면, 나는 그것이 시임을 안다. 머리가 벗겨지는 듯한 육체적 감각을 느끼면, 나는 그것이 시임을 안다. 내가 아는 유일한 방법이다. 다른 방법이 있을까?”)
제임스 우드는 울프의 “가장 위대한 소설은 비전을 갖는 것이란 미학적 시야를 넘어 보는 것임을 믿는 신념에 따라 움직인다”고 썼다.
울프는 열혈 무신론자였지만, <무작위 독서> 초고에서는 영국 문학의 전통을 소외된 현대인과 그녀가 실제reality라고 부르는 것 사이의 일종의 중재자, 신성에 가까운 매개체로 이론화한다. 1929년 일기에서 이렇게 썼다. “그 감정을 붙잡을 수 있다면 붙잡고 싶어요. 외로움과 침묵이 우리를 살 만한 세상에서 몰아낼 때 느끼는, 진정한 세계의 노래하는 듯한 그 감정을.”
실제의 진정한 언어는 글쓰기가 아니다. 글쓰기는 단지 파편적인 포착에 불과하며, 그 감정을 ‘잡아내려는’ 시도의 실패일 뿐. 그것은 노래다. 아논의 ‘오래된 숨겨진 세계’는 울프가 갈망한 ‘진정한 세계’의 역사화된 버전으로 그곳에서는 사고와 표현이 연속적이며 삶과 문학이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