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자신을 알라. 이 말이 고대 그리스의 한 신전에 처음 새겨진 지 수천 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 가르침을 따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람들은 수많은 철학 강좌와 요가 수련회 같은 곳을 찾아다닌다. 심리 치료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더 빠르고 더 저렴한 깨달음의 길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점성술, 에니어그램, MBTI 등에서 영적 각성의 모조품을 찾을 수 있다.
MBTI 테스트는 한 사람을 네 가지 상호 연관된 특성의 조합으로 규정한다. 이런 성격 테스트가 과학적 타당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됨에도 여전히 인기를 끄는 이유는 뭘까.
자기실현 과정을 지름길로 가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스스로에 대한 이해를 얻을 수 있게 해준다. 우리를 자아와 그림자, 페르소나와 아니마, 원초아와 초자아의 조합으로 규정하는 전통적인 심리학과는 달리, 성격 유형 분류는 자신을 E.N.F.P. 같이 몇 가지 조합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
이처럼 인정받고 정의되며 분류되기를 끊임없이 갈망하는 심리는 자신을 단 하나의 별자리나 임상적 유형으로만 규정하는 데 거의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해 줄 수도 있다.
점성술 또한 정체성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불안한 세상 속에서 사람들이 안정감을 느끼도록 돕는 기술에 더 가깝다. 모두가 지금이 역사상 최악의 시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단지 극도의 강렬함과 과도한 불안감 때문일 뿐. 이때 점성술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맥락을 부여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이런 유쾌한 성격 유형 분류가 꼭 나쁜 것은 아니지만 책임을 회피하는 핑계로 악용될 수 있다. 실제로 자신에게 그런 면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내 그 행동을 정당화하는 변명이 되어버린다. 또한 이러한 설명들이 누구라도 언젠가는 이런 행동을 보인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MBTI의 결과나 출생 차트의 분석 결과뿐만 아니라, 우리의 디지털 삶이 반영하는 듯한 정체성에 대해서도 좀 더 회의적인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바깥의 복잡한 삶과 내면의 복잡한 삶을 최대한 잘 헤쳐 나가려고 노력하며 숨 쉬고 살아가는 진짜 삶을 이해하는 것이다.
정체성은 매혹적인 주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진지하게 탐구해 보지 않은 채, 삶 속에 들어왔을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나가는 것을 전부로 여긴다.
그 이상의 영적 성장에 관심이 있다면 시간을 앞당길 수 없다는 사실도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자신의 삶을 살아가며 결정을 내리고, 어려운 선택을 하고, 무엇이 잘 풀렸고 무엇이 잘 풀리지 않았는지 되돌아보며, 그 경험들을 통해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 그것이 지혜를 키우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