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이면서 작가인 나는 글쓰기에 AI 도구 사용을 왜 극구 피하는가. 생각은 힘든 일이지만 그게 바로 나를 인간답게 만드니까. 실리콘밸리의 프로그램 개발자 출신으로 작가로도 활동하는 웬디 류Wendy Liu의 에세이를 소개한다. AI로 빅테크가 인간 사고 능력을 사유화하는 상황에서 무의미한 봇을 위해 자신의 지적 능력을 쇠퇴하도록 두는 게 좋은 선택일지 묻는다.
AI 기업 등장 훨씬 전부터 나는 고생하며 코딩을 배웠다. 2000년대 중반 어릴 때 이미 가족 컴퓨터를 아무 감시 없이 마음껏 사용할 수 있었다. 기본 텍스트 편집 프로그램으로 웹사이트 처음부터 만드는 법 배웠다. 처음엔 기본 수준이었지만 점차 복잡해졌다. 결과물은 내 상상만큼 아름답거나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걸 감수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한 가지 기술을 배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포기하게 된 프로젝트들을 위해 디버깅을 하고 난해한 문서를 빤히 들여다보며 보낸 고된 시간들은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라고 느꼈다.
누구나 코덱스나 클로드 코드로 세련된 앱 쉽게 만들 수 있고, 고교 중퇴생들이 AI 스타트업으로 수백만 달러 모금하는 지금과 비교하면 한물간 이야기다.
내 학습 과정은 그리 효율적이지 않았다. 호기심과 이해하려는 열망에 이끌려 내가 엉성하게 짜낸 나만의 커리큘럼을 따라 고군분투했으니까요. 그럼에도 그 과정에서 나는 특정한 사고방식에 대한 애정을 발견했고, 그 사고방식은 4년제 컴퓨터 공학 학위 과정과 다양한 소프트웨어 개발 직업을 거치는 내내 나를 이끌어 주었다.
작가가 된 과정도 비슷했다. 기술 산업에 대해 글 쓰고 싶었던 처음의 동기는 내가 읽던 글들에 대한 좌절감에서 시작됐다. 실리콘 밸리에 대한 나의 비판적인 이해와 다른 사람들의 맹신적 논의 사이에 간극이 있다고 느꼈다.
책을 출간했고 그 사이에 버려진 글도 수없이 많았다. 하지만 버려진 글조차 결코 낭비된 것 같지 않았다. 그것들은 생각의 부산물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작가라도 글쓰기 과정이 가져오는 변혁적인 성격을 증언할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아이디어로 시작했지만, 결국은 전혀 다른 곳에 도달하게 되는 과정. 글쓰기는 단순히 단어를 쏟아내는 것 이상의 문제다. 그것은 자신의 가치가 무엇인지 발견하고, 그 가치를 위해 싸울 가치가 있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과정이다.
코딩과 글쓰기라는 이 두 영역에서, 나는 때때로 마치 사이공에서 마지막 헬리콥터를 타고 탈출한 듯한 기분이 든다. 두 분야 모두 최근 LLM 기술의 발전으로 혁명을 겪었다. 소프트웨어 개발은 바이브 코딩으로 인해 퇴보했고, 예전엔 좋은 고용주로 알려졌던 기술 기업들이 이젠 AI를 핑계로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다. 글쓰기 분야는 AI가 쏟아내는 저질 콘텐츠에 압도당한 상태다.
AI는 부자들을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더 부유하게 만들 테다. 이게 정말 우리가 원하는 것일까?
과거의 나였다면 겉보기만 해도 혁명적인 신기술이라면 무엇이든 기꺼이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최대한 AI 사용 피한다. 아무리 생각하는 수고의 외주화가 유혹적이어도 나는 인지 활동의 내려놓기를 경계한다. 생각하는 것 자체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나는 단지 편의를 위해 생각을 회피하는 습관을 들이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이 AI 붐 속에서 성장하는 젊은이들이 걱정된다. AI를 둘러싼 신비로운 분위기가 그들에게 기술을 블랙박스처럼, 즉 자신들에게 불가피한 것으로, 자신들이 통제할 수 없는 불투명한 기업들이 관리하는 것으로 보게 만들까 두렵다.
만약 그들이 수동적으로 기술을 그저 자신들에게 일어나는 일로만 보고, 그 내부를 헤아릴 수도 없고 바꿀 수도 없는 것으로 여긴다면, 그것이 기술과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것이 세상 전반과의 관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거대 AI 기업들이 지능을 ‘공용 서비스’로 만들기를 희망하는 세상에서, 다시 말해, 사고를 사유화하려는 세상에서 AI 기술의 사용 제한은 우리의 인지적 주권을 지키는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생각하는 능력을 보존하는 것, 즉 모든 결정을 본질적으로 확률론적인 소프트웨어에 외주화하기보다 자신의 뇌를 활발하게 유지하는 문제이다.
연구에 따르면 단 몇 분만 AI 챗봇을 사용해도 인지 능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집단적 차원에서 이것은 정치적 문제다. AI 기업들은 사회의 모든 측면에 그 촉수를 뻗어 세계를 차갑고 살기 힘들며 불평등이 더욱 심화된 곳으로 바꾸려는 목적을 위해 전례 없는 규모의 자금을 모으고 있다.
우리는 지금 AI 버블 한가운데에 있다. 데이터 센터에 수조 달러가 투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하는 기업들은 AI에 더 많은 투자를 하기 위해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으며, 남아 있는 직원들은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AI 활용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사람들은 AI를 이용해 결혼 서약을 작성하고, 심지어 AI 자체와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짧은 시간 안에 무서울 정도로 일상화됐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AI를 거부하는 나의 태도는 이단적이거나 심지어 터무니없게 보일 수도 있다. 우리 모두가 회의적이어야 할 정보들, 다시 말해 업계 경영진의 수상쩍은 행태, 재정적 우려, 끔찍한 환경적 결과, 근로 조건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 등이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음에도 세상은 여전히 AI 열풍에 휩싸여 있다.
그 이면에는 너무나 많은 돈과 권력이 얽혀 있어 여기에 도전하는 것은 신성한 권위에 도전하는 것만큼이나 희망이 없어 보인다. 마음속으로는 내가 옳다고 믿을지 몰라도 매일같이 내가 틀렸음을 증명하는 듯한 명백한 증거들, 마치 기념비처럼 내 머리 위로 우뚝 솟은 AI 광고판들에 둘러싸여 살아가야 한다.
가끔 코드를 작성하다 보면 내가 최신 도구를 익히지 못했기 때문에 효율성이 떨어지는 코더라는 사실을 안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지금 이 에세이를 쓰고 고치는 데 걸린 시간 동안, 만약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을 활용했다면 수백 권의 책을 만들 수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효율성과 편의성이 기업의 탐욕을 부추기는 수단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불편함과 비효율성은 어쩌면 나의 인간성을 지키고 인격을 함양하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일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되고 싶은 사람, 즉 세상에 깊이 뿌리내리고 의도와 진정성을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이 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믿는 길을 걷고 있다.
물론 그 길에는 일정한 대가가 따른다. 좀 더 실리적인 나라면 지금쯤 AI 스타트업에서 돈을 벌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내가 어떤 가치를 위해 싸우고 싶은지 알고 있다. 나는 그 대가가 충분히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