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하지만은 않은 정치적 참여 행위에 대해서

2407 시즌 - 책 <인간의 조건>
이초록
2024-09-26 00:20
전체공개


이 책은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을 이해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는 책이었다. 책을 덮고 나서도 이해하지 못한 문장들과 모호한 개념들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 들었다. 결국, 몇 번이고 서문을 다시 읽으며 정리를 하고 나서야 각 활동이 조금이나마 이해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안개가 낀 듯 흐릿한 부분이 많아, 독후감을 쓰고 있는 지금도 책을 뒤적거리며 이해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활동을 노동, 작업, 행위로 나누고, 이 세 가지 활동을 통해 인간이 실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개인적으로는 세 활동 중 노동과 작업의 구분이 가장 모호하고 어려웠는데, 내가 이해한 각 활동의 정의는 아래와 같다.

노동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가장 기초적인 활동을 의미한다. 생존에 필수적인 생물학적 요구를 충족시키는 활동으로, 반복적이고 순환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 식량을 구하고 소비하는 활동, 생명 유지와 관련된 활동(개인위생 포함) 등이 이에 해당한다.

작업
자연을 초월해 인공적이고 영속성을 지닌 세계를 만들어내는 활동을 뜻한다. 만들어진 결과물은 유한한 인간의 생명과 달리 지속적으로 남아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각종 도구나 건축물, 예술품, 법률과 제도 등이 이에 해당한다. 

행위
단순히 시민활동, 토론과 같은 정치적 참여만을 의미하지 않고,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정체성을 드러내고, 공동체 속에서 자유를 실현하는 모든 활동을 말한다. 말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다른 활동과 달리 오로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만 활동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이해하기 어려웠던 부분들을 정리한 내용이다.

- 노동, 작업, 행위가 없다면 존재하는 인간이라고 말할 수 없는가?
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세 활동을 통한 인간의 실존은 생물학적 의미의 생존이 아니라, 가치적이고 사회적인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의미한다.

- 모든 직업은 노동과 작업으로 완전히 분리되어 구분할 수 있는가?
경제적 보상을 얻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만 직업 활동을 한다면 이는 노동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직업 활동을 통해 창조적인 결과물을 남긴다면 일부 작업의 영역에도 포함될 수 있다. 따라서 모든 직업이 노동과 작업으로 완전히 구분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과거와 달리 현대 사회에서는 비물질적 결과물이 넘쳐난다. 이것은 작업에 포함될 수 있는가?
프로그램 개발, 디지털 콘텐츠와 같이 물질적인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들도 결과적으로는 지속성을 포함하므로 작업에 포함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데이터를 저장하는 것 자체가 공간과 자원(데이터가 실제 저장되는 물질적 공간과 전력 등)을 소모한다고 정의한다면 더더욱 작업에 포함될 수 있다.

- 인스타그램, 유튜브를 통한 사적 영역의 공적 노출 혹은 공론화는 사적 영역의 확대인가 공적 영역의 확대인가?
한나 아렌트가 공적 영역에서 기대하는 정치적 행위는 자유로운 토론과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포함한 공동체 활동, 사회적 기여를 뜻한다. 반면, 사적 영역의 공적 노출은 주로 개인의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한 활동에 가까우므로 이는 공적 영역보다는 사적 영역의 확대라고 생각한다.

- 저자는 행위를 통한 정치적 참여(시민활동, 토론 등)를 강요하고 있는가?
아렌트는 근대 민주주의가 시민의 정치적 참여를 제한하고, 공적 영역이 사적 영역으로 대체되는 상황을 비판적으로 보았다. 그러나 정치적 참여만이 행위라고 정의하지 않았으며, 인간적인 삶을 위해 정치적 참여를 반드시 요구한 것도 아니다. 다만, 실존적인 인간의 삶에서 행위가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가장 사소한 정치적 참여는 ‘관심’에서 시작된다는 생각이 든다. 메일함에 쌓여 있는 읽지 않은 기부 단체의 메일을 보며, 내가 처음 기부를 시작할 때와는 달리 무관심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 기부라는 ‘정치적 행위’를 하고 있음에도, 너무 일상적이고 무관심했던 나머지 행위의 기쁨이나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는 다시 한번 관심을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거창하지 않더라도, 조금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경험을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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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오렌지 | 1개월 전

안녕하세요 이초록 님, 명료하게 정리해 주셔서 이해에 많은 참고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초록 | 30일 전

쓰면서 머리를 많이 싸맸는데, 참고가 되셨다니 기쁘네요 ㅎㅎ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