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질문
자장가
2024-09-26 06:34
전체공개
이번 독후감은 책 내용 보다는 주변적인 이야기가 많습니다.
무언가를 '알게' 되는 과정은 그 무언가를 개념과 관계라는 구조로 세분화하여, 이전에 '알고'있던 것들을 정리해 둔 체계와 비교하면서 각각의 자리에 놓아 두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마치 머리 속에 커다란 창고가 있어서 그것을 넣어두는 것과 같다. '이것은 7번 방의 4번 장, 2번째 칸에 두면 다른 것들과 혼동하지 않고 쉽게 찾을 수 있을거야...'
각각의 항목들은 그렇게 정리되어 있다가 자세한 작동 기제는 알 수 없으나 관계형 데이터베이스나 해시태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찾아지고 꺼내어지고 결합되어 '생각'과 '지식'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사유'와 '지식'을 구분하여 설명하지만, 그 경계가 쉽고 분명하게 나눠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마치 머리 속에 커다란 창고가 있어서 그것을 넣어두는 것과 같다. '이것은 7번 방의 4번 장, 2번째 칸에 두면 다른 것들과 혼동하지 않고 쉽게 찾을 수 있을거야...'
각각의 항목들은 그렇게 정리되어 있다가 자세한 작동 기제는 알 수 없으나 관계형 데이터베이스나 해시태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찾아지고 꺼내어지고 결합되어 '생각'과 '지식'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사유'와 '지식'을 구분하여 설명하지만, 그 경계가 쉽고 분명하게 나눠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새롭게 접하는 무언가가 기존의 분류 방식과 잘 맞을 경우에는 그것이 쉽게 정리되고 이해가 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것은 그 무언가가 자체적으로 얼마나 복잡한 것인지 보다는 받아들이는 주체가 그것에 '익숙한가'와 더 많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장황하지만 요컨데 이 책을 읽기가 힘들었다는 이야기이다.
'노동', '작업', '행위'라는 구분을 대하면서 가졌던 고민은 '도대체 이러한 구분이 타당한 것인가?'와 '실천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인가?' 그리고 부수적으로 '이것이 내가 가지고 있던 기존의 분류 방식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였다.
문제가 복잡하고 어려워 보일 때는 가급적 단순하게 접근하는 것이 좋다.
구분의 타당성과 관련해서는 이 벽돌책이 거의 70년 전에 쓰여져서 지금도 많이(?) 읽히고 있다는 점에서 그냥 이해하고 납득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에 대해 비판하려면 저자를 충분히 이해하는 눈 높이에 도달해야 하는데 한 권을 책을 주마간산 식으로 읽은 정도로는 많이 부족하다. 저자를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뒤로 연결되는 책을 더 읽어야 할텐데, 책과 함께 어딘가에 갇혀있는 상황이 필요할 것 같다.
실천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라는 질문은 그냥 납득하고 지나갈 수는 없는 문제이다. 이 질문은 다시 '저자는 문제가 무엇이고 그것을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는가?'와 '그 주장이 타당했고, 지금 여기서도 타당하다고 생각하는가?'로 나누어서 생각했다.
'인간의 조건'은 노동, 작업, 행위라는 활동적 삶(viva activate)의 세 가지 근본 활동, 특히 행위라는 활동이 적절하게 수행되는 것을 필요로 한다.
관련되는 내용이 대단히 많기 때문에 '행위의 연약성' 극복과 관련되는 부분에 집중하면, 저자는 그리스의 '폴리스'를 통해 바람직한 전형을 찾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폴리스는 그리스에서 그것이 생겨나기 이전의 경험 및 인간의 공동생활을 가치있게 만드는 것, 즉 '말과 행위의 공유'가 이루어지는 곳이라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는 폴리스는 지리적 위치를 가진 도시국가가 아니라 사람들이 함께 행위하고 말함으로써 생겨나는 사람들의 조직이라고 정의한다.
조직으로서의 '폴리스'에서 언어와 행위를 통해 사람들이 함께 느끼게 되는 공동감각(common sense)을 통해 권력이 발생하고 실천하게 된다.
그러나 행위는 본질적으로 결과의 예측불가능성, 과정의 환원불가능성, 저자의 익명성이라는 '세 좌절'을 내포하고 있어서, 그 결과로 생겨나는 우연성과 도덕적 무책임을 회피하려는 시도가 발생하게 된다. 현명한 지배자만이 공적인 일에 관여해야 한다는 '전제정치'에 대한 요구와 상대적인 견고성을 제공하는 '생산'에 집중하려는 동기는 근대와 지금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요구와 동기가 인류의 미래를 위험에 빠뜨리는 원인이라고 지적고, 행위가 지닌 좌절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환원불가능성의 곤경을 벗어나게 하는 용서하는 능력', '예측불가능성의 어둠을 극복하는 약속의 힘'을 제시하고 있다.
세상은, 역사는 조류처럼 정확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뒤집기 어려운 큰 흐름을 가지고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그 흐름은 각각의 세부적인 구성요소들의 움직임으로 인해 발생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세부적인 구성요소들은 그 흐름에 저항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저자는 두 번의 세계 대전과 이후의 기술적 진보와 경제적 번영을 겪으면서 느꼈던 '위기'를 정리하고, 오래된 역사와 철학 및 종교의 지혜 속에서 해결책을 모색했던 것으로 보인다.
가장 어려운 부분은 '규범'과 '실재'가 부딪히는 곳이다. 여기서는 '공적 영역'을 구성하고 유지하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용서'와 '약속'이 지켜지면서 '언어'와 '행위'를 통해 바람직한 '정치'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저자의 주장은 정치철학자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겠지만, 그것이 현실 속에서 얼마나 구현되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느낌이다. 어쩌면 그나마 지금의 모습이라도 지탱하고 있는 것이 저자를 비롯한 현명한 사람들의 노력의 결과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지금 여기서도 타당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공적 영역'을 확보하는 것이 가능하고 용이할까라는 맥락에서만 본다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된다.
고대에서 근대와 현대로 오면서 각 개인이 접할 수 있는 세계는 지속적으로 넓어지고 있고 연결할 수 있는 수단(네트워크)도 더 다양해지고 있지만, 그것은 '사회'가 확대되는 것일 뿐이다. 더 커진 세계에서 각 개인이 가진 통제 가능성은 줄어들고, 개인성이 제거된 거대 조직들이 의사결정을 대신하고 있다. Mass Media, Social Media, Search Engine과 같은 (유사)의사소통 수단들이 직접적이고 개별적인 관계를 대신하게 되고, 익명성 혹은 교환가치를 추구하는 셀럽들에 의해 장악되어서 '공적 영역'의 구축이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저자가 우려했던 것처럼, 기술의 발달과 함께 '사회적 부'의 성장은 더 가속화되어서 '공동의 것'의 기반이 되는 '소유'는 점차 사라지고, 인류는 '소비하고', 소비하고 싶은 것을 매일 재생한하는 것에만 온 신경을 쓰는 '바보들의 천국'으로 더 가까워진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 질문인 '이것이 나의 기존 분류 체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해서는 독후감 제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정리가 되지 않아서 일단 넘어가기로 한다. 토요일 전에 입장이 정리되어 수정할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이하는 독후감 외전이다.
이런(!) 책을 읽는 방법에 대해 도중에 여러 사피분들이 의견들을 말씀하셨는데, 나는 무식한 방법을 사용했다.
이 책처럼 복잡한 글을 읽을 때 개별적인 문장을 (말 그대로) 이해하기 위해 온 신경을 쓰다보면, 큰 맥락에서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를 잊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나의 경우 평소에 장식이 많은 정교한 문장에 훈련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도중에 길을 잃을 수 밖에 없었다. 이때는 던전 탐험을 하는 게이머와 같은 방법을 쓴다. 현장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지도를 그려나가는 방법이다. 게임과 비슷해서 중간에 망해도 다시 시작하면 된다. 먼저 문장 단위에서는 긴 문장을 간략하게 줄인다면 어떻게 될까를 생각하면서 여러번(ㅠㅠ) 읽고, 전체 이야기의 지도를 그리기 위해 세부 목차별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문장을 옮겨 적어본다. 각자가 그린 지도의 모양과 세부사항은 다르겠지만 내가 그린 지도가 있으면 다음 번 던전 탐험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육체적 활동에 소요되는 체력과 마찬가지로 정신적 활동에 소요되는 집중력도 쓸 수 있는 총량에 한계가 있다고 한다. 운동을 하면서 체력을 키우듯이, 독서와 사고를 통해 집중력을 키우는 데도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반강제(^^;)였지만 의미있는 책을 찾아 주시는 병근님과 으쌰으쌰 같이 읽고 생각을 나눠주시는 사피분들 덕분에 이런 책을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댓글
이초록 |
2개월 전
던전 탐험이라니.. 너무 재밌고 귀여워요. 작은 미니미가 열심히 머릿속을 탐험하는 상상이 되네요 ㅎㅎ
목차별로 문장 정리하는 것도 해봐야겠어요. 좋은 생각 나눠주셔서 감사해요!
목차별로 문장 정리하는 것도 해봐야겠어요. 좋은 생각 나눠주셔서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