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도달한 성취보다 끝없는 추구가 나을지도

2407 시즌 - 책 <마틴 에덴 1, 2>
woply
2024-10-16 21:43
전체공개

소설 초반에 루스와 가까워지고 그녀와 지식에 대한 열망이 깊어지는 모든 과정을 묘사하는 문장에 심하게 매료되었다. 읽는 내내 생생하게 상상하게 만드는 차분하면서도 섬세한 문장들이 오묘하면서도 이토록 적절할 수 있는가 싶었다.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알아가고 호기심을 거쳐 이해가 깊어지는 과정을 예술적으로 표현한 문장을 숨죽여 읽었다.

여기 지적인 삶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꿈도 꾸지 못했던 온화하고 경이로운 아름다움이 여기 있었다. 그는 자신을 잊고 굶주린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여기에 그것을 위해 살 만한, 자신을 내던질 만한, 싸울만한, 아, 죽음도 무릅쓸 만한 어떤 것이 있었다.

그는 경청하기도 했지만, 자신의 시선이 그녀에게 박혀 있다는 것도, 자신의 눈에서 지극히 남성적인 본능이 뚜렷하게 내비친다는 것도 모른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가 부담스러우면서도 그의 그런 시선을 받는다는 것에 야릇한 쾌감이 느껴졌다. 위험하다고, 나쁘다고, 미묘하고 기이한 유혹이라고 그녀가 받은 교육이 경고했다. 그러나 그녀의 본능은 그녀의 존재 전체에 걸쳐 높고 맑게 울렸다.

굶주린 눈이라던가, 시선이 박혀 있는지도 본능이 내비친다는 것도 모른다던가, 존재 전체에 걸쳐 높고 맑게 울린다는 표현은 너무나 구체적이면서도 눈에 보이는 모습을 그 이상으로 의미심장하게 만들었다.

루스에 대한 열망을 느끼며 동경과 집착으로 파고들었던 그의 노력에 동질감을 느낌과 동시에 슬픈 결말을 향해가는 순수한 열정이 마음 아프게 느껴지기도 했다. 누군가가 나를 보면 이런 마음이 들까 싶기도 했다. 불같은 열정에 힘든 줄 모르고 열정적으로 달려들지만 어느 순간 자신의 목소리를 발견하는 마틴에게서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되묻게 되었다.

여기서 느끼는 딜레마가 있었다. 누군가로 인해 강렬한 영향을 받게 된다면, 그게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로 인해 많은 변화를 결심하게 된다면, 상대방을 위한 생각과 다짐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내가 사라지는 경험을 한다. 그 공허감을 문득 느낄 때면 무엇이 내가 되어야 하는지 혼란스러워진다. 정신없이 결핍한 문제에만 너무 가까이 몰입하고 있다 보니 오직 양자택일이 아니면 답이 없는 것처럼 시야가 좁아진다. 압박과 슬픔과 자아에 대한 목소리가 심하게 부딪히면서 온갖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동시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괴로움으로 무기력함까지 느낀다. 돌아보면 종종 강렬한 열정의 근원이 착각으로 판명되면서 너무 많은 혼란을 남긴다. 마틴의 괴로움이 이런 것이었을까.

마틴의 사랑이 슬픈 결말로 이어지는 순간에도 문장은 거침없고 당황스러울 정도로 여지없이 몰아간다. 천천히 과정을 숨죽이며 따라갈 수밖에 없도록 힘있게 마틴의 절망을 보여준다. 마틴의 선택은 자신의 공허감을 다시 발견하는 것이었다. 모든 걸 내던질 것 같았던 사랑 앞에서 현실을 보고 허상을 보고 다시 그 안에서 자신을 보았다. 자신이 가졌던 성공과 삶의 의미에 대한 환멸은 스스로를 죽음으로 내던진다.

이 소설은 삶의 본질이 무엇을 이루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확실하게 말하는 듯하다. 마틴은 그 답을 찾지 못했지만, 소설은 자신의 존재를 정의 내리고 믿음을 유지할 수 있을 때 살아갈 의미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거 같다. 그것이 꼭 정답이거나 최선의 답이 아니어도 말이다. 아주 무던하거나 아주 확고하거나. 나 역시 여전히 자신을 발견하고 탐구하는 여정에 존재한다. 마틴처럼 깊은 허무를 느끼고 스스로를 파멸로 몰아갈 용기도 없지만 그렇다고 시선을 고정하고 담대하게 살아낼 신념도 없다. 소설이 남긴 유일한 대답은 여전히 사는 건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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