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틴 에덴과 이별했다.
여오름
2024-10-23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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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침대에 누워 불을 껐다. 깜깜한 방에서 보이지 않는 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생각이 많아 잠에 들지 못하는 날이랑 비슷하게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고요하고 어두운 환경과 백색소음이 나의 감성을 자극해 낯 뜨거우면서도, 짧은 애정의 끝맺음을 한 듯이 공허해서 생각에 허우적대다가 잠들었다.
날이 밝고 나서야 감정에서 벗어나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읽는 내내 결국 사랑은 다 이겨, 사랑은 정말 위대하구나.라고 생각해서 마틴과 루스가 다시 재회하는 장면을 고대했다. 마틴은 루스와 대면하는 장면에서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았고 부르주아 계급에 선망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땐, 나는 루스만큼이나 충격받았다. 나중에는 '그럴 수 있겠구나' 싶었다. 루스로 인해 마틴은 꿈꾸는 지식인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루스가 성장의 씨앗이 된 것이다. 경제적여건을 갖추게 된 마틴은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물질적으로만 베풀 수 있게 된 지식인, 그뿐이었다. 물질적인 성공과 진정한 사랑의 갈등의 결과가 마지막 페이지라고 생각한다.
인생의 큰 깨달음은 어쩌면 무언가 엄청난 것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구나. 그에겐 깨달음은 벅찼고 큰 고통이었을 것이다.
마틴이 나에게 준 깨달음은 “인정하고 소화하기”이다. 성장의 기회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인정하고 그것들을 천천히 소화시켜 나의 가능성을 보여줄 것이다.
마틴의 삶과 나의 삶을 동일시하게 된다. 그래서 더 재밌으면서 동시에 안타까웠다.
과거엔 서점에 가면 읽고 싶었던 책들을 검색해 찾기보다는 제일 잘 팔리고 읽기 쉬운 베스트셀러나 판타지 소설을 구입했다. 제목에서부터 어려움이 뿜어져 나오는 책들은 도전하려고 하지 않았다. 책상에 앉아 책을 한장한장 넘기며 읽는 시간이 어색하고 어렵기도 했다. 그리고 ‘노동’을 하고 있을 땐 하루가 너무 고단했다. 책 소개글만 읽다 일주일이 경주마처럼 나를 스치고 지나갔다. 주말을 빌려 읽어보려고 했지만 밀린 잠이 쏟아졌다. 그런 나날들이 반복될때, 좌절하고 노동에 굴복해 이겨내지못하는 내가 한심하고 혐오스러웠다. 그럼에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마틴에덴처럼 책에 대해서 설명하다가 엉뚱한 설명을 해 얼굴이 붉어지기도 하고, 당황해서 내뱉은 말을 까먹어버리고, 소개글만 읽고 책에 대한 과시도 해보았다. 그런 내 모습에 실망하고 부끄러워도 책을 많이 읽은 사람처럼 보이고싶은 마음이 있었다. 주변분들이 권장했던 도서들이 나에겐 어려웠지만 읽으려 노력하고 집에 와서 그 날 들었던 생소한 단어와 책들을 검색해 보곤 했다. 어찌 보면 마틴의 모습은 북클럽에서 나의 모습을 보는듯해 공감성 수치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마틴에게는 루스와 브리덴슨이 지식과 문학에 영감을 주는 존재라면 나에겐 모임인 것 같다.
이제는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된다기보다 즐기고 싶어졌다. 즐기기 위해선 많이 읽어봐야 하는 건 맞지만, 나의 목적성과 방향이 달라졌기 때문에 더 나은 사색과 사고를 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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