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돌봄으로 가는 여정
2411 시즌 - 책 <읽지 못하는 사람의 미래>
2025-01-16 02:19
전체공개
정말 휴대폰을 보지 않은 것 같은 날에도, 스크린 타임을 보면 예상과는 달리 꽤 많은 시간을 소모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 정도로 휴대폰은 아무 의미없이, 꽤 자주 들여다 보게 된다. 반대로 책을 읽는 건 어떤가. 어떤 날은 마치 공부를 하러 가는 학생처럼 독서를 위해 자리를 잡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왜 그럴까. 왜 독서는 이렇게 불편한 걸까.
책에는 독서를 편하게 할 수 있는 방법 같은건 적혀있지 않다. 그럼에도 책을 읽고 나면 책장에 쌓인 책들을 읽고 싶게 만드는 묘한 마력?이 있다.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지, 왜 삶을 지속해야 하는지, 좋은 삶이란 어떤 형태를 갖추고 있는지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해 보는 질문들. 주의 침탈이나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나에게 이 책은 정답이 없는 삶의 질문을 책 속에서 먼저 찾아보는 건 어떤가 하고 넌지시 건네는 조언 같이 느껴졌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독서를 아래와 같이 정의했다.
“책의 진정한 가치는 저자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데 있지 않고 읽는 사람의 생각을 ‘촉발’하는데 있다.”
“잠들어 있는 정신을 깨우는 것은 외부에서 와야하지만 자기 정신을 되찾는 일은 고독 속에서만 가능하다. 자신의 내면을 여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때 책은 정신을 깨우는 촉매역할을 해낸다.”
그동안 책을 읽는 행위는 ‘저자와 나누는 대화’ 정도의 생각만 갖고 있었는데, 프루스트는 독서가 수동적인 행위가 아니라 개별적이고 주도적인 행위를 겸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변화가 내면에서 일어나는 만큼 같은 책을 읽어도 모두가 다른 결과를 얻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각자가 가진 삶의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결과도 다른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해 왔는데 프루스트의 정의를 읽고 나니 명확하게 이해가 되고, 앞으로 책을 읽을 때도 수동적으로 읽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질문하면서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책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돌봄의 읽기’였다.
왜 우리는 돌봄이 필요할까? 삶은 필연적으로 불안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대 사회는 불안을 촉구시키는 강력한 매개체(자본주의, 능력주의 등)를 갖고 있다. 인간은 서로 협력하는 문화를 통해 진화해 왔다. 책을 통해 돌봄의 눈을 기르지 않는다면, 자연과 예술이 아닌 소비만을 향유한다면 미래는 현재보다 더욱 불안해 질 수 밖에 없다. 이익과 편의만 따지다가는 어쩌면.. 우리가 만든 냉소적인 문화가 후대에게 ‘협력’과 ‘연대’ 부분에 퇴화를 일으킬 지도 모르겠다. 포스터의 소설에 나온 그들이 학습 동기를 잃어버려 결국 기계에 의존하게 된 것처럼.
서로 경쟁만 하는 사회라니..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돌봄의 눈으로 타인을 바라볼 때 비로소 우리를 위한 사회를 고민하기 시작하지 않을까. 사람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고, 지금 이 순간에도 헌신하고 있는 누군가로 인해 내 삶이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내가 알아차리지 않는다면 삶은 매순간 얼마나 각박하게만 느껴지는지..
“우리의 생존과 안위는 나를 넘어 다른 사람들에게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잊지 않기 위해 나는 읽는다.”
“위대한 예술가는 공정함과 연민을 담은 눈길로 앞에 놓인 대상을 본다. 그의 주의는 기적처럼 밖을 향한다. 즉 모든 것을 거짓된 일원성으로 환원해 버리는 자아를 떠나 깜짝 놀랄 만큼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세계로 향하는 것이다. 그렇게 방향을 롣릴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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