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 겉핥기

2411 시즌 - 책 <인챈트먼트>

여오름
2025-02-19 17:57
전체공개

수박 겉핥기란 맛있는 수박을 먹는다는 것이 딱딱한 겉만 핥고 있다는 뜻으로, 사물의 속 내용은 모르고 겉만 건드리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누군가를 만나 대화하고 그 사람을 깊게 알기도 전에 첫인상으로 판단한다.
대충 뭐 이런 성격을 가진 분이겠지, 이렇게 대화가 흘러가겠지. 나랑 잘 맞지 않을 것 같다 혹은 잘 맞을 것 같다 생각하며 마음대로 성격을 판단했다. 그리고 더 이상 관심 가지지 않았다. 어쩌면 이기적이고 거만하게 생각했다. 쉽게 판단한 생각들이 배우려는 자세를 방해했다. 나의 생각과 기준에 갇힌 채 살아갔다. 수박의 촘촘한 과육과 높은 당도를 확인하지 않고 겉 부분의 딱딱한 껍질만 보고 먹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예전 같으면 누군가 짜증을 냈을 때 “왜 저런 일로 짜증을 내지?”라고 단정 지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지금은 왜 저런 반응을 했을지 한번은 생각해 볼 수 있게 됐다. 그 사람은 오늘 힘든 하루를 보냈을 수도 있고, 어딘가 아프거나 불편한 상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섣불리 판단하기보다 그 말 뒤에 있는 진짜 의미를 보려고 한다.
차를 타고 가며 스치듯이 본 노을과 풍경이 아름다웠다. 빠르게 감정을 느꼈고 그게 끝이었다. 거기서 매혹을 찾았다고 생각했지만 곱씹어 보니 산책하면서 보는 하늘과 나무들, 자전거 페달을 휘저으며 지나가는 학생들에 더 많은 걸 느낄 수 있었다. 걸을 땐 구름이 조금씩 변하는 모습도 보이고, 바람이 스치는 느낌도 있었다. 매혹의 감각을 깨웠다. 어쩌면 그냥 스쳐 지나갈 뻔했지만, 좀 더 깊이 보게 되었다. 무언가에 매혹되는 순간도 느릿할 때 더 자주 느끼게 되었다.
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매혹의 감각이 깨어난 이유는 뭘까.
“책”이다. 책의 겉표지의 색감, 글귀, 폰트까지 느리고 천천히 바라본다. 어떤 의미가 담겨있을지 궁금해하며 요리조리 살핀다. 문장을 반복해서 읽기도 하고, 나의 마음속에 남게 되면 줄치기도 한다. 그리고 문장을 계속 떠올리게 된다. 읽을 때는 몰랐더라도, 시간이 느리게 지나가면서 이런 감각이었구나 깨닫게 되는 순간들도 많다. 그런 과정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준 게 아닐까.
애매한 감각들을 다시 일깨워 준 책에 감사하다.

그럼에도 솔직히 얘기하자면 어렵다. 지금도 깊게 대화해보지 않고 한마디 말로 의미를 멋대로 판단해버렸다. 책을 더 느리게 읽어야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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