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의 파편을 두리번거리며

2411 시즌 - 책 <인챈트먼트>

왕밤이
2025-02-20 01:04
전체공개

“세상이 모두 회색으로만 보였어”

한동안 우울증으로 고생하던 친구의 얘기였다. 세계의 색깔이 모두 사라진 친구의 심정이 조금은 느껴져 마음이 아릿했다. 그녀에겐 아마 이 세계에 자신이 매혹될만한 것이 없다고 느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런 시절이 있었다. 나는 그 당시 감정에 대한 모든 것이 불투명해졌었다. 슬픔을 희석시키려 하다 보니 기쁨까지 옅어 졌다. 삶이, 감정이 뭉툭해지면서 살아가야 하는 뾰족한 이유도 사라졌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경험에 대한 열정이 사라졌다. 사람은 어차피 죽는데 왜 열심히 살아야 하는지 의문만 품게 되었다.

‘두려움에 가득차서 위축되어 있고 지나치게 이성적으로 존재하려는 그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내가 일궈온 이 삶은 너무 작다. 그래서 충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충분한 생각을, 충분한 믿음을, 마법과도 같은 풍성한 존재와의 충분한 대면을. 나는 그것을 부정하고, 의도적으로 합리적인 것을 향해가고,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경험에만 매달리는데 집착해왔다.’ -118p

다행이 좋은 사람들을 만나 허무의 시기를 건너왔고, 지금은 매혹의 파편을 찾아가느라 모든 것을 손에 내려놓고 두리번거리고 있다.

‘나는 모두가 잠든 밤마다 밖으로 나가 내 자아를 향한 열망, 일하지 않고 단지 존재하는 시간을 향한 열망, 공연히 삶을 더 피곤하게 만들지나 않을까 하는 주저함 없이 그냥 다시 순수하게 호기심을 가질 수 있는 권리를 향한 열망을 달에게 전하려고 노력한다.’ -80p

나에게 매혹의 파편은 무엇일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노을이다. 차가웠던 강바람이 조금 따듯해지던 무렵 따릉이를 타고 강변을 따라 합정 공유오피스로 출퇴근 했는데 그 때 양화대교를 건너가며 바라보았던 노을의 빛깔이 늘 오묘하게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푸른 빛과 주황 빛이 자연스럽게 교차하는 배경에 구름은 하얗게 뭉실거리며 허전한 하늘을 한 켠을 채워주었다. 이 풍광의 아름다움을 보려고 내가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하며 자전거를 힘껏 밟아보았다. 내 얼굴을 스치는 시원한 바람이 내 미소를 이끌었고 자연이 주는 절대적인 위로에 나는 다시 삶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볼 힘을 가질 수 있었다.

작은 돌맹이에서도, 스쳐 지나가는 강바람에서도, 달빛의 그림자에서도 매혹을 느끼는 삶을 위해 오늘도 당연한 것들을 당연하지 않게 바라보려 한다. 중요한 건 활짝 연 가슴을 유지하면서 자신의 취약성을 지닌채,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유연한 존재로서 삶을 헤쳐나가면서도 자기 자신을 돌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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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Journey | 1개월 전

양화대교 노을의 매혹도 언제 한 번 느껴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