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다는 것의 의미
2503 시즌 - 책 <쓰기의 미래> 독후감
2025-05-21 22:50
전체공개
"쓰기는 생각하거나, 고치거나, 심지어 아예 중도 포기할 기회를 준다."
그렇다, 말은 한 번 내뱉으면 되돌릴 수가 없지만 쓴다는 것은 전송 버튼을 누르기 직전 혹은 업로드 버튼을 누르기 직전까지 수정이 가능하다. 쓰다가 전부를 다 지워버릴 수도 있다. 종이에 펜으로 사각사각 글을 쓴다면 수정테이프로 찍- 검은 펜으로 중앙에 주윽 그어버리고 다시 쓸 수 있다. 나의 생각의 단편들을 머릿 속에서만 맴돌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밖으로 끄집어 내어 나의 눈이 다시 보게 하고, 쓰는 과정에서 지켜보고 쓰여진 글을 보면서 다시 정리할 수도 있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어떻게 해야 할 지 갈피를 잡지 못할 때 자주 쓰는 방법이다. 머리 속에 있는 생각들을 흰 종이와 펜을 들고 끄집어 내기, 어떤 방식으로든 종이에 써내려가면 눈에 보이게 되고 그러면 어떤 걸 먼저 해야 할 지,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는 경우가 더러 있다. (물론 이렇게 했는데도 불구하고 정제하지 못할 때도 있다.)
"아테네 시민은 도자기 조각, 즉 도편에 당분간 안 봤으면 하는 사람의 이름을 써넣을 수도 있었다. 도편추방이다."
쓰기가 이렇게 무섭다. 카카오톡에 담겨져서 한 번 상대에게 보낸 메세지는 삭제 하려면 기록을 남기고 삭제를 해야 하고, 만약 삭제할 수 있는 시간을 넘겼다면 그 메세지는 영원히 박제된다. 아마 상대방이 삭제한다고 하더라도 서버에는 일시적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실 우리는 상대방에게 문자나 카카오톡으로 글을 써서 보내는 것 자체에도 신중할 필요가 있는 것인데, 나 또한 빨리빨리가 몸에 깊게 배어 있는 직장인 인지라 빠르게 읽고 빠르게 답변하지 않고는 참지 못한다. 느리게 천천히 한번 더 내가 보내려는 메세지를 다시 읽고 상대방에 오해할 여지는 없는지 생각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물론 잘 되고 있지는 않다.
"만약 몸에 착용하는 스마트 기기가 우리의 건강 상태를 추적하는 일을 떠맡게 되면, 우리는 자기 몸을 스스로 살피는 노력을 하지 않을 위험에 처한다. 우리는 살과 피로 이루어진 신체가 아니라 일련의 수치가 된다."
일련의 수치로 나를 기록하는 것이 나쁜가? 생각해보았다. 어찌 되었든 적극적으로 스마트 기기로 내 상태를 기록하고 운동을 기록하는 사람들은 나의 피지컬 데이터를 기록하여 관리하고 싶어하는 사람일텐데, 이 부분에서는 작가가 너무 아날로그적인 인간이 아닌가 비판도 조금 해보았다. 눈에 보이는 수치와 변화량으로 나를 기록해 두어야 조금 더 건강을 위해, 날씬하고 탄탄한 내 몸을 위해 시간을 쓰고 운동하러 나가는 괴로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그 괴로움을 이겨내지 못한 오늘은 계획보다 빠르게 독후감을 쓰겠다고 노트북 앞에 또 앉아버렸지만, 운동을 하게 하는 원동력 중에 하나는 나를 기록하고 복기하면서 스스로 뿌듯해하기도 하고 성취감을 스스로에게 주는 일이기도 하다.
"펜과 종이로 무언가를 직접 쓰는 것은 자신의 연장입니다. 당산은 눈으로 보는 상태에서 당신의 손으로 단어를 느껴 볼 수도 있습니다. 펜으로 종이에 힘을 가해서 옴폭 패인 홈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내가 만질 수 있고 소유한 것입니다. 반면에 내 컴퓨터의 클라우드에 저장된 문서에 대해서는 그게 실재하는 것 처럼 느껴지지 않아요."
"오랜 세월 쓰는 일을 해 온 사람들의 손은 '작가의 굳은살'이 박혀 있다. 펜에 눌리는 가운뎃손가락의 첫 마디에 박힌 굳은살 말이다."
"펜과 종이를 사용하면 당신의 기억을 매달아 둘 더 많은 '고리'가 뇌에 제공된다. 쓰는 동안 펜으로 종이를 꾹 누를 때, 당신이 쓰는 글자를 볼 때, 그리고 쓰면서 나는 소리를 들을 때 많은 감각이 활성화된다. 이런 감각적 경험들이 뇌의 다양한 부분 사이의 연결을 촉진하고 배움을 향해 뇌를 열어젖힌다."
후반부에 손으로 쓰는 글씨와 타이핑을 하는 것 두 가지 방법의 쓰기가 어떤 식으로 사람들에게 작용하는지, 그리고 뇌에는 어떻게 작용되는지를 설명하는 부분이 제일 마음에 와 닿았다. 다이어리를 들고 다니기에는 꽤나 무거운데, 손으로 쓰면서 일정이 정리되고 하루를 기록하는 것이 즐겁기는 하고, 가볍게 다니자고 핸드폰과 태블릿의 어플리케이션에만 의존하자니 손으로 쓰는 감촉과 느낌이 그리워서 한참 고민하고 있던 차에 이런 내용을 봐서 더 반가웠을 수도 있겠다.
전반적으로 편리성만 차치하자면 손으로 꾹꾹 종이를 눌러 펜으로 글씨를 쓰는 것에 저자는 훨씬 큰 점수를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작가의 굳은살' 이라는 단어를 본 순간 나의 오른손 중지를 관찰해보게 되었는데 초등학생 시절까지만 하더라도 타이핑은 상상할 수 없었고 수업시간에도 숙제를 할 때도 항상 샤프와 공책과 교과서가 필요했고 어린 나의 손에는 항상 중지 연필이 닿는 곳과 새끼손가락 중간 마디 끝 종이가 닿는 부분에 굳은 살이 남아 있었고 굳은 살이 두꺼워질 때는 손톱으로 떼어내기도 했을 정도였는데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는가 싶게 굳은 살이 있던 자리는 말랑한 살만 남아 있었다. 아마도 대신에 손가락 끝 손톱들과 이 손가락을 움직이게 하기 위한 손목에 더 무리가 가고 있겠지만 짧다면 짧은 시간에 손으로 펜을 잡고 글씨를 쓰는 행위의 빈도가 어마어마하게 줄어든 것이다.
이렇게 "쓸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한 우리 뇌에게 조금이라도 회생의 기회를 주려면 앞으로 우울하고 인생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잡념만 많을 때 연습장과 펜을 집어 드는 행위를 더 늘려야겠다. 꼭 그것의 목적이 촘촘한 기록이 아닌 생각 뱉어내기 일지라도 말이다.
"인간이 '호모 사피엔스'라 불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라틴어 사피엔스sapiens는 '현명한' 혹은 '통찰력이 있는' 이란 뜻이다. 그러려면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GPT를 비롯한 퍼플렉시티, 그록 등 여러가지 생성형 AI들을 적극 이용하게 되면서 학창 시절 문제집에서 문제가 잘 풀리지 않으면 바로바로 답지를 보고 이해하고 싶었던 성질 급한 내가 다시 되돌아와 고민하는 시간 없이, 생각하는 시간 없이 바로 답지(GPT에게 물어보기)를 여는 죄책감이 들던 요즘이었다. 내가 모르는 곳에도 다른 사람들도 다 이렇게 하고 있으리란 일말의 위안을 스스로에게 건네면서도 내심 치팅을 들킨 수험생처럼 괴로워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AI와 함께할 수 밖에 없고 함께하지 못하면 뒤쳐진 사람이 되게 생긴 현 시대에, 현명하게 이 친구로 빠르게 똑똑해지고 대신 이해하는 시간과 곱씹는 시간은 더 늘려서 같이 성장하는 생각하는 사피엔스로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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