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독자)는 어떻게 읽는가?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 조지 손더스 독후감

산이화
2025-06-25 16:45
전체공개
이 책은 나의 독서이력에 참으로 특이한 결을 남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 전체를 다 읽진 못했다. 아니 의도적으로 빨리 읽지 않았다고 하는 편이 맞을것 같다. 천천히 곱씹어가며 잘근잘근 소화시키며 읽고 싶은 책이었기 때문이다.

타임이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고, '현존하는 영어권 최고의 단편소설 작가'라고 알려진 조지 손더슨이 문예창작 석사과정에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수업에서 이루어진 논의를 바탕으로 한 글이라고 하니 작가가 아닌 나에게는 조금 낯설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는 독자로서도 도움이 되는 많은 글쓰기 정보들이 가득했다. 그러나 진짜 소설을 집필한 작가가 이 책을 읽는다면 과연,
 '맞어. 자네가 말한대로 바로 그 의도로 집필했네.!' 라고 말할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이 책의 7편 중에서도 안톤 체홉의 '사랑스러운 사람'이라는 단편은 대부분이 그렇지만 소설 본문보다 두 배는 넘을것 같은 작가의 생각과 그러고도 뒤에 든 생각까지 피력해놓은 작품이어서 기억에 많이 남았다.
이 단편에 대한 해설 중에서  '사랑'이라는 말랑말랑한 감정을 한 세기도 전, 러시아라는 곳에서 일어나는 한 여성의 사랑의 여정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존재하는 어떤 경향, 사랑을 누군가와의 '완전한 소통 상태'라기 보다는 '완전한 흡수상태'라고 오해하는 경향에 관한 이야기라고 분석해 준것은 고전이 시대를 초월해서 아직도 읽히고 있음을 설득력있게 증명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주인공 '올렌카'가 사랑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표로 정리해 놓은 부분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이 분석적인 표를 보고 나니 처음에 별 생각없이 이야기가 흐르는대로 감정따라 읽었던 경험과는 확실하게 다른 부분, 즉 작가의 계산된 의도 등을 따라가며 훨씬 복합적으로 소설을 이해하데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작가 스스로도 본인이 표로 분석한대로 체홉이 패턴을 만들어 놓고, 그에 따라 이야기를 썼을리는 만무하다고 밝히고 있는데, 단편소설의 귀재인 체홉의 직관적인 감각과 정확성과 섬세함이 결과적으로 사랑스러운 순형패턴과 인물을 만들었을거라고 말하고 있다. 나도 여기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작가가 글쓰기를 하려는 학생들에게 좋은 작품을 분석해서 가르치고 토의하고 했던 내용을 평범한 독자인 내게까지 공유해 준 작가에게 새삼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이쯤에서 독자인 나는 과연 어떻게 읽는가?
책이 있으니 그냥 읽는다. 권하는 사람과 매체가 있으면 더 잘 읽는다.
목적과 필요가 있으면 더더더 열심히 생각하며 천천히 읽는다.
그러니 나의 요구를 맞추기 위해 애썼던, 지금도 애쓰고 있는 나의 모든 작가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 책을 읽고 한 가지 도전해 보고 싶은게 생겼다면~ 
'나도 언젠가는 나의 독자가 원할지도 모를 어떤 얘기를 써볼까? 과연 그럴수 있을까?....' 호호호!
그러기 위해선 우선 이 책을 끝까지 천천히 완독하고 분석하고 또 꺼내볼 수 있도록 가까이 두어야겠단 생각도 해본다.

그동안 나를 일깨우고 흥분시키고 감동과 전율로 행복하게 해 준 나의 수많은 작가들의 노고에 감사하며, 
앞으로도 부디 건강한 맘과 몸으로 쓰고 싶은 글들을 맘껏 써 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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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F동 사감 | 9일 전
당신의 얘기를 원하는 독자가 있을 겁니다. 최소한 지금 여기에 한 명 있는 건 확실하네요. 글이든 책이든 쓰이고 난 후에야 독자가 마치 어디엔가 내내 숨어 있다가 기다렸다는 듯이 "나 여기 있어요" 하고 나타나는 법이니까요. 부디 건강한 맘과 몸으로 쓰고 싶은 글들을 맘껏 써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