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들> 장에서 나온 '의도론의 오류'(작가의 의도가 곧 작품의 의도라고 보는 오류를 가리키는 신비평 용어), '초고와 퇴고' 부분을 인상 깊게 읽었다. 그 중에서도 위 모든 의미를 담고 있는 가장 인상적인 문장은 이러하다.
이런 식으로 쓰이고 수정된 한 조각은 생물학 수업의 씨 결정結晶처럼 작게 아무런 의도 없이 출발하여, 유기적으로 자기 자신과 반응하여 넓어지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자연적 에너지를 모두 발산하게 된다.
작가의 초기 의도가 작품의 결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일단 시작하면, 그러니까 씨앗을 뿌리면 결과물이 어디로 뻗어나갈지는 작가도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쓰기는 가치 있는 것이다. 첫 계획대로만 써진다면 쓰는 과정 중 작가의 확장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작가는 당연히 완성된 모습을 상상하고 의도할 것이다. 그렇기에 한 번에 표현하려 들면 엄두가 나지 않아 시작 자체를 하지 못한다. 그러니 일단 씨앗(한 문장)을 심어야 한다. 그리고 피어나는 새싹의 방향을 수용하며 돌보면 처음 의도했던 것보다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오게 된다.
위 개념은 어느 예술 분야에나 적용되듯이 코딩에도 적용된다.
나는 코딩할 때 갈겨쓰는 것으로 시작한다. 논리적으로 간신히 동작만 할 수 있게 하며 전체적인 흐름을 잡고, 그 후에 코드를 정돈한다. 이 과정을 반복한다.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작성하려 들면 시작이 막막하고, 중간중간 호흡이 끊겨 몰입하기도 어렵다. 글을 쓸 때 문장이 문장을 부르듯이, 코딩도 일단 초석(초안)을 만들면 자연스럽게 뒤에 올 코드들이 따라붙는다. 서서히 구체화되는 과정을 목도하며 처음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 들이 셈솟는다.
좀 더 거시적으로 보면 코딩의 결과물(예: '북클럽 오리진 사이트')도 모두 마찬가지다. 작년 2월 북클럽 오리진 사이트를 만들기로 결심한 당시는 지금 이런 모습이 될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는 코드 한 줄을 땅에 심었고 사피님들의 따뜻한 햇살을 받아 더욱 북클럽 오리진답게 자랄 수 있었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속담이 더욱 가슴 깊이 파고드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