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좀 더 좋아하기로 한다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 조지 손더스 독후감

자장가
2025-06-26 05:58
전체공개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의 제목이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였는지, '작가는 어떻게 쓰는가' 였는지 계속해서 헷갈린다. 책의 원제를 확인해보니 'A Swim in a Pond in the Rain: In Which Four Russians Give a Master Class on Writing, Reading, and Life'이다. 아이쿠! 읽기와 쓰기와 삶까지 포함하고 있다. 러시아 작가 네 사람이라니, 영문 제목을 그대로 옮겨서 출판했다면 사람들이 감히 읽어보겠다고 덤빌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 같다.

전문적인 작가를 대상으로 진행되는 (서문에서는 신입생 여섯 명을 3년 동안 돕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강의 내용이 책으로 엮여 있다. 일반적인 책 읽기가 스토리를 따라서 '이해'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이 책은 수강신청을 하고 충분히 시간을 들여서 '생각'하고 '습득'해 나가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렇다! 책 말미에 부록으로 연습 혹은 과제까지 포함되어 있다.

보통 책을 읽으면서 새롭거나, 재미있거나, 공감하거나, 놀랍거나 등의 이유로 잠시 멈추는 곳이 생기면 스티커를 붙여 이정표를 표시해 둔다. 다음 번엔 폴짝거리며 뛰어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의 표시이기도 하다. 이런! 이정표가 너무 많아져서 별다른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독후감 제출 일정을 알려주면서, '전체적인 감상을 쓰셔도 좋고, 소설 7편 중에서 특별히 한 작품이나 몇 작품에 초점을 맞춰서 쓰셔도 좋'다고 안내해 주셨는데, 이유 없는 '친절'이 아니었다. (이제 독후감을 제출하고 나면 천천히 쉬어가면서 마음에 들었던 부분부터 다시 읽어보려고 한다.)

항상 그렇듯이 두 가지 질문이 남았다. '무엇을 알게 되었는지'와 '그리하여 무엇이 달라졌는지'이다. 

먼저, 알게 된 것은 많은 소설들은 내가 그동안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계산적이고 치밀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작품이며, 그것은 다른 예술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우리가 논의했듯이 단편이라는 형식은 당연히 능률을 옹호한다. 한정된 길이 때문에 모든 부분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거기에 있어야 한다. 우리는 구두점 수준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작가가 의도한 것이라고 가정한다.

이 책은 '작가'의 지독하다고 할 만큼의 엄격함과 치열함을 확인하는 '저자'의 또 그만큼의 엄격함과 치열함을 여실없이 보여준다. 보통은 여기에서 그만두는 것이 아닐까 하는 지점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확인하고, 생각하고, 다시 확인한다. 그리고 다시 생각을 열어둔다. 세상에 진짜가 만들어지는 과정이자 태도이다. 다행히도, 손더스는 따뜻하고 유머러스하다. 

 "부르킨과 알료힌은 이미 옷을 입고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지만 그는 계속 헤엄을 치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어이쿠 하느님!" 그는 계속 탄성을 질렀다. "주여, 저에게 자비를." "그만하면 됐잖아!" 부르킨이 그에게 소리쳤다. (소설에서의 맥락은 조금 다르다.)

그리하여, 어쩌면 "알면 곧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으로 보게 되고, 볼 줄 알게 되면 모으게 되니 그것은 한갓 모으는 것은 아니다(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 看則畜之而非徒畜也)"라는 말처럼, 나는 아주 조금이나마 소설을 더 좋아하게 되었고, 세상에 대해 조금 더 겸손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래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아마 절대로 소설을 쓸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당신은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며, 예술은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일이 몇 번이고 허용될 뿐 아니라 핵심 기술이 되는 장소다. 당신은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얼마나 강하게 좋아할 수 있는가? 그 모든 것이 당신의 근본적 선호의 어떤 자취와 확실하게 융합되도록 얼마나 오래 작업할 용의가 있는가?
선택하고, 또 선택하는 것. 그게 우리가 가진 전부다.

오래 전에 “쇼트 말아드시고 호텔 와서 시리얼 말아드심^_^b”이라는 글이 인터넷에 돌아다닌 적이 있었다. 그녀가 의도한 바가 무엇이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나는 '정말 대단하고 존경할 만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말 뒤에 숨어 있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노력과 실패의 경험이 언뜻 보였던 것 같아서였다. 

뒤에 든 생각 #1
이렇게 치밀한 '저자'가 목차(혹은 강의)를 진행한 순서에도 많은 고민과 시행착오와 수정의 결과가 반영되어 있을 것인데, 어떤 순서였을까를 나름 생각해본다.

책을 읽으면서, 어떤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떤 조직에서 일하면서, 어떤 나라를 여행하면서, 나 혹은 우리는 각각의 개별적인 사건, 대화, 활동, 역사를 듣고, 경험하고, 알게 되고, 연결된 무엇으로 정리하게 된다(이야기의 핵심). 그 과정과 함께 우리의 생각과 감정 속에는 흐릿한 구름처럼 그 책, 사람, 조직, 나라에 대한 이미지와 느낌을 만들어 간다(패턴이 있는 이야기). 그것은 잘못된 판단일 수도 있고(그러나 그들은 계속 마차를 몰았다), 나의 모순을 드러내는 과정이 될 수도 있다(비 오는 연못에서 헤엄치기).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여전히 정리되지 않을 수 있다(생략의 지혜).

고리키가 한번은 톨스토이에게 어떤 인물에게 할당한 의견에 그 자신도 동의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정말 알고 싶나?" 톨스토이가 물었다.
"정말로요." 고리키가 말했다.
"그럼 말해줄 수 없네." 톨스토이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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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F동 사감 | 9일 전
알겠으니, 모임 때는 다 말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