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에 위치한 신두리 해안사구를 가게 되었다.
하루 종일 비가 오락가락했다. 직원분이 말씀하시길 사구에 있는 도마뱀들은 비를 피해 다 굴을 파고 들어갔을 거라고 했다. 동물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찾아갔지만 볼 수 없어 아쉬움이 있었지만, 비가 다시 오기 전에 서둘러 출발했다. 출발과 동시에 비가 점점 쏟아졌다. 점점 비도 꽤 많이 내려 우산을 안 쓰게 되면 몇 초 만에 흠뻑 젖을 정도로 많이 왔다.
사구는 비에 젖어 갈색 모래가 되어 있었고 안개가 가득해 땅 위에 있는데도 공중에 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비가 우산을 톡톡 두드리는 소리들과 다리에 살짝살짝 튀기는 물들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사구 입구에 도달하자 홀로 있는 강아지를 보았다. 강아지는 비에 흠뻑 젖어있었고, 내리는 비를 고스란히 맞느라 눈을 게슴츠레 떴다. 자유롭게 테크 아래로 내려가 젖은 모래를 밟고 풀냄새를 맡으며 사구를 진심으로 즐기고 있었다. 나를 앞질러가던 강아지는 당장 이 곳에 주인은 없는듯 했지만, 목줄은 차고있었다. 제약 없이 풀어놓는 강아지인가싶은 생각을 하며 그렇게 우리의 동행은 시작됐다.
마치 길을 안내하듯이 나를 앞섰다. 가다가 잠시 길을 멈추고 유심히 모래 안을 쳐다보고 있다. 혹시 비를 피해 숨어있는 도마뱀의 냄새나 소리를 들은 것일까? 나도 같이 멈춰 긴장하고 있었다. 이내 다시 발걸음을 돌려 가벼운 발걸음으로 총총 앞서갔다. 비가 오는 바람에 사람들은 깊숙한 곳까지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고 입구 근처에서 맴돌았다. 난 좀 더 깊숙하게 들어가 보기로 했다.
비가 생각보다 많이 오는데 비를 고스란히 맞고 있는 강아지가 걱정되었지만 아무렇지 않게 가벼운 걸음으로 구경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나도 용기를 내보았다. 나무가 우산이 되어주기도 하고, 강아지처럼 비를 맞고 싶다는 생각을 해서 우산도 잠시 접고 같이 걸었다.
걷다보니 갈림길이 나왔다. 이대로 직진하게 되면 돌아오는데 1시간은 넘게 걸릴 것이고 여기서 돌아가면 30-40분 안에 출발 지점으로 돌아갈 것 같았다. 내가 보고 싶은 대로였을지도 모르지만, 표지판 앞에서 강아지는 살짝 머뭇거리며 나를 흘끗 바라보았다.
”어느 쪽으로 갈 거야?” “거기로 가면 너무 오래 걸려. 이쪽으로 가자. 이리 와”라고 말하며 난 다시 출발 지점을 향해 걸었다. 뒤에서 발소리가 들리더니 강아지는 나의 다리를 불쑥 지나 추월해 총총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느 쪽으로 갈 거야?” “거기로 가면 너무 오래 걸려. 이쪽으로 가자. 이리 와”라고 말하며 난 다시 출발 지점을 향해 걸었다. 뒤에서 발소리가 들리더니 강아지는 나의 다리를 불쑥 지나 추월해 총총 걸어가기 시작했다.
새가 나타나면 전력 질주해서 새를 따라가기도 하고, 멈춰서 멀리 보이는 태안 바다를 바라보기도 했다. 무슨 생각을 할까. 같은 곳에서 같은 곳을 바라봤을 때는 친구의 속마음을 알 수 있을까 싶어 똑같이 행동하게 됐다.
행복은 감정이 아닌 존재의 방식이라는 문장이 이해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설레고 만족스러운 감정들은 순간적인 것이며, 행복은 삶 전체의 방식, 그 자체가 행복이라는 것.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하고 찾아가는 것이 행복이 아닐까? 그리고 같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충만한 행복이 되는 것 같다.
”살면서 만나는 몇몇 순간들, 이 특정한 순간의 그림자 속에서 우리는 삶에서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이 순간들이 바로 인생 최고의 순간인 것이다.”
강아지처럼 순간을 즐기고, 순간에 몰입했던 기억들이 아른거린다. 그런 게 삶을 대하는 태도가 아닐까 싶었다. 혼자 묵묵히 걷기도 하고, 같이 길을 걸어보기도 하고, 잠깐 멈춰서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감정을 공유한다.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일들이 수없이 있을 것이다. 그거조차도 혼자, 혹은 함께 살아가야 할 순간들이지 않을까?
그렇게 같이 걷다가 출발 지점에 다 와서야 풀숲으로 들어가더니 풀을 뜯고 부비며, 나비를 쫓아 달리기도 했다. 비가 와서 시야가 뚜렷하지 않아 이곳이 출발 지점이 맞는지 헷갈렸었는데, 그런 나를 데려다 준 것 같아 고마웠다. 마지막 인사는 하지 못했다. 어쩌면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했기에 더 오래도록 마음에 맴도는지도 모른다.비가 많이 와서 걷기엔 힘든 날씨였는데, 그런 불편함에서 오히려 즐거움과 행복을 얻게 되었다. 행복은 불편함을 끌어안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몸으로 느낀 순간이다.
잠깐 만난 강아지에게서도 다양한 감정이 들었는데, 11년을 함께한 늑대와는 얼마나 다양한 감정과 경험들이 오고갔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인간 혼자서는 온전히 경험하기 어려운 것들이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