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영장류와 달리) 인간은 어떻게 행복해지는가?

<철학자와 늑대> - 마크 롤랜즈 독후감

땡초맛 새우깡
2025-08-20 14:45
전체공개
나도 큰 개가 키우고 싶었다. 
‘늑대라니!‘ 시작부터 알 수 있었다. 난 이 책을 매우 재밌게 읽게 될 것임을. 작가와 브레닌이 보낸 시간을 사계절처럼 보며 공감했다. ’녀석은 떠났다. 나는 브레닌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싶다‘ 부분에서는 절절한 마음이 느껴졌다. 현재의 부재를 도무지 수용할 수도, 극복할 수도 없어서 결국 모든 존재를, 그 자체를 부정할 수 밖에 없는 그 아픔과 공허감을. 마지막 파트를 읽으며 다음 책인 ‘인간과 짐승’에 대한 기대도 같이 생겼다. 철학자와 늑대는 육견일기의 탈을 쓰고 있지만 철학자가 쓴 육견일기 답게 인생 모두를-삶과 죽음, 일, 관계, 사랑 모두를 다루고 있다. 덕분에 독후감이 아니라 내 인생 진단서로 써버린 느낌이다. 
   
독후감은 브레닌과의 햅삐 포인트와 고찰 부분, 메모로 구분된다. 엄밀히 독후감은 2번 파트로만 봐야...
인용된 부분들은 '  ' 안에, 개인적인 생각은 '-->'이하로 구분해 썼다...
   
1. 햅삐 포인트 - 작가가 보낸 브레닌과 시간들을 상상하니 웃음 나고, 귀여웠던 부분들이다.
#1. ‘’서로에 대한 신의가 타인(인간)에 대한 정의에 앞선‘ 행동이었고, ’우리 둘은 한 무리였고, 둘만의 세계에 살았다. 무리밖에 있는 사람들은 실제만큼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2. (전기상자 실험을 설명하며 격분한 작가) ‘감옥에 갔어야 마땅하다. 이것은 하버드의 실험실에서 했기 때문에 이들은 학문적 성공이라는 묘한 보상을 받았다....이 실험은 최소한 인간의 사악함을 증명하는 데에는 성공인 듯 하다.
#3. ’집을 빌릴 때 첫 번째 규칙이란, 바로 사실을 은폐하는 것이다. ‘작은 강아지가 한 마리 있는데, 괜찮지요?’ 거짓말이라기보다는 과장법의 반대인 과소법 정도로 해두자.‘
 --> 영장류 간에도 정의가 아니라 신의가 중요하다면서요. 영장류 답게 정교하지도 않고...브레닌이 성숙한 늑대가 아니었으면, 야생성을 감추지 못했다면 그런 과소법이 먹혔겠습니까(ㅎㅎ)
   
2. 고찰 및 생각거리들
1) 인간이 정말 이런가?
- 침팬지 폴리틱스에서 언급되었던 정말 속임수를 잘 써야하고, 동료와 연합하며, 독심술과 고의성을 갖는다가 인간만이 갖는 ‘우월성’의 근거인가. 오히려 우월성이라고 설명한 건 비영장류와 달리 섹스/교미의 전도로 인한 것이란 접근이 더 그럴싸하게 느껴졌는데? 정의와 명분, 도덕의 태생까지도 설명되는 것 같았다.
   
- ’능력이 아닌 의지부재로 도덕적, 인식적 의무를 소홀히 하는 것이 세상 속 악의 본질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것이 없다면 어떠한 태만도 문제가 되지 않을 악의 또 다른 구성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희생자의 무력함이다;
‘상대가 무력하면 정중하거나 존중하는 태도로 대해봤자 실익이 없기 때문’, ‘존중의 유일한 동기는 도덕적 동기 뿐인데, 도덕적인 사람만 가능하다는 것’
--> 직시하지 못해 발생하는 악(나도 모르게 저지르거나, 한나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 등을 말하며 진짜 악은 인간만이 하는 직무유기에서 더 많이 발생하며 ‘의도된 악’은 오히려 드문 예외라고 설명한다. ‘흔한 악‘은 그동안 얼마나 ’흔해‘서 망각되고, 간과되고, 덮여져 왔던가. 그런데 무력함도 악의 일환으로 본다고?약자를 보호할 대상이 아니라, 무가치함을 넘어서? 

(내겐 악의 문제와 아래의 역학관계가 이어졌다...)

애초 약자는 계약의 범위도 아니라고. 위협도 지원도 되지 않기 때문에...(너무해). 이런 전제하에 결국 계약이란 사기꾼에게 유리한데 ’뒤를 봐주고 있다고 상대가 믿으면 그만이지, 실제 희생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이미지가 전부‘라는 것이다. ’영장류가 경멸하는 것은 어설픈 협잡꾼의 정교하지 못한 속임수이지, 실제 속임수를 흠모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문명사회에 살면서 사기꾼이 아니라면 내 사기술이 정교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홉스가 못한 질문이 하나 있는데, ’어떻게 야만적 인간이 애초에 이 협상데이블에 앉았냐 하는 것‘이다. 사회계약설은 도덕성과 정당성에 대한 것인데 말이다. 작가는 이 계약이 애초에 ’영장류는 자신보다 현저히 취약한 존재에 대해 도덕적 의무를지지 않는다‘는 결론이 난다.
--> 자연의 약육강식 시대를 지나, 인간은 계약을 통해 내가 다른 사람의 생명, 자유, 재산을 존중하는 대가로 상대방도 나의 생명, 자유, 재산을 존중하기로 합의했다는데(애초에 사회라는 구성이 이렇게 출발한거라면 그런 도적적 의무를 유기하면 안되는거 아닌가? 내가 저항하기 이전에 하지 말았어야 하는거 아닌지?), 
--> 이쯤되니 인간과 사회에 대한 작가의 냉소와 혐오가 너무 깊은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사회의 냉혹함이라 해도 도덕성을 지켜야 한다고, 믿는다고 하는 내가 위선인건지. 

다만, 존 롤스가 말한 공정성을 언급하면서 ‘자신이 누구인지, 사회구성의 가치를 어디에 둘지의 정보를 모두 배제해야 하고, 우리 인간이 이성적이란 정보는 허용’하고 있는데 작가는 ‘인간이란 사실’과 ‘이성’도 배제해야 한다고 설명하니, 이 관점이라면 나는 위선자(또는 논리가 일관되지 않는 것이)가 맞는 거 같다. 유아, 노인까지는 괜찮은데 ‘광인’은 좀 조심스럽지 않나 하면서 나 또한 사회계약에 ‘모든 인간’을 상정하진 않는구나 싶어서... 
   
2) 인간은 어떻게 행복해지는가? - 작가의 행복론에 동의한다.
   
a. 고통이 수반됨
‘ 최상의 상태가 되려면 먼저, 희망도 없고 더 이상 계속해도 얻을게 없는 궁지 속으로 내몰려야 한다. 그래도 우리는 계속 나아갈 수밖에 없다.’
--> 줄을 열심히 긋다가 아예 페이지를 접어버린게 여기였다. 브레닌의 토끼는 인간의 행복에 해당하는데 그건 황홀경이 아니라 고통을 수반하고, 꼭 토끼를 갖는 것도 필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건 ’고진감래‘와도 좀 다르고 ’행복 자체가 불편함을 끌어안고 있다’는 것이다. ‘즐거움과 불편함이 하나 되어야 완전한 행복이라 할 수 있다’고. 냄새나는 치즈가 풍부한 풍미를 선사하는 것처럼.
   
b. 목표? 결국 부질없는게 본질임
인간은 ’일직선으로 죽음이란 유한성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같은 삶에서 무언가를 이루고 싶어하고(목표를 가짐), 이를 위해 현재를 지연시키거나 미래를 유예하는데(조정) 이런 과정들은 사실 그 양이나 질로 하여금 우월성을 담보하지 않는, 애초 ’투자‘란 개념으로 접근하는데 이건 매우 영장류적 생각이라는 것이다. 다른 동물들이 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죽음을 좇는 존재’ 이자 ‘인간 실존의 근본적인 고통이다’
‘우리 모두의 삶은 시지프스가 언덕 위로 향하는 여정과 같으며, 하루하루는 시즈프스의 한 발자국과 같다’
--> 우월의 관점이 아닌, 차이의 관점에서 인간과 비인간을 구분하는 기준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한 부분이었다. 인간만 그런거고, 의미도 없다.
   
c. 내게 주어진 순간 자체가 중요하고, 최고의 순간임.
‘중요한 것은 내 모든 최고의 순간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완전하며, 나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인지 정의하며 그 존재를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순간이지 그 순간에 드러나는(그것도 잘못 해석된) 특정한 존재가 아니다. 그것이 어려운 교훈이다.’
--> 여기에서 울 뻔했다. 비루하고, 별로라도 그게 내 인생의 ‘최고의 순간’으로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고집스러운 내 탓에 주변도 고생했겠지만 알 바인가. 나는 내 삶을 걸고 그 좌충우돌을 견뎠는데, 나 외에 무슨 의미가 있을 수가 있나. 이렇게까지 고군분투 하는데 짠하면서도 사랑스러운 나 자신.. 왜 영원히 같이 못 있겠냐 싶다.
   
d. 지금 삶이 상향곡선이어서 그런거 아님?(니체)、다가올 미래를 유예하고 있기 때문아님?
아님. 내 지금은 미치도록 슬프고, 짜증이 나는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이 이후로 내가 내 삶을 불행하게 생각하는 이유를 적어봤는데 얼른 적어도 1페이지가 나왔다.) 이 벗어나고픈 시간 상황을 사라지게 할 수없고, 끝낼 수도 없다고 생각하기에(용역 산출물 내기 전까지는) 야근과 재미없음과 지겨움, 촉박함....이런 것들의 반복은 확정적이다. 그렇기에 내게 주어진 것을 그저 해나가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일 뿐이다.
   
e. 외롭지 않나? 그렇게 살아가기가? 
‘만약에 내가 영장류가 아니라 늑대였다면 론 울프(무리를 짓지않고 혼자 사는 늑대)가 되엇으리라....아무도 그들이 왜 그러는지 모른다. ... 어떤 론 울프는 혼자 죽기도 한다. 특히 운이 좋은 론 울프는 같은 처지의 론 울프를 만나 그들만의 무리를 만들기도 한다.’
--> 지금의 나는 론 울프쯤 되는 것 같다. 이 좋으면 다른 론 울프를 만난다‘라...론 울프 입장에서는 운이 없는 것 아닌가 싶다. 둘이던 셋이던 복수가 되면서 더 이상 론 울프도 아니거니와 진짜 ’론‘이었으면 복수를 좋아할 리가. 그런 거라면, 불가피하게, 피치못하게 ’론‘이 된 ’울프‘겠지. 우리 부모님도 너 진까 그렇게 살기 괜찮냐? 종종 물어보시는데, 답이 없다...ㅎ
   
3. 몇가지 메모들(추리고 또 추렸다...)
- 각 곤충은 한나의 유기체라기보다는 개별세포와 같다고 한다. 즉각 세포의 행복이나 정체성이 벌집이나 군체적 유기체colony organism 에 종속된다는 것이다.
--> 작은 존재들은 이렇게도 살(존재할) 수 있구나.
   
- 아픔에 힘겨워하는 브레닌과 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작가가 ’나의 늑대가 느꼈을 외로움‘이라는 표현을 하는데 너무 와닿았다. ’나의‘라는 단어가 이렇게 벅찬 느낌이었는지, 이 상태를 지칭하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 필리아philia. 가족애이자 동료애를 의미한다. 성적 애정을 열망하는 에로스나 인류애적 아카페와 다르고, 감정은 아니지만 감정으로 드러날 수도, 동시에 나타날 수도 있다는. 필리아는 우리가 인정하고 싶어하는 것보다 훨씬 가혹하고 잔인한데 꼭 한가지 필요조건이 감정이 아닌 ’의지‘, ’무언가를 해주려는‘의지에 있다고 설명한다...내가 지향하는 것들에 라벨이 붙여지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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