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힐 듯 말듯... 그런데 흥미롭다!

<짐승과 인간 (1, 2부)> - 메리 미즐리 독후감

늘보리
2025-09-19 03:09
전체공개
손에 잡힐듯 말듯, 책을 읽는 내내 내용이 이해된다 싶으면 어느 순간 두뇌가 공회전하고 있어 되돌아가 읽기를 반복했다. 정확히는 반복하고 있다. (이제 갓 2부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모임 전까지는 완독하겠습니다.) 그래도 저자가 말하는 내용이 정확한 관찰과 경험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이 강력히 전해졌다. 저자는 인간의 본성을 결정하는 요인을 하나로 환원하려는 태도를 경계하고, 여러 요인들이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인간을 만들어내는지 조감도를 그려내는 것 같다. 하나의 강력한 이해툴을 제공하고 이에 따라 일목요연하고 명쾌하게 풀어내는 책들에 익숙한 탓에 다양한 관점을 꼼꼼히 반박해내는 글이 더디게 읽혔던 것도 같다.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상하게도 흥미롭다.^^;; 남은 파트는 빠르게 읽고 한 번 더 읽는 방법을 시도해보아야겠다. 

저자는 인간의 본성이 타고난 것임과 동시에 사회문화적으로 만들어진다고 본다. 무언가가 유전적으로 '프로그램'되었다는 인식이 자칫 인종주의를 비롯한 차별, 불평등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반박하고, 오히려 수많은 개체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특징을 애써 외면하는 일이 본성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가로막는다고 말한다. 인간은 '빈 서판'으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이미 타고난 기질이 있고, 이것이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후천적 기질을 만들어낸다. 이는 태어난지 170일 된 조카를 보면서 생생히 느끼고 있다. 동생(=조카의 엄마)이 어릴때부터 두손을 만세한 자세로 자곤 했는데, 조카가 똑같은 포즈로 잠든 것을 보고 놀랐다. 최근엔 이유식을 시작했는데 입안에 숟가락이 들어오자 위아래로 입을 움직이면서 음식물을 목구멍으로 삼킨다. 잠깐씩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아기에게 내재된 본성이 수없이 목격되는데, 어쩌자고 인간이 백지 상태로 태어났다고 말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인간의 본성이 선한지, 악한지를 성선설 대 성악설, 이분법적 구도에서 벗어나 풍성한 시각을 제공하는 것도 좋았다. 무한경쟁 시대에 걸맞게 '성악설'이 진리인 마냥 여겨지던 때를 지나, 인간의 협력이 요구되는 시대 흐름에 따라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인간 본연의 선을 강조하는 흐름이 감지되는데, 저자는 이를 좀 더 객관적으로 들여다본다. 즉, 인간을 실제보다 더 악하거나 선하다고 보지 않고, 인간들에 공통적으로 감지되는 본성이 무엇이든 이로운 방향으로 쓰이도록 이끄는 데 주력한다. (제대로 이해한 게 맞는지 모르겠다...ㅠㅠ) 그리하여 저자는 인간의 본성에 '공격성'을 포함시키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공격성'이 곧장 잔혹행위로 이어지지 않으며, 고지능의 사회적 동물인 영장류에게는 사회적 억제장치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인간 본성에서 '공격성'을 억지로 배제할 때 문제를 키울 수 있다. 인간의 악한 본성만 부각하는 것도, 이를 아예 배제하는 것도 문제라는 저자의 생각 덕분에 기존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이 하나 더 생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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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B동 사감 | 4시간 전
갓난 조카를 보고 '빈 서판' 이론의 반증 사례로 삼으셨군요. 대체 그 이론은 어디에서 유래했을까요? '그들'은 아이를 낳거나 길러본 적이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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