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책 제목을 먼저 본다. '짐승과 인간: 인간 본성의 근원에 대하여'
인간의 본성이 어디에서 유래하는 것인가를 설명하는 책으로, 짐승과의 비교가 주된 수단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게 만드는 제목이다. 짐승과의 유사성과 차이를 설명하는 방식을 기대했는데, 역시 철학자는 그렇게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속표지의 저자 소개에서 '그(저자)는 환원주의와 과학주의, 그리고 과학을 인문학의 대체물로 삼으려는 시도에 강력히 반대했는데...', '인간 행동의 동기는 사회적, 문화적 영향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요구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먼저 읽게 되는 개정판의 머릿말-초판을 출간하고 17년이나 지난 후이다-은 '논쟁 당사자들 사이에서 다리를 놓으려 애쓰는 동안 양측 모두로부터 계속해서 화살이 날아든다면 굳이 그럴 가치가 있을까?'라고 시작한다. 초판을 내어놓고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기대했던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고 저자는 생각하고 있다.
초판의 서문 마지막 부분은 저자가 책의 내용을 정리하고 있다. 나누어 읽기로 한 부분만 보면 '(1부에서는) 우리에게 본성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인간의 존엄성에 위해가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고, (2부에서는) 이 본성을 연구하는 방법으로 '과학을 제대로 해내려면 필요하지만 과학의 일부는 아닌 (...) '과학적'인 배경사고가 얼마만큼 필요한지 지적하겠다'고 한다. 과학의 일부는 아닌 '과학적'사고라니...
나는 이런 책을 읽으면 거의 항상 길을 잃어버린다. 잘 모르더라도 일단 끝까지 따라가야 하는데 쉽사리 멈춰버린다. 저자가 주장하는 내용에 대해 전체적으로 동의하면서도 개념과 표현 방식, 논리 전개의 방법 등 장애물이 많다. 끝까지 읽으면 조금 나아질 것이다. 1부와 2부를 읽으면서 느꼈던 것 몇 가지를 정리한다.
먼저 책이 출간되고 거의 반세기가 지났다는 것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사람의 생각은 새로운 정보가 추가되고 반추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변화할 수 있지만, 글로 정리되어 책으로 만들어지는 순간 변할 수 없는 스냅샷이 되어버린다. 저자가 힘주어 설명하려던 어떤 생각들은 이제는 익숙한 것들이 되어버렸다. 사람과 동물(여기서는 '짐승'이 아니다)의 닮은 점을 가장 먼저 강조하는 저자의 서문 첫 구절이 그렇다.
"우리는 동물과 비슷하기만 한 게 아니다. 애초에 우리는 동물이다. 다른 종과의 다른 점이 두드러져 보일 수 있지만, 우리 자신에 대한 관점에는 다른 종과의 닮은 점이 언제나 결정적으로 중요했고 또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 책에서는 그렇게 닮은 점이 어떻게 작용하고 왜 중요한지를 전반적으로 살펴본다."
그것은 저자가 강하게 비판하던 다른 이의 주장에도 적용된다. 우려 섞인 마음으로 강하게 비판하던 윌슨의 '사회생물학'의 주장은 힘을 잃었고, 유전자의 '이기심'이라는 '은유'가 적절하지 않았음 역시 도킨스가 수 차례 확인하는 과정을 겪게 된다.
“나는 ‘이기적’이라는 말을 특별한 의미에서 사용한다. 그것은 인간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의미와는 다르다. … 여기서 ‘이기적’이라는 것은 의식적 동기나 의도를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순히 어떤 결과, 즉 유전자가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경향을 설명하기 위한 편리한 은유다.” (초판 서문, 1976)
“Tom Maschler의 조언을 받아들여 책 이름을 The Immortal Gene으로 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30주년 기념판 서문)
'이 내용을 저자가 왜 이렇게 열심히 설명하고 있을까'라고 생각했던 내용들은 상당 부분은 달라진 '상황' 때문에 그렇게 느꼈을 수 있다.
읽으면서 어색하게 느껴지는 다른 부분은 논쟁의 대상이 되는 상대방 혹은 주장에 대한 평론가적인 태도이다. 저자는 종종 상대방의 '의도'를 설명하는데, 대단히 공격적인 방식이다. (오래 전 학교에 다닐 때 '헌법'을 가르치던 두 교수분이 다투던 방식이 떠올랐다.)
"그의 어조는 (윌슨과는 달리) 우리가 죽고 나서도 이어지는 영광에 대한 경외심의 발로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만나는 대중을 깎아내릴 방법을 찾아낸 지식인의 기쁨만 표출될 뿐이었다. 애석하게도 그런 종류의 동기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강하다."
"윌슨은 『사회생물학』에서 앞의 두 가지 태도 중 첫 번째를 택해 목적, 동기, 마음, 의식, 감정, 의도, 그 밖에 이런 것과 관련된 어떤 관념도 논하지 않으며, 주도면밀하게도 책의 찾아보기에서도 이 항목들을 누락한다."
논리 전개 방식 역시 내가 익숙해하는 방식이 아닌 경우가 있다. 읽다가 어떤 문장 옆에 적어둔 메모이다.
(책 문장) "내가 여기서 공격하는 대상은 현재 자신이 다루는 심리학이 과학적이기를 바라는 사람들 사이에 깊이 뿌리 내린 매우 전반적인 관념이다. 그것은 동기는 동기로서 고찰하고 설명해서는 안 되며, 언제나 뭔가 다른 것으로 환원해야 한다는 관념이다. 설명을 위한 ‘다른 것’으로 뇌와 신경 내부의 활동을 고르는 사람들은 물리학주의자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신체 활동을 고르는 사람들은 행동주의자이다. 이 둘은 같은 이유로 실패한다. 이들은 자신이 설명해야 하는 대상을 왜곡한다. 이들의 분석은 자신이 공식적으로 논파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개념에 남몰래 의존할 때만 그럴듯해 보일 수 있다."
(메모) "어떤 주장을 이해, 납득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 중에서, 자신과 다른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근거로 삼는 경우가 있다. 이런 설명 방식은 읽는(듣는) 사람이 주장하는 사람의 생각을 잘 알고 있고, 그것에 동의하는 경우에는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 몇 가지 장애를 만나게 되는데, 하나는 설명하는 사람이 이야기하는 다른 (상대방의) 주장이 정말 그런 것인지를 모를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주장이 잘못되었다고 해서 설명하는 사람의 주장이 맞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의 설명 방식이 다른 순서로 진행되었으면 (적어도 내게는) 더 낫지 않았을까 싶은 부분이 그것이다. 먼저 자신의 주장을 하고 그 이후에 다른 주장을 비교하면서 이야기하는 방법이었다면 어떠했을까?"
저자가 '과학'과 '철학', '과학'과 '공감'에 대해 언급하면서 '과학'의 역할과 한계에 대해 우려하고 있음을 책의 여기저기서 확인할 수 있다. 철학에 비해 과학적 발견은 더 빈번하고 신속하게 일어나고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과학은 개인의 주관적 사고 영역과 사회적 관계의 영역에도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 문제는 하나의 과학적 설명을 모든 것에 확장하려는 시도이다. 다위니즘의 왜곡된 적용이 인류에 가져왔던 재앙을 직접 겪은 저자의 경험이 이 책의 내용과 문체에 반영되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자가 오랜동안 다투었던 도킨스 역시 '종교'에 대해 저자와 비슷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학계에서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큰 문제에 주의를 기울인다고 해서 전문가답지 못할 것은 전혀 없다. 커다란 개념 설계에 해당하는 배경사고와 세부를 다루는 전경사고는 서로 의존한다. 서로를 필요로 한다. 학계의 전문가가 하는 일에서 커다란 질문은 피할 수 없다. (물론) 철학이 특히 그런데, 각 개념 간의 전반적 연결은 철학 영역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 질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오늘날 과학에서 제기되는 커다란 질문에 철학이 끼어든다고 불평하는 과학자들은 스스로 과학철학에 관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과학철학을 아주 잘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큰 분야를 완전히 독차지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철학의 역할에 대한 저자의 생각과는 별도로 폭주하는 과학에 대한 저자의 우려에 대해서는 조금 여유를 가지고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한다.
"(메모) 자연 현상에서 항상성 혹은 동적 평형 상태와 같은 변화의 모습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어떤 변화 생겨서 그것이 한 방향으로 끝없이 발산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균형추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반대 방향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본다. 개인으로의 사람, 집단으로서의 사회가 가지는 생각도 비슷한 경우가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 기존의 방식과 다르게 세상을 해석하고 설명할 수 있는 수단이 주어졌을 때 사람들은 망치를 선물받은 아이처럼 그것을 여기저기 휘둘러보게 된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 그 아이는 망치가 필요한 곳이 어디인지 조금씩 알게 될 것이다.
저자는 ‘유전자’라는 망치를 받고서 여기저기 두들기던 사람들에 대항해서 이전의 도구들도 충분히 쓸모가 있으며, 망치를 아무 곳에나 사용하면 안된다고 열정적으로 이야기했다. 그 상황의 이야기는 책으로 남겨졌고, 망치로 여기저기 두드리던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