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할 의무와 균형 맞추는 일
구나
2024-05-15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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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고전 소설이구나’를 느낄 수 있었던 문체와 표현 방식, 책을 읽는게 아니라 연극 무대를 보고 있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특히 ‘프랑켄슈타인’하면 흔히 생각하는 괴물의 탄생과 악행(공포)에 초점이 맞춰진 게 아니라 프랑켄슈타인 박사와 괴물의 입장 차이에 의한 서사과 섬세한 감정 표현이 인상 깊었다.
책을 읽을 때에는 단순하게도 창조주와 피조물의 상징성에만 집중해서 읽게 되었다(이전 책을 읽으면서 인공지능을 현대의 바벨탑, 현대의 프랑켄슈타인이라고 생각했으면서도).
그렇게 소설을 다 읽고 난 후 해제문에서 많은 화두를 던져주어 더욱 좋았다. 해제문이 없었다면 단순히 ‘고전은 역시 고전이구나’, ‘뭔가 생각할 거리가 있는 것 같은데 아직은 잘 모르겠네’ 정도로 끝났을 감상이 한 걸음 더 발전되어 나가게 되었다. 책의 해제문을 읽으면서 좋은 안내자, 가이드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 번 느꼈다.
이름조차 받지 못한 ‘it’을 괴물로 만든 건 누구인가? 책임감과 윤리의식없이 호기심과 학구열만으로 행동이 앞선 프랑켄슈타인, 외모에 대한 편견만으로 괴물과 얼굴을 마주하는 것조차 극렬하게 거부한 수많은 사람들.
지금도 우리의 편견이 수많은 괴물을 길러내고 있지 않을까? 괴물의 호소를 읽으면서는 부모의 범죄로 사회적 낙인이 찍힌 수용자 자녀들이 떠올랐고, 해제문에서 러다이트들을 괴물로 볼 수 있다고 언급한 부분에서는 지하철 시위를 했던 장애인들이 떠올랐다.
현대의 ‘괴물’들은 여전히 아우성치고 있는데, 그 괴물을 만든 사람들은 새로운 괴물의 등장에 환호하느라 이들을 등지고 있다.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으로 인해 초래된 불행을 쫓아갔다. 자신의 목숨이 다하는 순간, 스스로가 책임지지 못한 과오에 대해 대신 책임져주기를 강요할 순 없지만 ‘행할 의무와 균형 맞추는 일은 (월턴에게) 맡긴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전한다. 자신의 판단과 사고가 옳다고 할 수 없고, 다른 사람들을 성공할지도 모르는 일이라는 말과 함께.
어쩌면 프랑켄슈타인의 마지막 유언이 지금의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로 느껴지기도 한다.
댓글
구나 |
6개월 전
현생이 벅차 프랑켄슈타인 밖에 못 읽었습니다. 토요일 모임 전까지 프랭키스슈타인도 읽고 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