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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이 세상을 장악하지 못한 이유는 뭘까

<찬란하고 무용한 공부> - 제나 히츠 독후감

호떡
2025-11-20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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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느닷없이 찾아오는 매혹의 순간을 기억한다. 이를테면 여러 가지 형태의 사회적 요구나 기대를 분주하게 따라가다 (어떤 충동에 이끌린 것인지 모르겠으나) 잠시 고요함을 찾게 되고, 자기 자신과 주고받는 긴 사색이나 어떤 대상에 대한 탐구에 푹 빠진다.

그런 시점이 찾아오면 왠지 모를 약간의 초조함과 함께 그 안에 계속 머물고 싶은 게으름 비슷한 것이 공존한다. 뭔가 알듯 말듯 정신을 간지럽히는듯한 생각의 진전과 씨름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마침내 충분한 에너지가 모인 듯 폭발적인 확장이 온다.

그런 순간을 통과할 때는 모든 지적 가능성이 연결된 듯한 느낌에 휩싸이고, 영감으로 발화된 강력한 추진력이 평소라면 무모하다고 생각할 만 일도 이미 성공적 완결이 난 허구의 시점으로 나를 데려가곤 한다.

실체는 없지만 분명한 강렬함이 느껴지는 생각을 열심히 구체화하다가 마침 더 미룰 수 없는 해야 할 일이 있거나, 누군가와의 약속 시간이 다가와 쫒기듯 이 정신의 세계를 빠져나와야 한다면 화가 날 정도로 아쉬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주로 책을 읽으면서 이런 경험을 종종 하는데, 그때마다 조심스러운 궁금증도 있었다. 도대체 이러한 정신 작용은 어떻게 일어날까. 나의 삶이나 실제 세상에서 유효하게 작동할 수 있는 생각일까. 몽상가란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을 말하는 걸까. 나는 뜬구름 잡는 영감에 빠져 시간 보내기를 좋아하는 몽상가인가. 혹시 나는 타고난 천재는 아닐까. 강렬한 각성과 슈퍼맨이 된 거 같은 자신감을 경험하면서도 개념적 정의는커녕 어설프게 묘사하기도 어려운 그 생각 특성을 저자의 오랜 사색과 세심한 관찰 덕분에 많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또한 찬란하고 무용한 공부의 한 형태라는 생각을 했다.

무용한 공부의 유용성을 한 줄 한 줄 이해해 가면서 더 근본적인 질문이 생겼다. 우리의 내면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본성에 기반한 충동은 분명 순수한 배움을 원한다. 그건 나도 경험해 봤기에 동의한다. 늘 그렇진 않았어도 언젠가 배움을 향한 충동을 느꼈던 적이 있을 것이다. 의미를 묻고,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깊이 있게 대상을 이해하는 순간에 큰 즐거움을 느낀다. 어떠한 보상을 바라는 것이 아니며, 심오함과 경이로움에 영혼이 충만해지는 그 자체로 더없이 만족스러웠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이토록 무용한 공부를 멀리하게 될까? 정신의 기쁨보다 사회적 관계나 유용함의 힘이 더 센 이유는 무엇일지 고민했다.

그만큼 배움이 인간성의 본질을 이룬다면 어떠한 방식으로든 우선순위나 가까이하고자 하는 욕망이 본능으로 발현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오히려 유용성을 추구하기 위한 생활에 소홀하지 않도록 인위적 노력이 더 필요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가지 생각은 예측의 질서가 보이지 않으면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동물적 감각이 인간에게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 아닐까 싶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는 안전에 대한 예측을 돈이라는 단순한 지표로 환원할 수 있게 되었고 보편적인 피식자의 본능과 연결되면서 모두가 돈으로부터 강한 압력을 받는 것이 아닐지 생각했다. 결국 안전을 사기 위해 돈이 필요하고, 다시 돈을 위해 유용한 존재가 되려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 더구나 사회가 형성하는 관계가 타인에 대한 기대까지 만들면서 더더욱 쓸모를 증명하고자 하는 것이지 아닐까.

애초의 목적과는 상관없이 실용성 그 자체에 매달리다 보니 실용성을 판단하는 외부 세계만을 과하게 의식하게 되고, 한 방향의 쟁취를 위해서 다른 모든 자원을 소진하는데 무감각해지고, 관계가 가치 평가의 기준이 되면서 결국 자신은 점차 놓게 되는 과정이 심화해 가는게 아닐지 생각한다.

저자의 말을 따라 고독을 감수하고 내면의 공부를 위한 시간을 확보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지적이고 내면을 향한 삶은 세상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오히려 세상 속에서 나 자신이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중심을 되찾을 인간적인 방법인 거 같다. 타인만큼 자신과의 연결을 명료하게 다듬으며 주체성을 회복할 때, 모르긴 몰라도 유용성 또한 치우침 없이 영리하게 의식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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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더듬이 | 10일 전
인간에게 배움이 주는 즐거움이 이토록 분명한데도 왜 그쪽으로 향하는 충동보다 유용함의 힘이 여전히 더 세게 작용하는 걸까. 함께 이야기해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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