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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하고 무용한 공부'를 읽고: 무용한 지식 습득의 쓸모에 대하여

<찬란하고 무용한 공부> - 제나 히츠 독후감

chloe
2025-11-20 13:30
전체공개
배우기를 즐겨하는 사람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아버지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서재 바닥이 무너질까 걱정될만큼 온 집안에 각종 분야의 책을 빽빽하게 채웠고 늘 소파에 누워서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책을 읽으시는 중에 말을 걸면, 입맛을 짭짭 다시면서 지식이 맛있다는 듯이 '너무 재미있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가방끈은 나름대로 긴 편이지만, 학계에 적을 두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내가 아는 그 어떤 교수보다도 책을 많이 읽고, 어떤 지식인보다 넓은 범위의 지식을 갖고 있다. 그야말로 지식을 갖는 것 그 자체에 도취된 사람인데, 나는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자라면서 지식 습득 그 자체의 순수성과 존엄성에 대한 편견을 갖게 되었다. 배우는 것은 그 자체로 순수하고, 도덕적이며, 선하고, 도구적이지 않다는 선입견.
그런 나의 굳센 믿음은 대학원을 다니고 소위 식자층들을 만나면서 많이 무너지게 된다. 지식을 그저 과시나 사회적 지배력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간사한 이도 있었고, 밥을 먹는 중에는 논문 얘기를 하지 말라는 교수도 있었으며, 높은 학위를 갖고 있음에도 매우 비도덕적인 사람이나, 과학자이지만 비과학적인 것을 맹신하는 종교인도 있었다. 그런 경험들을 통해서 지식을 얻는 것이 행동과 일체가 되지 않고 그저 보기 좋은 액세서리 같은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슬프고 환멸감이 드는 일이었다.
어제 유튜브에서 김정운 교수의 강의를 봤는데 그는 배워야 하는 이유를 '과대평가된 권위에 주눅들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내가 데이터가 많으면 권위에 대해서 자유로워지기 때문이다. 나는 이 주장에 대해 부분적으로 동의한다. 권위에 대한 지나친 경배에서 벗어난다는 효용은 분명히 가치가 있으나 그것은 일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인간이 배우는 이유는 시야와 세계관의 확장을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우주의 스케일을 보면 인간 존재는 얼마나 작은가. 창백하고 푸른 점 안에 80억 인류가 부대끼며 모여산다. 인간은 지능을 갖고 있기에 진화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는데 지능은 경작cultivate 되어야 의미가 있다. 인간이 달까지 로켓을 보낼 수 있고 현미경으로 미생물을 관찰할 수 있게 된 것은 지능을 경작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시야와 세계관을 확장시킨다. 확장된 세계관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관념을 보편적인 것으로 만들고 그것은 새로운 문명의 건설과 패러다임의 전환을 만든다. AI는 지능의 용량에 제한이 없지만, 인간은 산도birth canal의 한계 때문에 제한된 지능만을 갖는다. 이 때문에 제한된 지능의 완전한 활용을 위해서는 지능을 사용하여 이 세계를 최대한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그래봐야 AI의 관점에서는 우스운 수준이겠지만). 
세계를 힘껏 이해하는 인간의 가련한 투쟁이 배움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육체의 제약, 두뇌의 제약, 뇌 용량의 제약으로 너무 작은 존재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에 대한 이해의 해상도를 높이고 호모 사피엔스에 속한 한 명으로서 80억 인류의 한 걸음을 위해서 나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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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더듬이 | 10일 전
아버지에게서 받은 지식과 공부의 이미지와 학교에서 접한 그것이 충돌하며 환멸감에 빠졌다는 부분이 제나 히츠의 경험과 흡사하네요. 자기만의 공부의 의미와 길을 찾아가는 모습도요. 또 어디로 향할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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