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

2403 시즌 - 책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시밤
2024-04-16 22:21
전체공개

[목요일 새벽]

할아버지 할머니. 내가 차에서 내려서면 세상을 다 가진 듯 함박웃음을 짓던 아름다운 영혼들. 어린 내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줄담배를 태우던 옛날 사람들. 삶의 끝자락엔 그렇게 사랑하는 손주도 못 알아봐서 나를 너무도 울렸던 아픈 사람들. 처음으로 죽음이란 걸 알게 해준, 십 년째 이십 년째 사무치게 그리워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기억 속의 존재들.

[목요일 밤]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깨 뒤척이다가 독후감을 쓰기 시작했다. 이 책을 읽은 지는 1년 정도 됐는데 최근 너무 바빴던 탓에 다시 읽지는 못했고 다만 '사랑'이라는 주제는 분명해서 그냥 '사랑'을 떠올리고 생각나는 대로 쓰기 시작했다. 그게 위에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에 관한 짧은 글이다.

[지난주]

얼마 전 우연히 눈에 들어온 뭔갈 보고는 할아버지 할머니 생각이 나 울었다. 그때 차에서 아이유의 "Love Wins All'이 나오고 있었는데 머쓱했던 난 옆에서 운전하고 있던 친구에게 할아버지 할머니 생각이 났는데 노래가 슬퍼서 눈물까지 나나 봐 했다. 노래 제목에서 자연스레 떠오르는 "Love wins."는 유명한 구호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진리를 담고 있다. (LGBT에서 쓰는 구호이지만) 사랑의 종류는 상관없다--사실, 사랑에는 종류가 없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아픔, 이별, 슬픔의 순간이 겪고 나면 함께한 추억을 곱씹으면서 행복하게 웃을 수 있다.

[사랑]

누구나 살아가면서 사랑이 이긴다는 신념이 흔들리는 순간을 마주한다. 그럴 때 우리를 버티게 해주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랑일 것이다. "어느 쪽이 이기나요? 난 어린 학생처럼 묻는다. 그는 그 주름진 눈과 약간 틀어진 이를 드러내고서 내게 미소 짓는다. 사랑이 이기지. 언제나 사랑이 이긴다네." 어린이의 순수함으로, 사랑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으로 질문을 던진다.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의 주름진 눈, 틀어진 이는 너무도 그 사람 자체여서 오늘도 아름답다. 내가 듣고 싶었던 대답이 돌아온다. 위안과 확신을 주는 미소와 함께. 모리 교수의 말처럼 인간의 죽음은 생명이 끝나는 것이지 사랑을 품은 관계가 끝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되짚기]

내게는 사랑이 이긴다는 확신이 있다. 사랑의 개념, 사랑의 본성이 그렇다. 그 어떤 것과도 떨어진 채 홀로 둥둥 떠있는 사랑은 없다. 사랑도 결국엔 구체적 행동으로 존재하는 것이고 그래서 사람(행위자)과 떼놓고 얘기할 수 없다. 사랑이 이긴다는 것은, 사랑을 행한 사람과 사랑을 행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언제나 사랑을 행한 사람이 승자일 것이라는 뜻이다. 외부 조건이 어떻든, 누가 뭐라 하든, 사랑을 행한 사람은 알 것이다. 자신이 승자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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