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와 마인드 체인지
늘보리
2024-07-25 00:11
전체공개
최근 자영업을 시작하면서 안 하던 인스타그램을 억지로 시작했다.(ㅠㅠ) 그 전에도 계정은 있었지만 게시물을 거의 올리지 않았고, 관심 있는 단체나 매체의 소식을 업데이트하는 용도로만 사용하고 있었다. 인스타의 수동적 사용자에서 능동적 사용자로 탈바꿈한 것이다. 한 달 조금 넘게 써본 결과, 인스타는 게시물을 보는 사람뿐만 아니라 올리는 사람한테도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 것 같다. 한 달간 인스타가 만들어낸 내 모습은 이랬다. 일상에서 특별한 장면을 마주하면 이걸 사진으로 찍어서 어떻게 피드에 올릴지 자연스레 떠올린다. 이야기를 빨리 공유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낀다. 좋아요는 잘 모르겠지만, 댓글이나 태그 방식으로 이미 알고 있던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교류가 생길 때 응원받는 기분이 들고 든든해진다. 이런저런 방식으로 도움 준 분들께 댓글로든 사연이 담긴 게시글로든 고마움을 전하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감사 전하기를 잊었던 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이런 감사를 공개적으로 하는 게 어색하고, 이것이 결국은 공간 홍보로 이어진다는 사실에 마음 한 켠이 불편하다. 하다보니 불편함이 덜해지는 것도 같다.
인스타의 술수에 넘어가지 않겠다며 저항하는(?) 부분도 있다. 인스타에서 통용되지 않는 방식, 즉 적은 수의, 덜 매력적인(필터를 쓰지 않은) 사진과 긴 글의 조합으로 게시물을 올린다. 단발적인 사건을 즉각적으로 공유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자잘한 이야기가 모이고 연결되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면 긴 글과 약간의 사진을 담아 올리기로 했다. 나름의 판단 기준을 지켜보겠다며 시작했지만, 정작 게시물이 다른 이들에게 잘 노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고민이 깊어졌다. 특히 인스타그램이 릴스 사용을 늘리기 위해 릴스 중심으로 노출 빈도가 높게 알고리듬을 조정했다는 ‘썰'을 들었는데, 최근 시험 삼아 한 게시물에 릴스를 포함해 올렸더니 조회수와 좋아요수가 빠르게 느는 것을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 인스타는 큰 자본 없이도 자기 브랜드를 홍보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인가 하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듯하다. 인스타의 룰을 따라야 한다는 조건이 붙기 때문이다. 과연 어디까지 따르고 어디부터는 저항할 것인가. 자신을 알리기 위해 자신의 벽을 어디까지 허물어야 하는가.
그럼에도 내 상황이 대도시 사람들과 다를 수 있는 부분은 마을공동체의 덕을 본다는 것이다. 이미 지역에서 오랫동안 터를 잡고 살면서 영향력을 키워온 분들이 한 번씩 방문해서 공간을 소개하는 글을 올릴 때마다 한 번씩 반응이 오는 게 느껴진다. 나와 비슷한 지향점을 가진 분들과 빠르게 연결되고, 연결된 사람들을 통해서 또다시 연결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오래 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정성껏 게시글을 올려주는 마음은, 소위 ‘인플루언서'들이 자신을 브랜드화해서 업체 홍보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것과는 완전히 결이 다르다. 비슷한 지향점을 가진 사람들과 가치를 중심으로 빠르게 연결되는 것은 인스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물론 소셜미디어 상의 연결이 진정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오프라인에서의 작용으로까지 이어져야겠지만 말이다. 그것이 가벼운 대화든, 구체적인 목적을 가진 활동이든.
수전 그린필드의 <마인드 체인지>는 2015년에 출간된 탓에 주로 페이스북을 중심으로 현상을 분석했는데, 저자가 즉각성이 극대화된 인스타그램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지 궁금하다. 페이스북을 통한 관계 형성이 유례 없는 이유 중 하나로 저자는 개인의 정체성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생활을 적극적으로 공유하는 것을 든다. 과거에는 정체성이 자기 내면과의 대화로 형성되었다면, 소셜미디어의 영향력 아래 성장한 ‘디지털원주민' 세대들은 외부환경, 특히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프로필과 게시물, 그에 따른 ‘친구'들의 반응이 정체성 형성의 주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내면 성찰을 통해 단단한 자아가 형성되지 않은 채, 개인주의적으로 경도된 소셜미디어 활동을 통해 약한 자아를 갖게 되고, 약한 자아로 현실 세계에서 건강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 이들이 다시 소셜미디어에 기대는 악순환… 그나마 텍스트 기반의 소셜미디어에서는 자기 의견을 표현하는 장벽이 있지 않았나 싶다. 자기 생각이나 감정을 문장 형태로 서술하는 데에는 약간의 지연과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니까. 하지만 글 대신 사진과 영상을 중심으로 사생활을 공유하는 시스템에서는 오히려 생각이 방해가 된다. 실제 내가 가장 많이 듣는 조언도 생각 없이 바로 올리라는 것이다. 최근 몇몇 지인들이 모임 틈틈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바로바로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리고 있었다. 몇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게시물을 올리는 수고를 감수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뇌의 가소성이 이런 행위들에 어떤 보상을 줄지, 개인의 마음에 어떤 변화를 이루어낼지도.
책은 이런 말로 마무리된다.
“신경 연결 덕분에 독특한 마음이 형성되고 발전할 수 있듯이, 사이버 공간의 초연결성은 좋은 쪽으로도 나쁜 쪽으로도 그 마음을 변화시킬 강력한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이 연결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하고, 우리가 거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가장 원대하고 흥분되는 도전 과제임이 분명하다.”
어떤 연결이 좋은 연결이고 어떤 연결은 나쁜 것일까. 많은 것이 불분명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하나는 분명해졌다. 즉각적으로 생산되고 즉각적으로 소비되는 문화가 지배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긴급한 사안이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일상의 일거수일투족을 바로바로 공유하는 일만큼은 어떻게든 저항하고 싶다. 재미로 하는 일이 결국 내 마음을 바꾸고, 그런 마음들이 모여서 사회를 만들 테니까. 이렇게 접근하면 너무 꼰대스러운 거 아닌가 하는 의심과 경계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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