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내 뇌가 궁금하다. 기왕이면 적응이 빠른 삐딱한 뇌면 좋겠다
땡초맛 새우깡
2024-07-25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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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 체인지 책을 읽다보니 생각할 거리가 너무 많았다. 책 여기저기에 휘갈겨 쓴 나만의 ‘저자와의 대담’(!)을 내용 별 요약 및 적어보았다. 특히 16~18장에 논의 거리가 많았다. 디지털 기술의 무분별한 사용이 괜찮은가를 논의하기 보다는, 그 모든 기술을 끌어안고 어떻게 삶에 맞춰 활용할 것인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1~4장) 디지털 기술(화면, 인터넷, SNS 등)은 인간의 마음, 생각, 감정의 가치판단구조를 전통적 세계와 완전히 다르게 변화시키고 있는데 뇌 구조에 변화를 일으킬 정도로 영향 정도가 크다. 다만 긍정주의로 일관하며, ‘미리 논의할 타이밍을 놓친다면’ 뒤늦게 큰 댓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것만이 사실로 받아들여진 상황이고, 이 책이 논의의 시작이다.
(5~8장) 하지만 인류(과학자들)는 아직 뇌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물리적인 부위 차원으로도, 화학적으로도 어떠한 결합과 반응이 일어나는지 원인과 결과를 증명하기 어려운, 즉, 연구가 어려운 미지의 영역이다. 저자가 설명한 뇌는, ‘모든 개인의 뇌는 저마다 독특한 개인화되고, 기존 관념 연합에 비추어 현재 세계를 끊임없이 평가하고, 갱신되는 마음을 지닌다’, ‘뇌 영역이 바깥세계의 행동과 일대일로 대응하는 한가지 일만 하는게 아니다’ 이란다. 심지어 진화도 빠르다.
(9~14장) 사람들은 SNS에 매료되다 못해, 이제는 사생활마저 포기하고 타인과 소통하기 위한 모든 재미와 즐거움을 원하고 원한다. 하지만 동시에 우울, 공격성, 수동성, 대인관계 기피, 현실가치(전통적 가치) 격하, 이해력 저하 등의 부정적 효과를, 더 어린 세대에는 더 강력하게 영향을 받는다. 애초에 보지 않았으면 알지도 못할 것들에 관심갖고, 집착하게 된다.
(15장) 게임이 반복적으로 폭력을 경험하고, 무모한 행동을 초래하며, 공격성이 높아지며, 친사회성을 낮추고, 탈민감화하는데, 이 경향성이 현실로 이어져ㅡ심지어 현실과 혼동해ㅡ 악영향을 미친다고 정리한다. (게임은 진짜 할말 많은데 참아본다...)
(16장) 구글검색을 통해 지식을 습득하는 내용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데, 일반적인 선형식 지식탐구과정이 아닌 하이퍼링크 등으로 '출발지점'도 잃고, '해답을 찾는 과정중의 고민을 통한 학습의 즐거움을 제거하며, 지속적 주의력과 맥락에 대한 이해도를 떨어뜨린다고 다양한 연구들로 증명한다.
하지만 묻고 싶다. 어차피 연구를 통해서도 악영향이 명확하지 않듯 긍정적 영향도 명확하지 않지 않은지. 더군다나 학습의 과정이 뇌과학적으로 선형적인지, 복합적인지도 증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존의 학습방법 또는 주요 가치라고 언급되는 이해력, 주의력 등이 학습 성과지표로 여전히 논의될 가치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오히려 새로운 학습방법, 도구를 평가하기 위한 새로운 지표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일단 현실적으로 기존의 '사실을 기억하고 학습'하는데서 멀어져고 있음을 저자는 인정하였다.
(17장) 책과 화면(패드)를 비교한다. 멀티태스킹은 정보를 끌어모으는 것은 가능하지만, '당면 목표'와 관련된 정보를 '걸러내지'못하고, 다양한 자료로 하여금 무관한 정보를 처리하느라 속도도 느려진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매체의 특수성이나 그로 인한 행동유도성 자체보다는 '학습의 효율성'이나 '학습의 내실'간의 문제만큼 어느 한쪽으로 결정할 수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한 연구자 등 특정 목적을 가지고 정보를 처리하는 집단이 선호하는 방식으로 꼭 일반인도 동일한 방식으로 학습하고, 정보를 소화할 필요는, 그 당위성은 어디에 있을까? 하이퍼텍스트를 통해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정보를 발견하고, 전혀 새로운 관점으로 사고해 보는 것도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학습활동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저자의 입장은 전통적인 학습가치의 편에 서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앞으로는 ‘기존가치’를 옹호하는데 있어 ‘실익’을 배제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설령 그것이 기존의 가치를 파괴하고 없애는 방향일지라 해도 말이다, 즉 다수를 설득하지 못하는 ‘보수’는 설자리가 없어질 것이다. 그 힘은 의미있는 ‘권위’에서 오는 게 아니라 이제는 ‘소비될 수 있는가’, ‘얼마나 수요가 많은가’에서 오는 것 같다.
즐거움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면 안된다고 언급하고 있는데, 그 즐거움도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일 수 있다. 공부가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느낌, 집단의 일부이며 홀로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느낌’을 준다고 하는데, 한국에서 배우고 자란 나로서 공부는 수단이고, 우열을 가리는 척도였다. 현재 박사과정을 하면서도 집단의 일부가 된다기 보다는 집단에게 인정을 받아야만-허들을 넘어 논문을 써야-그 분야에서 밥벌어 먹고,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할 뿐 그 테두리가 좋아서 간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이 생각 또한 주관적인 것이고, 이렇게나 다르다. 서양의 학자가 배움이란 소속감의 원천이라고 설명하는 와중에,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수능으로 하여금 학습의 즐거움을 ‘국가 교육시스템’이 파괴하는 중이란 생각에 씁쓸하긴 하다.
(18장) 이전 세대들이 책을 통해 발전시킨 것보다 디지털기술을 활용해서 더 잘 특정기능을 계발하고 있는데 연결관계와 이례적인 것을 간파하는 능력, 폭넓은 맥락이나 배경지식과 독립된 규칙을 검출하는 추상적 과정, 더 큰 복잡성에 잘 적응하고 다중작업에 능숙하도록 발전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것이 결국 미래 사회에 확산될 것이라면 이미 진화가 시작되는 것이고, 그것이 선으로 변하면 그뿐 아닐까. (IQ도 그 시절의 지능 진단방법임을 감안한다면 우리는 변화에 맞춰갈 것인지, 기존의 증명된 것을 고수할 것인지를 논의할 것이 아니라 무엇이 앞으로 필요할 것인지를 새로 논의해야 하지 않을까. 애초에 ‘증명된’ 것들을 ‘증명되어서’ 수용한게 아니었음을 가정한다면 말이다.
디지털기술-구글이, 페북이, 스마트폰의 화면이-우리의 경험과 지식을 압도하고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며, 이를 통해 기존에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도전적인 질문과 생각을 할수 있도록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 방법들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아서, 그 효과가 예측불가능한 것이라고 해서 피할 이유는 전혀없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부작용이 있을 수 있고, 오용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은 그런 면이 있다. 심지어 그 기술들은 이미 ‘필터’하기에는 너무 상용화 되었고, 한세대 이상 지속되어 왔다. 저자의 언급처럼 우리가 직면한 중대한 현안은 20세기 ‘질문은 많고 답은 적은 환경’에서 ‘질문은 적고 답은 많은’ 지금의 전환과정을 어떻게 해쳐나가고, 이 환경을 이해하고, 실상 살아남아 어떻게 이용할지를 논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자신만의 개념틀을 발전시키는 것, 교조적인 정설과 전통견해에 의문을 품어 해체할 자신감을 갖도록 격려하고, 남의 비판이나 조소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연상을 가능해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순응적인 것보다 삐딱한 이들이 이런 과정을 먼저 경험하고 답을 찾으려 시도할 것도 분명하다.
(19-20장) 마음변화와 연결은..크게 인상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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