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자신에게 먹이를 주는 책 『월든』

<월든> - 헨리 데이비드 소로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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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20 22:06 (수정됨)
전체공개
p. 104
나는 신념과 경험 두 가지 모두에 의해,
소박하고 현명하게만 산다면 이승에서 한 사람이 먹고사는 일은
힘겨운 일이 아니라 유희나 다름없는 일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p. 105
선원이나 도망 중인 노예가 북극성을 지표로 삼듯이
우리는 정확한 한 점을 지표로 삼을 때만 현명해질 수 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평생의 길잡이로 삼기에 충분하다.
그것만 있다면 예정된 시일 안에 목표로 삼은 항구에 도착하지 못할지는 몰라도
올바른 항로를 유지할 수는 있을 것이다.

p. 150
자신의 직업을 선택함에 있어 조금만 더 신중을 꾀한다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학생이나 관찰자가 되려고 할 텐데,
그것은 누구나 자신들의 본성과 운명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p. 168
첫해 여름에는 책을 읽지 못했는데, 그것은 콩밭을 매야 했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 훨씬 낫게 보내기도 했다. 머리를 쓰든 손을 쓰든 그런 일 때문에
어느 한순간의 아름다움을 희생시킬 수 없는 때가 있던 것이다.
나는 삶의 여백을 아낀다.
여름날 아침에는 습관이 된 목욕을 마친 후 해 뜰 녁부터 정오까지
볕 잘드는 문간에 앉아 소나무와 히코리나무, 옻나무에 둘려싸여
평온한 고독과 정적 속에서 몽상에 잠기곤 했다.
새들이 지저귀며 소리 없이 집안을 날아다녔다. 

p. 178
내가 상업에 호감을 갖는 것은 그 모험심과 용기 때문이다.
그것은 두 손을 모아 주피터 신에게 기도하지 않는다.
이들은 매일 매일 어느 정도의 용기만족감으로써 일에 임하며
스스로 예측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이룩하고
또 어쩌면 그들이 의식적으로 하고자 했던 것보다 훨씬 나은 성과를 올린다.

p. 197
우리 주위에는 대체로 널찍한 공간이 있게 마련이다.
지평선이 바로 팔꿈치 밑에 와 있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울창한 숲도 호수도 바로 문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늘 어느 정도 사이를 두고 있게 마련이며,
우리의 발길로 닳게 하면서 자연과 함께 나누어 쓰고
또 울타리도 치면서 자연으로부터 잠시 빌려 쓰는 것이다.

p. 220
나는 고독이라는 거대한 바다 안으로 물러나 있었는데,
그 바다로 교제라는 강물이 흘러들었다.
내게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볼 때는 
대부분 가장 높은 침전물만이 내 주위에 쌓인 셈이었다.
뿐만 아니라 바다 건너편에 탐사되지도 개발되지도 않은
대륙들이 있다는 증거들이 내가 있는 곳으로 실려왔던 것이다.

p. 247
아무튼 잡초의 섬세한 조직을 가차없이 교란시키고
괭이로 불쾌하기 짝이 없는 차별을 행사하며
어느 한 종은 속속들이 깔아뭉개면서도 또 어느 종은 꼼꼼하게 가꿔 주어야 하는 것이다.
저건 호그위드, 저건 명아주, 저건 괭이밥, 저건 파이퍼... 저놈을 해치우고 저놈은 솎아버리고
저놈은 뿌리째 뽑아버리고 저놈은 수염뿌리 하나라도 그냥 놔두면 안 되며,
마냥 그냥 내버려두면 이틀 만에 부추처럼 싱싱해질 것이다. 
이건 두루미를 상대로 한 것이 아니라
잡초를 상대로 한 길고도 긴 싸움,
태양과 비와 이슬을 동맹자로 둔 트로이인들과의 전투였던 것이다.
매일같이 콩들은 괭이로 무장한 내가 자신들을 구해주러 이곳에 와서는
적들을 솎아내어 참호를 잡초의 시체로 메우는 것을 보았다. 

p. 288
멀리서 물고기 한 마리가 공중으로 3,4피트 높이의 반원을 그릴 때도 있는데,
물고기가 튀어오를 때와 다시 물로 떨어질 때는 눈부신 섬광이 번쩍인다.
어떤 때는 그 은빛 반원 전체가 선명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이따금 엉겅퀴 털이 수면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물고기들이 달려드는 바람에 또다시 잔물결이 일기도 한다.
그건 마치 유리 녹은 물이 식기는 했으나 아직 굳기 전의 상태와 같아서
그 속에 들어 있는 몇 점의 티조차 유리의 흠처럼 깨끗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소담출판사의 『월든』 기준 페이지 숫자입니다. 
  

위의 문장들은 제가 줄친 문장들입니다. 
타이핑하면서 괜찮은 문장만 살아남았습니다(줄쳤어도 쓰면서 이상한 문장은 삭제했습니다).
초반에서 중반으로 갈수록 아름다운 묘사와 비유들이 많아서 
책을 읽는 것 자체가 매우 즐거웠습니다.
20대에 거의 소설만 읽었는데, 그때로 되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제 안에는 고요한 저(산책하고 자연을 사랑하는)와 세속적인 제(높은 빌딩을 좋아하고 얼리어답터 기질의)가 공존하는데요.
전자의 저에게 좋은 책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두 개의 자아가 비율은 다르지만 공존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바쁘게 지내다가도, 답이 보이지 않을 때는 고요해져야만 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흙탕물은 가만히 있어야 흙이 가라앉아서 맑아지기 때문이죠.

최근에 스스로 마음 시끄러운 일들이 있었는데,
저를 잘 알고 비슷한 경험을 했고 고요한 사람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니까
마치 p.105의 글처럼 북극성을 찾은 듯 갑자기 현명해져서 답이 보였습니다.
마치 일출을 볼 때 갑자기 해가 뜨듯, 순식간에 정리가 되어 놀라웠습니다.
당분간 고요해지는 연습을 할 계획입니다. 
어쩌면 피하고 싶었던 신호들이 선명해지는 순간을 가차없이 맞이하고 싶습니다. 

부족한 감상평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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