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운명을 알고도 회피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

2403 시즌 - 책 <인공지능이 할 수 있는 것, 할 수 없는 것>
오렌지
2024-04-17 15:43
전체공개


인공지능(ai)라는 단어를 하루에 한 번은 직, 간접적으로 접하고 있는 몇 년이었다. 익숙할 대로 익숙한 소재에 관한 책을 읽었는데도 독후감을 쓰기가 어려웠다. 출판에 관한 뉴스기사 외엔 참고할 만한 일반 리뷰가 거의 없기도 했고, 책 내용이 지능이라는 개념 및 인간종에 관한 철학적 정리에 가까워, 내용과 관련해 내가 어떻게 무엇을 깨닫고 변했다, 앞으로는 어떻게 해 보겠다라고 말을 만들어 내기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말문이 막히는 경험을 하면서 나는 질문에 해당하는 자료가 없어 엉뚱한 대답들을 섞어서 내놓는 어설픈 챗지피티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기존에 어딘가에 있던 말을 주워 들어 익힌 데이터 조합장에 불과한 나는 새 지식에 새 발상을 내 놓을 수 있는 고역량의 인재이긴 커녕, ai와 동행 가능한 수준은 될 수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안 들 수 없었다.

 문자를, 최초의 인공지능을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인간은 다른 생명체와 삶의 궤적을 달리하게 되었다. 문자 습득이 인간의 파급력을 지구별 생명 대멸종을 부를 만큼 거대하게 키웠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문자를 배우지 않겠다는 시도는 하지 못하는 것처럼, ai도 비슷하게 우리를 고기능의 인간이 되도록 강제하는 미래를 막을 수 없을거라는 무기력한 기분이 찾아와 다소 암울했다.    

고기능의 인간이 다룰 수 있는 ai가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 일반인에게 차별적으로 작용할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전의 문자가 지배계층만 향유하는 인공지능이었듯, 접속과 활용권리의 제한이 특정인이나 기업에만 있는 ai가 세상에 미칠 파급력은 상상하는 것이 싫을만큼 불행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하느라 발생하는 환경, 사회적 부담은 기존 법률이 없다며 쉬쉬하고 넘어가면서 데이터 활용에 드는 직, 간접적 인건비는 저렴하게 글로벌로 외주를 주고, 막대한 이익이 일부 권리자에게 돌아가는 모습은 10년 뒤를 상상할 것도 없이 익숙한 현재의 모습이다. 다만 이 모습이 더 거칠게 일반의 삶을 비집고 들어온다면 인류는 존재 의미를 너무 크게 상실하게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책과 같이 착취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은 선진기술과 관련해 다방면의 고찰을 담은 책은 흥미 유도가 쉽지 않고, 내용도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는 게 맹점이다. 사람들 안의 선의나 경각심을 고양시키려고 해도, 예를 들면 취약계층을 위한 도시락 사업처럼 직관적으로 쉽게 알고 참여를 장려할 수 있는 프로그램 및 정책을 짜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동물, 그 중에서도 강아지를 유달리 좋아하는 나는 길을 걸으며 산책하고 있는 반려견들을 볼 때마다, 사랑스럽고 행복한 풍경이라고 느끼면서도 한 편으로는 ‘인간은 천사를 줄에 묶고 다닌다.’라고 생각하고는 했다. 문자와 언어를 향유하지 못하는 타 동물종과 인간의 격차의 가시적인 결과가 인간이 다른 종을 우리에 가두거나 줄에 매어도 되는 권리를 획득한 것과 같이, 근미래에 우리는 ai권리를 소유한 소수의 인간들에게, 그 사람들이 원하는 역할로만 취급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삶을 제한당하고, 그리고 내 삶의 범위가 몇 평에 불과하다는 걸 인지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에서 사랑과 선의를 지키기 대단히 어려울 것이고, 삶의 난이도는 겪을 때마다 후유증이 긴 고통을 여러 번 반복하는 식으로 높아지게 될 것이다. 

정해진 미래를 바꿀 혁신적인 방법은 아직 안 떠오른다. 다만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삶을 살아내는 것에 관한 선의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작은 점들은 늘려나가고, 그 점들이 각각의 도구로서 예상 못 할 시너지를 발휘하리라는 것을 믿어야 할 것이다. 누군가가 개인의 역경과는 별도로 삶 자체가 존속되기를 바라는 사랑의 마음을 끝까지 가져야 할 것이다. 뛰어난 기술을 인간의 우위에 두고 공존하고 협력하되, 다른 존재들이 부족한 그대로 지켜지고 보존될 수 있도록 흔들리지 않고 바랄 수 있는 강한 마음의 힘을 지닐 방법을 떠올린다. 그건 특이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종교 앞에서 존재를 낮추고 수그리는 모습으로 표상되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겸허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과 존속, 번영이라는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빛나는 가치들은 어쩌면 기록으로서 지식이 시작된 이후 변한 적이 없음에도, 우리는 늘 지킬 것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어렵다. 운명이라는 개념에 대항하기에 개인의 생명은 너무나 실재적이며 유한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상의 암묵적인 패러다임이나, 확률에 의한 연산에서 벗어나려는 꿋꿋한 믿음이나 재도전은 쉽게 결과를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촉발되는 끝없는 심적 불안을 잠재우려면, 다만 내가 거대한 시간 앞에 소박함을 누리는 존재임을 스스로 확인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작은 존재로서 큰 세상을 충분히 누리기, 거대한 존재가 됨으로서 더 커질 수 없는 세상의 한계를 부추기지 않기. 그러면서도 나 하나가 이 세상의 절실한 가능성임을 굳게 믿기. 꽤나 사명적인 임무가 우리에게 남아 있다. 점과 점끼리의 연결이 불운한 미래에서 우리를 구할 수 있다고 저자가 말하는데는, 탁월한 ai나 특정한 인간과 같은 영웅적 존재가 우리를 휘둘러서는 운명에의 저항이나 탈출에 실패한다는 논리가 책 내에서 성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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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시밤 | 7개월 전

저도 오렌지님과 비슷한 생각을 갖고 종종 암울한 미래를 예견하곤 했는데요.
인공지능 관련 책은 처음이었는데 오히려 인간에 대한 철학서라는 의견에 너무도 공감하구요.
그래서인지 제가 기존에 그리던 암울한 미래와는 조금 다른 성격의 가능성이 보이는 것 같더라구요.
인류 진보의 역사를 되짚어볼수록 오히려 말씀하신 '선의의 시너지'가 전 가능할 것 같다는 희망이 들었어요.

오렌지 | 7개월 전

시밤님 댓글 감사합니다! 어려운 책이라 다른 분들의 독후감이 너무 궁금했는데요,
시밤 님의 글에서 '갈대 속의 영원'에 나온, 문자발명 > 음독 > 묵독 으로 이어지며 진화하는 인간의 내면의식 발달에 관한 예시가 확 와 닿았습니다.
내면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생각의 깊이가 달라지면서 인간은 거듭해서 고유한 존재로 스스로를 자리매김 해 온 것 같아요. 그리고 ai의 발달로 인하여 어찌보면 (다른 생명들에게)오만했던 인본주의, 성찰하는 존재라는 믿음의 흔들림을 겪으며 더 나아갈 방향을 못 찾아 패닉에 빠져 있는 상황으로 보이구요.
독자성과 이타주의의 공존은 참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서로의 의견을 주고 받는 동안 저는 어쩐지 마음에서 온기를 느끼는 것 같아요. 좋은 하루 되시고, 내일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