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리듯 읽은 뒤엔 곱씹을 게 한가득

<피가 흐르는 곳에 (척의 일생)> - 스티븐 킹 독후감

늘보리 프로필 늘보리
2026-02-26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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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박정민은 <혼모노>를 두고 ‘넷플릭스 왜 보냐’고 했는데, <피가 흐르는 곳에>를 읽으면서 같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스티븐 킹의 소설을 처음 읽었는데, 그가 왜 ‘이야기의 제왕’이라 불리는지 알 것 같았다. 계속해서 궁금증을 자아내어 이야기를 끝까지 읽게 하는 힘이 대단했다. 홀리듯 책장을 넘기다 보면 엔딩에서 묵직한 감동이 밀려왔다. 재미와 의미를 둘 다 갖춘 이야기라니… 그야말로 ‘넷플릭스 왜 보나’.^^;;

#1. 해리건 씨의 전화기
첫 이야기 <해리건 씨의 전화기>에는 세 주인공이 나온다. 시골 마을로 이주한 은퇴한 거부, 그의 집을 정기적으로 찾아 책을 읽어주는 소년, 그리고 아이폰. 아이폰은 사물이지만 사물 이상의 역할을 하며 이야기의 몰입도를 높인다. 이야기 중간 중간에 스마트폰 등장 이후 인류가 처한 상황을 정확히 보여주는 말들이 등장한다. 이같은 진단은 세상에서 한발짝 떨어진 채 조용한 삶을 살아가는 해리건 씨의 눈에 더 똑똑히 들어온다. 그는 세상의 유혹(주로 돈과 관련된)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있는 덕에 객관적으로 ‘아이폰’의 본질을 진단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배변 훈련이 필요한 강아지와 같아. … 너무 많은 걸 무료로 제공하면 사람들이 그걸 기대하게 되거든. 꼭 바닥에 똥을 싸놓고 ‘이래도 된다고 했잖아요.’라고 말하는 눈빛으로 주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강아지처럼 말이다.”
-“인터넷은 물이 아니라 정보를 뿜어내는 터진 수도관과 같다”

그럼에도 일단 아이폰을 사용하자 서서히 중독되기 시작한다. 위험한 물건에 중독되어감을 인지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사용을 멈추지 못하는 것을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을까. ‘중요한 건 생각’이라는 말에 “지키는 사람보다 말로 떠드는 사람이 더 많은 격언이지.”라고 해리건 씨는 말했다. 이제는 스마트폰, 더 나아가 AI가 우리의 사고와 감정, 관계와 사회망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똑똑히 알고 있고 말로도 열심히 떠들고 있지만, 그에 합당한 자제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자괴감에 찬 채 고해성사처럼 주기적으로 고충을 털어놓고 다시 중독에 빠져든다.

주인공은 해리건 씨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주머니에 그의 아이폰을 넣는다. 그리고 감정의 격변이 올 때마다 그에게 전화를 건다. 정체불명의 이유로 도착한 c와 a로 조합된 답문은 마치 해리건씨의 영혼이 떠나지 못하고 귀신이 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아이폰으로 그와 연결되었다는 사실에 중독될수록 더 큰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주인공은 결국 해리건씨의 전화기와 연결된 자신의 1세대 아이폰을 깊은 물에 던져버린다.

“다들 이 최첨단 델몬트 캔에 중독됐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중독된 것을 알았고 해리건 씨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그날 그의 주머니에 휴대전화를 넣은 것도 그때문이었다. 21세기에 우리는 전화기를 통해 세상과 혼사를 맺고 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 결혼 생활은 불행할지도 모른다.”

스마트폰으로 연결된 세상, 더 구체적으로는 카톡으로 연결된 세상, 언제든 연락할 수 있고 연결될 수 있다는 믿음, 그것이 심지어 죽은 사람일지라도. 결말에서 주인공은 왜 전화기를 통해 맺어진 관계를 ‘불행할지도 모른다’고 했을까. 스마트폰은 왜 ‘귀신’같은 존재로 느껴지는 걸까. 스마트폰이라는 ‘귀신’을 매개로 연결된 관계는 왜 불행할 수밖에 없는 걸까. 중독조차도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라, ‘스마트폰’에 가해지기 때문은 아닐까. 좋아하는 사람에 빠져있는 것 같지만 실은 스마트폰이라는 ‘귀신’에 들린 것은 아닐까. 스마트폰이 제공하는 엄청난 정보에 혼미해진 채 배변 훈련이 덜 된 강아지처럼 원망어린 눈으로 어딘가를 응시하는 것은 아닐까. 이제 와서 배변훈련이 가능하기는 한 걸까.

(일단 여기까지 먼저 올리고 ‘척의 일생‘은 일 마무리하고 올리겠습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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