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 같은 나에게 훈수를 두는 느낌을 받았다. 보통 한쪽에 치우쳐 행동할 때가 많았다. 그리고 그 중심이 어딜까 생각한 적도 없었다.
어떨 때는 내가 이렇게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었을까 생각하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차갑고 냉철하게 이성적일 때가 있다. 어떤 상황이었는지 콕 짚어서 말할 수 없지만, 나의 이중성에 흠칫 놀랄 때도 있다. 마치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귀뚜라미처럼 말이다.
내 본능의 이끄는 대로, 의식의 흐름대로 움직였다. 많은 생각을 거칠 때면 감정적으로 지칠 때가 많으니까.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에서 ‘만일 삶에서 배울 수 있는 그 순간들로부터 스스로를 차단하려 한다면 마음은 마치 운동하지 않은 근육처럼 스트레스에 점점 취약해진다.’ 말했던 것처럼 점점 나약해진 내면에서의 나를 잃어버린듯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에서 ‘만일 삶에서 배울 수 있는 그 순간들로부터 스스로를 차단하려 한다면 마음은 마치 운동하지 않은 근육처럼 스트레스에 점점 취약해진다.’ 말했던 것처럼 점점 나약해진 내면에서의 나를 잃어버린듯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어떤 바람을 가질 것인가가 절대 아니다. 언제나 문제는 가지고 있는 여러 바람 사이의 충동에 대해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이 문제는 언제나 생겨나고, 이 맥락에서만 좋음과 가치에 관한 논의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이미 어떤 방침을 만들어낸 사람에게만, 실천적 사고를 시작한 사람에게만 생겨날 수 있다’
실천적 사고는 뭘까. 나만의 나침반을 만들어나가고, 도덕적 성장을 위해 내면에서의 충돌을 받아들이며 고민하고 해결하는 시간이 포함되어 있는 게 아닐까. 행위를 잃지 않고 의식적으로 활동하고, 생각하고, 고민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