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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길을 유연하고 요령있게 걸어나가기

<짐승과 인간 (3, 4, 5부)> - 메리 미즐리 독후감

자장가
2025-10-24 01:11
전체공개
책을 소개하는 글 중에서 '우아하다'라는 표현이 있었다. 책은 어떤 경우에 우아해질 수 있는 것일까? 책의 우아함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읽어나가야 할까? 고군분투 끝에 마지막 장을 넘기고 무엇을 읽었는지를 생각한다.
진화론과 자연과학의 발견은 인간과 다른 동물을 발생학적으로 직접 '연결'시켜 버렸다. 인간이 연결되면서 진화론은 자연과학적 발견에만 머물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참신하고 강력한 도구의 등장에 고무되어 이 도구를 가지고 세상의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시도와 그것을 당위의 영역까지 확장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결국은 인류적 범죄 행위들이 발생하는 비극적인 결과까지 낳았다. 우생학을 이유로 자행되었던 홀로코스트와 장애인에 대한 범죄를 목도한 철학자는 진화론의 시대에 인간이 무엇이고 어떠해야 하는지를 다시 정리하려 했다. ('물고기는 없다'를 읽었을 때의 충격을 생각하게 되었다.)

"인간은 혼자서는 이해될 수도 구원받을 수도 없다."

유전적 결정론과 환원주의적 세계관에 맞서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통해 인간 본성의 근원을 탐구한 메리 미즐리의 대표작이자 도덕철학의 기념비적 고전

책의 띠지에서 마지막 문장과 함께 한 문장으로 정리한 책의 내용 혹은 정체성이다.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하는 것이 책을 선택하려는 사람에게 적절한 방법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읽은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를 정리하려는 사람에게는 꽤 도움이 되는 방법으로 보인다.)

저자가 다투어야 하는 생각은 양쪽에 모두 존재한다. 인간과 짐승은 별개의 존재이며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존재라는 설명 방식이 한 쪽에 있고, 인간과 짐승은 닮은 점이 많은 존재이며 유사한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설명 방식이 다른 한 쪽에 있다. 그리고 각각은 인간의 사회와 문화, 도덕을 자신의 방식으로 설명한다. 전자는 인간과 동물의 연결을 설명할 수 없고, 후자는 인간 사회의 우연성과 다양성을 설명하지 못한다.

저자는 인간이 짐승과 생물학적으로 유사한 플랫폼을 공유하고 있음을 밝히면서, 다른 한편으로 그것이 발현되는 방식에 있어서 차별성이 존재함을 설명하기 위해 '우아하게' 좌충우돌한다. (좌충우돌한다는 말은 한편으로 인간과 짐승이 공유하고 있는 요소를 통해 전자의 입장과 대립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고유한 특성에 대한 검토를 통해 후자의 입장에 대해 반론을 제시하고 있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긴 여정은 복잡한 목차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미시적 수준에서 인간의 욕구와 동기가 작동하는 기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설명(1~2부)한 다음, 진화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인간에게 고유한 것으로 생각되는 언어와 문화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에 대해 설명(3~5부)해 나간다. 

  • 인간은 생존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선천적인 경향성과 동기 구조를 가져야 한다는 점에서 '백지설' 또는 '무한가소성'을 비판하고, 이성을 인간의 영역에 두고 감정을 동물적 영역으로 구분하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와 거리를 둔다.
  • 그러면서도 인간의 본능이 대부분 '열린 본능'의 형태를 취한다는 사실을 통해 '생물학적 결정론'과도 다른 입장을 취한다.  
  • 저자는 특히 과학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단순화시켜서 설명하려는 시도에 대해 조심해야 한다는 시각을 보인다. 당시 유행했던 사회생물학이 모든 행동과 동기를 '이기적인 유전자'의 생존과 번식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하려는 시각을 비판하고 '장기적인 진화적 시각'과 '개체의 경험'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 진화를 '단계/위계'가 아니라 '분화/적응'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설명과 진화가 우리가 '어떤 종류의 존재'인지를 설명해 줄 수는 있지만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직접 결정해 주지는 않는다는 설명, 생물학적 기반에서 출발한 인간의 본성이 '상호 연결된 하나의 통합적 전체'로 상호작용한다는 설명은 진화론에 대한 현재의 주류 시각과 닮아 있다.
  • 언어와 문화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인간과 짐승의 관계에 대한 설명 방식과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언어는 인간과 동물이 공유하는 진화적 뿌리에 기반하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의사소통의 수단을 넘어 인간의 복잡한 사고를 조직하고, 공동의 지식을 축적하며, 세대를 거쳐 문화를 전승하는 도구로서 기능하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문화 역시 동물들이 가진 '습관의 전파'나 '모방'을 통한 새로운 행동 양식의 공유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관습적 상징'을 통해 인간의 '열린 본능'을 완성하는 수단으로 작용한다는 차이가 있음을 설명한다.
  • 저자는 인간과 동물이 근본적인 감정적 동기와 욕구 구조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본성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없다고 말한다.  즉, 인간의 '지성'을 동물들의 '본능적 구조'를 대체하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되며, 인간의 '열린 본능'을 조정하고 구체화하는 수단으로 이해하는 것이 맞는 방법이라고 결론짓는다. 
책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맺고 있다. 
이것이 찰스 다윈이 물리적 우주를 바라보는 방식이며, 내가 틀린 게 아니라면 아리스토텔레스도 그렇게 바라본다. 이것이 우리 본성이 살아가도록 적응한 우주이다. 이 우주는 우리에게 이질적이고 하찮게 여겨지는, 우리가 분리되어야 하는 곳이 아니다. 이것이 내가 이해하는 인본주의가 담고 있는 메시지다. 인본주의가 신을 파괴한다는 뜻일 수만은 없다. 그 주요 임무는 인간을 이해하고 구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혼자서는 이해될 수도 구원받을 수도 없다.
인문학을 통해 인간이 '이해'될 수 있다는 말은 다가오지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말은 여전히 멀다.

책을 읽으면서 먼저 '책은 출간된 시기와 상황이라는 맥락 속에서 파악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20세기 중후반은 진화론이 학문의 전 영역에 확산 적용되고 있었고, 잘못 적용될 경우 사악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음을 목도했던 시대였다. '짐승과 인간'의 대비를 통해 도덕 철학의 근간을 새롭게 정립하려는 접근법은 그런 맥락에서 시대적 필연성을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면서도 인간 중심의 전통적 접근법과 유전자 중심의 기계론적 접근법 사이의 좁은 길을 저자는 유연하고 요령 있게 걸어나간다.

저자의 생각을 현재의 시점에서 돌아볼 필요 또한 있을텐데, 진화론을 생물학이 아닌 영역에 적용하는 것은 주의를 요하는 일이지만, 사상의 영역에서도 생태계 속의 생명체처럼 '공진화'가 진행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각각의 사상들은 스스로가 가진 논리적 정합성과 상황에 대한 적합성을 기반으로 생존하고 소멸하며, 적응하여 변화하기도 한다. 20세기에 있었던 전쟁과 학살, 비인도적 행동들에 이론적, 감성적 기반을 제공했던 극단적 논의들은 희미해지고, 대립되었던 이론들은 조금씩 서로를 수용하면서 세상을 더 잘 설명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런 종류의 책에서 제시되는 '설명'과 '당위'가 충분히 납득될 수 있더라도 현실 세계에서 여전히 쉽게 구현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이후에도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어쩌면 '유전자'라는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면서, 생존을 위해 '열린 본능'을 사회와 문화를 통해 채워나가는 인간의 중간적 속성은 원래 그런 한계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복잡성과 모호성을 내포하고 있는 실제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도덕적 이상주의'도 '현실적 이기주의'도 재앙적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인류는 그 사이의 좁은 길을 아슬아슬하게 걸어가고 있는 것이리라.

주간지의 기사에서 이 책의 내용과 연관된 기사를 읽게 되어서 마지막에 덧붙인다.
인간은 동물의 하나다. 과학이 인간에 대해 알려준 중요한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다르다. 아니, 우리는 다르다고 믿는다. 과연 인간과 동물은 어디가 다른 걸까?이 질문에는 여러 답이 존재하지만,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이 최근에 가장 ‘핫한’ 답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인간에 관한 과학적 연구는 주로 자연선택과 성선택에 근거하여 인간의 행동, 나아가 특성을 설명했다. 동물을 연구하는 방식으로 인간을 다루었다는 뜻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인간과 동물은 여러 면에서 비슷한데, 차이보다는 공통점을 강조한다는 느낌이다.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은 차이를 전면에 내세운다. 바로 인간이 가진 문화가 핵심적 차이다. 문화는 인간이 가진 특별한 행동양식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생존과 문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우리는 왜 자꾸 타인을 따라 할까? [물리학자 김상욱의 ‘격물치지’], 시사인. 2025.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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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A동 부사감 | 1개월 전
전체적인 내용을 잘 정리하셨네요. 다만, 설명 vs. 당위나, 현실적 이기주의 vs. 도덕적 이상주의의 이항 대립 구도로 귀착된 것은 저자의 논지와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함께 이야기해 보고 싶네요. 첨부하신 주간지의 글은 오히려 사족 같네요. ^^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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