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인 제나 히츠가 경험하고 비판했던 문제들을 내가 살아왔던 모습에 비추면서 책을 읽었다.
(나는) 성년이 될 때까지 '공부'를 직업, 학위, 기술을 획득하는 수단이라는 '유용성'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환경에서 경쟁하며 지냈다. 그리고, 그렇게 공부하는 것에서는 상당히 '효율적'이고 '효과적'이었기 때문에 괜찮은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지방의 소도시를 떠나 대학에 들어가서 마주친 세상은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었고, 선택했던 전공 과목에서 경쟁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사람들이 있는 집단의 행태를 보면서 혼란에 빠졌다.
9/11을 목격한 저자는 자신이 공부하던 고전 철학이 현실 문제에 '무용하다'는 무력감을 느꼈다고 한다.
저자는 그때까지 하던 일을 멈추고 캐나다의 외딴 숲속에 있는 종교 공동체에서 지내면서 새로운 통찰을 얻었고, 자신이 학부 과정을 마쳤던 성 요한 칼리지로 돌아와서 캐서린 프로젝트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그 깨달음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나의 대응은 그 보다는 소극적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방향으로 걸어가기 보다는, 다른 갈림길이 있는 지를 찾는 방식이었다. 잘 설계된 제도가 세상이 움직이는 방식을 바꿔나갈 수 있다는 이론에 끌려 전공을 바꿔 대학원을 갔다. 정부에서 잠깐 일을 했다가, 그 곳도 비슷한 다툼이 벌어지는 곳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일반 기업에서도 여러가지 방식으로 일을 했다.
여기저기 돌아다녔고 많은 것에 익숙해졌지만, 오래전에 가졌던 질문에 대한 답은 여전히 요원하다.
두 가지 삶의 방식-실용적인 삶과 학습하는 삶-을 어떻게 엮을 것인가? 그것은 우선 순위의 문제일까? 아니면 비율의 문제일까? 여전히 가족, 친구, 동료들과 어울려 살아가야 하고, 사회와 직업에서 기대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데, 그것이 가능한 것일까? 각각의 사람들의 속사정을 알 수는 없겠지만 그것을 잘 공존시켜 나가는 모습을 보이는 지인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 것일까?
다른 사람들도 저자의 말처럼 더 깊이 있는 존재의 방식을 찾아가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그러나 인간의 포부는 외적인 삶보다 더 넓고 깊다. 그것은 존재의 방식을 향한다. 즉 지혜롭게 혹은 친절하게 사는 것, 넓은 이해력을 발휘하며 사는 것, 진실에 굳건히 발붙이고 살아가는 것, 성공 앞에 겸손하고 역경 앞에서 기지를 발휘하며 살아가는 것을 지향한다.
책을 읽고 두 개의 말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
하나는 "바람직한 공부는 진정한 여가(True Leisure)를 기반으로 한다"는 말이다. 저자가 말하는 여가는 단순히 빈 시간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사색을 위한 내적 및 외적 환경을 적극적으로 조성하는 행위이다. 사색을 위한 내적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개인은 외부 세계의 끊임없는 소음과 자극으로부터 의도적으로 분리(detaching from the world)되어야 한다.
성취에 대한 욕망과 뒤처짐에 대한 불안으로 나는 자투리 시간도 쉽사리 비워두지 않으려 했다. 그렇게 틈을 두지 않아서 결국은 시간과 관심을 두어야 할 곳을 그냥 지나치곤 했다.
다른 하나는 "책을 단순히 수동적으로 소비해서는 안되며, 텍스트와 직접적으로 싸워나가야(engage directly with text)한다"는 말이다.
“의견은 두려움과 야망이라는 사회적 충동의 네트워크에 의해 고정되어 있다 … 그 속박을 깨고 실제로 무언가를 배우려면 일종의 지적 폭력이 필요하다: 고문하듯이 리얼한 책, 답을 줄 수 없는 질문, 혹은 우리와 다르게 지향된 지적인 존재의 존재가 내리는 고통이다.” (“Opinions are fixed in place by a network of socially directed impulses of fear and ambition … To break its bonds, so as to actually learn something, requires a sort of intellectual violence: the pain inflicted by a torturously realistic book, by an unanswerable question, or by the presence of an intelligent human being who is oriented differently than we are.”)
기술이 발전하면서 배움은 훨씬 용이해졌다. 텍스트를 찾는 것도, 다양한 설명을 확인하는 것도, 심지어 요약된 내용을 확인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운동하지 않은 몸이 허약해지듯, 쉬움에 길들여진 정신 역시 빈곤해지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데, 그것을 종종 잊어버린다.
'네 생각은 아직도 그 수준에 머물러 있냐?'
스물이 되던 해 겨울, 같은 기숙사에서 부대끼며 지내던 고등학교 동기가 나무라듯 던진 얘기는 여전히 내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었다. 아마도 그 친구는 내게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