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겨울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단순히 추운 게 싫기도 하지만, 실제로 이 시기에는 몸의 컨디션도 눈에 띄게 떨어지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겨울은 늘 버텨내야 하는 시간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그런데 소로가 바라보는 겨울은 조금 달랐다. 움직임이 줄어든 대신, 오히려 더 또렷해지는 것들이 있는 계절.
그걸 따라 읽다 보니, 나도 겨울의 장면들을 조금 다르게 떠올려보게 됐다.
햇살은 계절마다 다른 각도로 기울어져 있다. 겨울의 늦은 오후, 창문을 통해 이 안을 들여다보고 싶은 것처럼 다른 계절보다 더 갸우뚱 기울어진 햇살을 좋아한다. 겨울의 좋은 점은 그거 하나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바깥이 차갑기 때문에, 반대로 내 공간 안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더 크고 아늑하게 느껴진다.
그동안은 겨울의 불편함을 더 크게 느끼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장면들을 떠올리면서 이 계절이 주는 다른 감각들도 분명히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문득 떠오른 건 영화 <인사이드 아웃>이었다.
기쁨만으로는 완전한 감정이 되지 않고, 슬픔이 있기 때문에 기쁨도 더 또렷해진다는 이야기.
겨울이 나에게는 슬픔이 같은 계절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쁨만으로는 완전한 감정이 되지 않고, 슬픔이 있기 때문에 기쁨도 더 또렷해진다는 이야기.
겨울이 나에게는 슬픔이 같은 계절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편하고, 피하고 싶고,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시간이지만 그 계절이 있기 때문에 다른 계절의 따뜻함이나 활기가 더 선명해진다.
그리고 그 안에서도 아주 작게나마, 그 계절만이 줄 수 있는 장면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도 아주 작게나마, 그 계절만이 줄 수 있는 장면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나도 이제 겨울을 조금 다르게 써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바깥으로 뻗어나가려(극복하려) 애쓰기보다 한 해를 정리하고 다음 계절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겉으로는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어 보여도 내면에서는 조금씩 다져질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게 겨울이라는 계절이 가진 역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겨울을 단순히 싫어하는 계절로 두기보다는,
나만의 속도로 잠시 멈추고 정리할 수 있는 시기로 한번 활용해보고 싶다.
나만의 속도로 잠시 멈추고 정리할 수 있는 시기로 한번 활용해보고 싶다.
월든이 나에게 가르쳐준 건 어떤 삶의 정답이라기보다, 지금의 일상 안에서 계절과 시간의 의미를 다시 바라보는 시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