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 생태계

<할매> - 황석영 독후감

봉천동 조지오웰 프로필 봉천동 조지오웰
2026-05-22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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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기를 좋아했던 창수, 어릴적 할미에게 "창수 안에는 또 하나의 세상이 있당께"라는 말을 들은 뒤로 서툰 시를 써왔다. 창수에게 시는 궁금한 세상을 들여다보는 창구였다. 시에는 유독 갯벌이 많이 등장하는데, 문학소녀 출신 할미가 터잡고 생계를 유지하던 곳이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창수의 세상에는 갯벌의 형상이 자리 잡혀왔고. 문학과 돌봄이 자라나는 마음속 생태계의 중심이 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돌아가신 할미도 창수 세상 속 갯벌에 터 잡아 살고 계셨다. 

취업 후 밀려드는 업무와 공부에 창수는 압도되어갔다. AI의 빠른 발전으로 인해 창수가 쫓아야 할 세상은 한 발짝 다가가면 두 발짝 멀어졌다.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았고 속도를 줄일 수도 없었다. 시.. 아니 일기조차 쓰지 않은 지가 2년이 넘었다. 마음속 갯벌의 썰물은 '주의'(attention)인데, 돈과 성공이라는 강한 압력이 제방을 쌓아 갯벌로 흘러야 할 '주의'를 막아버렸다. 갯벌은 말라가기 시작했고 숨어있던 작은 생각들은 '주의'을 갈구하며 기어 나와 뒤틀려 죽어버렸다. 손자 생각뿐인 할미는 제방으로 달려나가 온몸으로 며칠간 돌더미를 파냈으나, 바깥 세상일로 인하여 그 돌이 다시 메꿔지는데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3년 더 흘렀다. 겉보기에는 좋은 커리어를 쌓아가는 창수의 내면은 말라가고 있었다. 갯벌이 마르니 그와 무관한 줄 알았던 모든 것이 황폐해져갔다. 마음속 세상의 70%가 사실 그 갯벌에서 태어나고 자랐던 것이다. 창수는 그 사실을 몰랐고 점점 공허해지는 마음을 '어른이 된다는 건 이런 건가 보다'하고 받아들였다. 

그나마 회생 가능성이라도 있던 갯벌에 매립 공사가 시작됐다. AI 학교, 주식 학교, 부동산 투자 학교를 세울 장소가 필요하다는 게 이유다. 갯벌 지킴이 할미는 드러누워도 보고 욕까지 해봤지만 막을 수 없었다. 이미 창수의 세상에서 '문학소녀 할미'는 힘을 잃은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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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홍콩 프로필 홍콩 | 4시간 전
할미 내려놓지마세요
잘 읽었습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