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에서 말하기로'를 읽으면서 떠오른 가장 큰 질문은 '보편의 보편성'이었다. 우리가 보편이라고 불러온 도덕 개념이 과연 얼마나 보편적이었는가 하는 질문이다. 이는 단순히 도덕의 범위를 넘어 보편이라는 이름으로 굳어진 모든 기준이 어떤 전제를 바탕으로 형성되었는가를 되묻는 문제로 확장된다.
콜버그의 도덕 발달 이론은 성숙한 도덕을 독립, 자율, 권리 판단의 관점에서 단계화한다. 나는 도덕에 대한 기준을 깊게 고민해 본 적은 없지만 콜버그의 기준이 나름의 권위를 얻으며 오랫동안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인간 발달의 경로로 받아들여져 왔던 거 같다. 저자는 이 이론이 남성의 경험을 중심으로 구성되었으며, 그 결과 관계, 책임, 돌봄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여성의 도덕 판단이 미성숙하거나 결핍된 형태로 해석되어 왔다고 말한다. 개인적으로는 남성이건 여성이건 성향에 따라 도덕 판단의 중심점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나(경험적으로 나의 도덕관을 볼 때 남성 특징과 여성 특징이 모두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차이 그 자체가 아니라, 특정 집단의 경험이 사회의 보편으로 자리 잡는 일련의 과정이 반복된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개인은 이러한 구조를 인식하기 어렵다. 기준이라는 것은 개인의 성장 과정에서 충분한 배경지식과 판단력을 갖추기 전에 교육이라는 형태로 학문적 권위와 제도를 통해 습득되며 이는 이후 모든 가치판단의 무의식적 근거로 영향을 미친다. 보편 도덕 역시 누군가에 의해 강요되기보다는 교과서와 상식, 전문 지식에 대한 열의로 인해 자연스럽게 의심할 필요 없는 개념으로 학습된다. 그 결과 특정한 기준에 잘 부합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중립적이고 합리적인 개념으로 보이고, 부합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설명되지 않는 예외나 개인의 문제로 인식된다. 여성의 도덕이 오랫동안 설명되지 못한 이유 역시 그것이 틀려서라기보다는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일 것이다. 전제를 의심하기보다는 개인과 집단의 오류로 해석해 왔다.
보편의 오류는 도덕의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토드 로즈의 책 '평균의 종말'은 평균적 인간을 전제로 설계된 기준과 제도가 실제 인간의 다양성을 얼마나 배제해 왔는지 보여준다. 조지프 헨릭의 '위어드' 역시도 비슷한 맥락에서 인간 보편의 심리로 여겨졌던 수많은 연구 결과가 사실상 서구의 특수한 문화적 조건에 기반하고 있음을 설명한다. 여러 분야의 연구들이 반복해서 드러내는 사실은 우리가 보편이라고 믿어온 많은 기준들이 실제로는 특정 집단의 경험을 일반화한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많은 사례를 지식으로 알게 되었음에도 이러한 보편의 오류를 비전문가의 위치에서 스스로 인식하기란 여전히 어렵다. 이론은 전문성과 권위를 통해 제시되고, 우리는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신뢰를 우선하도록 사회화되어 있다. 따라서 보편의 오류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개인의 사고력이 부족해서라기보다,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사회적 합의와 지식 습득의 방식에 있다. 문제는 우리가 틀렸다는 사실 보다는 그것이 너무 당연해 보여서 의심할 이유조차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일 것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당연하게 여겨지는 기준(보편), 판단, 해석일수록 비판적 사고의 대상에 두고 여러 측면에서 다양한 사유를 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스스로가 어떠한 이론을 깨부수거나 혁신적 개념 전환을 이루어 낼 학자가 될 수는 없겠지만, 세상이 쥐여주는 것이 어떠한 기준에서 적합한 것인지 정도는 스스로 판단해 볼 수 있는 지성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성이란 무엇이 옳은 것이고 그른 것인지 빠르게 판단하는 능력만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상을 한 걸음 물러서서 점검하고 관찰하고 보편 뒤에 숨겨진 전제를 확인할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하다.
침묵에서 말하기로는 여성의 목소리를 회복하는 책이지만,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보편이라는 단어에 더 관심이 갔다. 언제라도, 어떤 분야든지 보편이 특정 집단의 경험 위에 세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객관성을 탐구하는 주관적 인식이야말로, 이 책이 제안하는 가장 현실적이고 성숙한 도덕적 태도가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