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 흐르는 곳에, 마음이 머무는 곳에

<피가 흐르는 곳에 (척의 일생)> - 스티븐 킹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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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6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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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아버지가 문득문득 떠오를 때가 있다. 특별한 날도 아니다. 그저 무심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을 뿐인데 그분의 얼굴이 생각난다.
유독 그런 날이 있다. 일이 마음처럼 풀리지 않고 삶의 무게가 버겁게 느껴지는 날. 그럴 때면 나는 닿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아버지를 향해 짧은 편지를 쓴다. 그 행위만으로도 작고 소중한 위안을 얻기 때문이다. 글의 내용은 그리 특별할 것 없다. 그저 일상의 속상한 마음을 아버지에게 두서없이 털어놓는 것이다.
영화 속 크레이그는 해리건 씨의 관에 전화기를 넣어두고, 그의 목소리가 간절히 듣고 싶을 때마다 전화를 건다. 나의 이 편지 쓰기가 크레이그의 행동과 닮아 있다고 말하면 지나친 억지일까?
물론 크레이그는 자신을 괴롭히던 이들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해친 이들이 벌을 받길 바라는 마음으로 해리건 씨를 호출했다. 조금은 으스스한 분위기였지만, 상상만으로 권선징악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그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나의 편지는 그처럼 강렬한 복수를 꿈꾸지는 않는다. 하지만 세상에 내 편이 간절히 필요한 순간, 이미 곁을 떠난 '나만의 보호자'를 불러낸다는 점에서 우리의 본능은 닮아 있다. 전화를 거는 손가락과 펜을 쥔 손끝에 실린 그 간절함은 결국 같은 뿌리에서 나온 마음일 것이다.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고, 내 편이 되어주었던 존재의 온기를 확인하고 싶은 간절함이다.
「척의 일생」 또한 그렇다. 주인공 척 크란츠는 가던 길을 멈추고 들고 있던 서류가방을 내려놓은 채, 길거리에서 들려오는 드럼 비트에 맞춰 춤을 춘다. 나도 그렇다. 매일 아침 출근을 위해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에어팟을 꽂고 음악을 튼다. 음악에 맞춰 발로 장단을 맞추고,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하게 아주 작게 머리와 무릎을 까딱일 때도 있다.
가끔은 그 작은 움직임을 좀 더 크게 하고 싶을 때가 있다. 타인의 눈을 의식하지 않은 채 오직 리듬에 몸을 맡겼던 척 크란츠처럼 말이다. “내 안에 무수히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는 말처럼, 어쩌면 정말 내 안에도 지금껏 살아왔던 삶과는 또 다른 삶을 살고 싶은 욕망이 꿈틀대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를 향한 편지가 과거의 온기를 붙잡는 행위라면, 정류장에서의 작은 스텝은 현재의 나를 깨우는 리듬이다. 그리움과 욕망, 이 모든 것이 내 안에 무수히 담겨 있음을 인정할 때 삶은 비로소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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