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SNS에서 "야근을 상정하고 하루를 시작하면 일이 느슨해지고 결국 야근을 하게 된다"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적절한 비유일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인생에 있어서도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노년까지 살 수 있다고 상정하면 인생이 전체적으로 느슨해진다. "책은 은퇴하고 읽으면 되지", "취미는 나이 들어서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어", "젊을 때는 돈을 바짝 벌어야지"라는 마음가짐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젊을 때는 돈을 바짝 벌어야지"라는 말은 내게 노년의 인생이 주어진다고 가정했을 때 유의미하다.
이미 느꼈겠지만 내가 말하는 인생의 느슨함은 재력과 커리어 성장의 밀도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척이 드럼 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신나게 춤을 춘 그 순간, 그러니까 척이 "하느님이 세상을 만든 이유가 그 때문인가 보다"라고 생각한 그런 감동의 순간이 많은 인생을 의미하는 것이며, 다음 시즌에 읽을 <월든>의 문장을 미리 빌려오자면 깊이 있게 살면서 얻을 수 있는 "인생의 골수"의 밀도를 의미한다.
우리는 오래 살 수 있다는 믿음 하에 그런 순간들을 유보시키는 인생들을 많이 본다. 마치 인생에 야근이 있어서 그때 모두 처리할 수 있다는 듯이.. 그러나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야근'과는 다르게 '노년'은 우리 뜻대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중년' 마저도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척이 중년의 문턱에서 생을 마감했듯이 말이다. (보통 40대를 중년의 시작으로 본다)
그러니 나는 의식적으로 인생의 후반부는 내게 당연히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계속 상기할 것이다. 가끔 내 마음속 다락방에 올라가 병실에 누워있는 나의 미래를 지켜보는 행위다. 내 인생에 야근(노년)은 없다. 그래서 하루하루, 한 달 한 달을 균형 있게 살려고 노력할 것이다.
척도 자신의 죽음을 마주한 덕분?에 삶이 다하는 순간까지 열심히('인생의 골수'를 취하며) 살아갈 수 있었다. '인생의 골수'를 취하며 사는 사람에게는 생기와 사랑스러움이 뿜어져 나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아래와 같은 39년 인생을 살았으리라
이미 느꼈겠지만 내가 말하는 인생의 느슨함은 재력과 커리어 성장의 밀도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척이 드럼 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신나게 춤을 춘 그 순간, 그러니까 척이 "하느님이 세상을 만든 이유가 그 때문인가 보다"라고 생각한 그런 감동의 순간이 많은 인생을 의미하는 것이며, 다음 시즌에 읽을 <월든>의 문장을 미리 빌려오자면 깊이 있게 살면서 얻을 수 있는 "인생의 골수"의 밀도를 의미한다.
우리는 오래 살 수 있다는 믿음 하에 그런 순간들을 유보시키는 인생들을 많이 본다. 마치 인생에 야근이 있어서 그때 모두 처리할 수 있다는 듯이.. 그러나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야근'과는 다르게 '노년'은 우리 뜻대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중년' 마저도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척이 중년의 문턱에서 생을 마감했듯이 말이다. (보통 40대를 중년의 시작으로 본다)
그러니 나는 의식적으로 인생의 후반부는 내게 당연히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계속 상기할 것이다. 가끔 내 마음속 다락방에 올라가 병실에 누워있는 나의 미래를 지켜보는 행위다. 내 인생에 야근(노년)은 없다. 그래서 하루하루, 한 달 한 달을 균형 있게 살려고 노력할 것이다.
척도 자신의 죽음을 마주한 덕분?에 삶이 다하는 순간까지 열심히('인생의 골수'를 취하며) 살아갈 수 있었다. '인생의 골수'를 취하며 사는 사람에게는 생기와 사랑스러움이 뿜어져 나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아래와 같은 39년 인생을 살았으리라
“은행은 원래 피도 눈물도 없는 곳이라야 하는데 아버지는 거기서 정말 사랑을 많이 받았어요.” 브라이언은 말한다. “거기 직원들이 꽃을 얼마나 많이 보냈는지 몰라요.
그는 매부를, 그에겐 친형제나 다름없는 사람을 보고 있다. 그의 누나에게 풍족한 삶을 선물한 사람.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그를 도운 사람. 대충 소개해도 그 정도다. 그들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