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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아》의 환대가 나에게 던지는 질문

<오뒷세이아(13~20권)> - 호메로스 독후감

DCT 프로필 DCT
2026-10-03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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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오랜만에 집안을 정리하다 문득 신혼 시절의 사진을 보다 기억이 떠올랐다. 단칸방 같던 첫 신혼집에 시댁 식구들을 모두 모셔놓고 손수 차려 대접하던 시절이 생각났다. 그리고 결혼 후 처음으로 마련한 내 집에서 친척들을 모아 함께 음식을 나누고 축하를 받던 날도 떠올랐다. 그 시절 내게 ‘손님 대접’이란 귀찮거나 번거로운 행사가 아니었다. 다만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부담은 있었지만 누군가를 집으로 초대하고 정성껏 음식을 차려내는 일은 사람과 사람이 마음을 나누는 가장 자연스럽고 당연한 삶의 이치였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세상은 크게 달라졌다. 특히 코로나19라는 긴 터널을 지나며 우리는 타인과의 물리적 접촉에 은연중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고, 모바일과 온라인을 통한 비대면 소통에 점차 익숙해졌다. 
 
이제 누군가를 집으로 초대하고 음식을 준비하는 일은 ‘귀찮은 노동’이나 ‘부담스러운 실례’로 여겨지곤 한다. 이십 대인 두 딸아이 세대의 삶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내가 젊은 시절 경험했던 '손님 대접의 문화'와 딸들이 체감하는 인간관계의 거리는 확연히 다름을 느낀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따지고 싶지는 않다. 다만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져 사는 관계 속에서, 우리가 무언가 소중하고 따스한 온기를 조금씩 잃어가고 있다는 헛헛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러한 쓸쓸함 속에서 읽어 내려간 《오디세이아》 제14권과 15권의 ‘환대’ 장면들은 가슴속 깊은 울림을 주었다. 제14권에서 오디세우스는 정체를 숨긴 채 늙고 볼품없는 거지의 모습으로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의 오두막을 찾아간다. 크레타 출신의 방랑자 행세를 하는 이 초라한 이방인에게, 에우마이오스는 아무런 조건이나 계산 없이 자신이 가진 가장 좋은 돼지를 잡아 대접했다. 그는 이방인이 정체를 속이며 '트로이에서의 외투 이야기'로 자신을 시험할 때조차도 이치를 따지거나 경계하지 않고 자신의 외투를 선뜻 내어준다. 에우마이오스의 손님 대접은 거창한 축제나 자랑을 위한 행사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소박한 일상 속에서 타인을 향해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순수한 마음이자, 인간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이치'였던 것이다.
 
이러한 순수한 환대는 제15권의 메넬라오스 궁전에서도 이어진다. 스파르타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텔레마코스를 향해 메넬라오스 왕과 헬레네 왕비는 억지로 잡지 않고 그 뜻을 존중하며, 아름다운 옷가지와 황금 잔을 정성껏 내어준다. 상대의 신분이 왕자이든, 이름 없는 거지이든 상관없이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손님을 대접하는 '환대'는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성스러운 약속이자 순수한 온정이었다.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처럼 그저 순수하게, 아무런 이치를 따지지 않고 마음이 가는 대로 타인을 대접하는 것이 지금의 세상에서는 그토록 어려운 일이 되어버린 것일까? 모든 것을 효율과 편리함으로 계산하고, 서로의 경계를 넘지 않는 것이 덕목이 되어버린 현대 사회에서 에우마이오스의 환대은 나에게 깊은 질문을 던진다.
타인을 집으로 초대하고 온기를 나누는 것은 단지 '음식을 먹이는 노동'이 아니라, "당신을 내 삶의 공간으로 받아들입니다"라는 가장 성스럽고 인간적인 고백이었다. 우리는 비대면의 편리함을 얻은 대신, 타인의 체온과 눈빛을 나누는 법을 잊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손님을 맞이하고 대접하는 일이 이상하거나 부담스럽지 않았던 그 시절의 따스함이 그리워진다. 계산 없이 타인을 향해 문을 열어주었던 에우마이오스의 순수한 환대처럼, 나 역시 내 곁의 사람들에게, 그리고 마주하는 이웃들에게 한층 더 따뜻하고 온전한 마음의 곁을 기꺼이 내어줄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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