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산

<월든> - 헨리 데이비드 소로 독후감

봉천동 조지오웰 프로필 봉천동 조지오웰
2026-03-20 00:29
전체공개
아침 공기! 만약 사람들이 하루의 원천인 새벽에 이 공기를 들이마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공기를 일부 병에 담아 가게에 내놓고 팔아야 한다. 이 세상의 아침 시간이 주는 특효약을 챙기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말이다. 그러나 기억하라. 그 공기는 정오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다. 

이 문장이 오늘 아침 6시에 나를 깨워 산으로 이끌었다. 요즘 생활 패턴은 9시 30분 기상으로 맞춰져있다. 10시에 길을 나서며 들이키는 공기에는 "새벽 공기"의 "새"자 마저도 느껴지지 않는다. 소로의 말에 따르면 정오까지는 기다려 줄 것 같기도 한데, 여기 새벽 공기는 퇴근이 빠르다. 새벽 공기야 딱 기다려 얼굴 좀 보자

6시 알람이 울린다. 소로가 기계적인 장치가 아닌 위대한 정신에 의해 깨어나야 한다고 했건만 평소 9시 30분에 일어나던 사람이 알람 없이 일어나긴 힘들다. 물을 한 잔 쭉 들이켜고 옷을 주섬주섬 입는다. 머리는 감지 않는다. 머리에 새집이 있어야 새가 제집인 줄 알고 가까이 올 것 아닌가. 주머니에는 수첩과 팬을 장착한다. 집을 나서서 5분 거리에 있는 청룡산을 향한다. 편의점에 들러 삼각김밥과 바나나 우유를 사려고 했으나 문이 잠겨있다. 직원이 잠깐 화장실을 간 것 같다. 소로의 계시인가? 내 가방에 있는 물 하나면 되는데 뭣 하러 바나나우유와 삼각김밥을 사냐고 말이다. 정말 그랬다. 나는 사실 배고프지도 않았고, 바나나 우유는 필수품이 아닌 기호식품이었다. 직원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산으로 향한다. 

산 입구에 들어섰다. 등산로에 깔려있는 야자매트는 새벽 기온에 약간 얼어있다. 오르막길은 조심해야겠다. 앞에 보이는 흙 털이 기계 뒤로 연기가 올라온다. 앞으로 좀 더 가니 허리굽은 할머니가 다급히 담배를 끈다. 산에서 흡연은 금지라서 신고할까 봐 그랬던 것일까? 그러고선 다급히 휙 돌아서 가버리는데, 멀리 떨어진 내게도 아직 살아있는 담배 불씨가 보였다. 담배 불씨가 꺼질 때까지 4초 정도 주시했다. 혹시나 산불로 번지면 안 되니 말이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산불이 나는구나 눈살이 찌푸려졌다. 기분 좋게 산에 와서 처음 마주한 게 이런 어른이라니. 

다시 자연에 집중하자. 새소리가 들렸다. 찍찍찍 그러니 반대편에서 화답한다 찍찍찍.. 아 잠깐만. 나는 사실 산에 들어온 후로 지금까지 팬과 수첩을 들고 다니며 느낀 것들을 적고 있었다. 마주하는 생각과 감각을 모조리 포획하겠다는 집념으로, 그런데 오히려 쓰는 행위가 나와 자연 사이에 장애물이 되는 느낌을 받았다. 수첩을 가방에 넣고 다시 새소리에 집중했다. 찍찍찍.. 반대쪽 짹짹짹 그러다 점차 그 사이에 다른 새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다양한 새소리가 들린다. 귀가 서서히 열리고 섬세해지는 과정을 겼었다. 도심에선 그렇게 고상한 취급을 받던 글쓰기도 자연 앞에서는 방해꾼일 뿐이다. 나는 산 정상에 목적이 아니었기에 발이 닿는 대로 걸었다. 

저 멀리서 시끄러운 트로트 소리가 들린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걸어가 보니 어르신 두 분이 율동을 하고 계셨다. 거리가 있어서 소리의 근원지가 보이지 않았지만 핸드폰 이상의 스피커가 분명했다. 이런 큰 소리는 새들의 소통을 교란 시킨다. 새끼가 어미를 부르는 지저귐은 거대한 스피커에 묻힌다. 인간의 도심화로 구석에 몰려있는 이 작은 산에 들어와서까지 이렇게 해야하는가? 여기서만큼은 자연의 법도를 따라줘야 하는 게 아닌가? 나는 왜 자연에 위안받고 인간에 실망하기를 반복하는가? 평소 인간을 사랑하는 나였지만 오늘은 담배 불씨에 시끄러운 스피커까지 마주하니 한탄이 새어 나온다. 나라도 저 스피커의 영향 범위를 벗어나련다. 산속으로 더 깊이 들어간다. 아주머니 두 분이 내려오시는데 한 분이 "야호!" 라고 반복적으로 외친다. 이건 듣기 좋았다. 스피커의 진동이 아닌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소리는 듣기 좋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자연 속에서 자연스러운 소리가 나는데 왜 시끄럽겠나? 이 소리는 새들도 이해해 줄 것이다. 

작은 연못에 도착했다. 청룡산에 오면 무조건 들르는 곳이다. 폭은 4미터 정도 되고 깊이는 30~40cm 정도다. 개구리와 도롱뇽 알집 수백 개가 보인다. 알집을 손끝으로 살짝 건드려 봤는데, 알집 아래에 벌써 부화한 도롱뇽들이 움직였다. 이놈들은 곧 연못의 대장이 될 것이다. 도롱뇽은 자기 몸집 모다 작은 건 다 먹어치우며 성장하기 때문이다. 연못에 올 때마다 만난 다부진 청설모가 있다. 얼마나 크고 힘이 좋냐면 고개를 숙여 연못에 몰입하는 와중에도 그 청솔모가 나타나면 시선의 헤맴 없이 바로 찾아볼 수 있다. 나무에서 움직일 때마다 "탁!" "탁!"하는 큰 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몸집이 작고 어려 보이는 청설모들이 보였는데, 그 나이에 맞게 이나무 저나무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다. 그놈의 자식쯤 될까? 반가워!, 나는 이만 갈게

딱따구리 소리가 들린다. 학습된 무기력이라 표현할 수 있을까? 딱따구리 소리의 근원을 찾다 항상 실패했기에 딱따구리를 찾으려는 노력은 달리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소리만 들리는 게 아니라, 딱딱 소리에 맞춰 내 발에 진동이 느껴졌다. 분명 바로 옆 나무일 것이다. 고개를 들어보니 엥? 참새만한 새가 나무를 쪼고 있었다. 원래 딱따구리가 이렇게 작았나?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그 자리에 서서 한참 관찰했다. 구멍을 내고 있는 나뭇가지의 둘래는 새의 몸통 만했다. 딱따구리는 집을 지으려고 나무에 구멍을 뚫는 게 아니였나? 저 굵기의 나뭇가지는 보금 자리로 쓸 수 없을 것 같은데? 나무속 벌레를 찾는 먹이 활동인가? 아니면 어린 딱따구리가 집 짓는 연습을 하는 걸까? 내가 소로만큼 새의 습성과 종 그리고 나무와 풀의 종을 잘 알았더라면 더 많은 것을 보고 느꼈을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던가. 숲해설가 자격증을 따볼까?라는 오랜 생각이 스멀스멀 다시 올라온다. 

산에 퍼진 새벽 공기를 쭉 들이켠다. 기분 좋은 산 바람을 산속 친구들과 함께 맞는다. 오늘은 태양이 출근하는 모습을 봤다. 소로가 말했다 "태양과 보조를 맞추는 자에게, 하루는 영원한 아침"이라고, 어느새 퇴근 후 독후감을 쓰고 있는 나는 소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오늘 하루는 내게 "영원한 아침"이었기 때문이다. 
목록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