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흐르는 척의 일생을 따라가다보면, 그의 삶이 결코 보이는 것처럼 평범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각자의 특별한 세계를 하나씩 품고 있다.
첫 장인 3막에서는 척의 생명이 다해감에 따라 멸망을 맞이하는 그의 내면세계를 묘사한다. 인터넷이 끊기고 땅이 갈라지는 환경에서도 세계의 주민들은 여전히 내일의 출근을 걱정한다. 삶의 관성은 멸망에 하루 더 가까워졌다는 뉴스만으로는 거스를 수 없다. 거대한 싱크홀로 출근이 불가능해진 후에야, 주민 중 하나인 마티는 비로소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마티가 마주하는 길에는 ‘고마웠어요, 척!’ 광고가 곳곳에 도배되어 있다. 마티는 정체 모를 메시지에 두려움을 느끼며 종말을 직감한다. 일상의 풍경이었던 광고가 세계가 저물어가고 있음을 알리는 경고판이 되었다. 세계는 온 힘을 다해 척에게 고마움을 표시하지만, 정작 세계의 주민은 두려움을 느낀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3막에서 병실에 누워있는 모습으로만 등장하던 척은, 두번째 장인 2막에서는 이와 대비되는 생기넘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회색 정장을 입고 서류 가방을 멘 척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하고 약간은 지루한 회사원을 상상하게 한다. 그러나 길거리에서 공연하는 드럼 소리에 맞춰 춤을 추는 순간, 그는 주변에 서있는 누구보다도 선명하고 강렬하게 생동감을 뿜어낸다. 길거리의 흔한 회색 배경같았던 그는 춤을 추며 마치 화려한 색상의 조명을 받은 것처럼 빛이 난다. 그가 내뿜는 빛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장소와 시간은 물론 주변의 시선과 타인의 경계, 척 자신과 세계의 경계 마저 허물어 버린 듯 춤에 몰입한 그의 모습은 삶의 찬란함이란 무엇인지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그려낸다.
마지막 장인 1막에서는 척의 어린시절이 그려진다. 이미 앞장에서 그의 이른 죽음을 알아버려서 그런지 어린 척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어린 시절에 부모를 사고로 잃고 할머니 마저 일찍 돌아가시는 등 그의 삶이 순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책을 마지막까지 읽고 척의 손에 있던 흉터의 의미를 깨달았을때에는 어린 척에게 연민이 아닌 존경심을 느꼈다. 저 작은 아이가 삶을 살아가기로 한 결심이 내가 보낸 동정보다 훨씬 굳건하고 강인해 보였기 때문이다. 예정된 비극을 마냥 기다리지 않기로 선택했기 때문에, 2막에서 보았던 찬란한 순간이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작가가 3막에서 시작해 2막, 1막으로 장의 순서를 배치한 것은 어쩌면 독자를 향한 카운트다운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예정되어 있고, 우리는 그 예정된 날을 향해 하루하루 다가가고 있으니까. 끝이 다가올 때 나는 관성적으로 일상을 보내는 세계의 주민이 될까 아니면 자신을 위한 춤을 추는 척이 될까. 삶의 마지막에 내 세계는 나에게 어떤 메세지를 보낼까. 그 끝이 내게도 다정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