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공간

<자기만의 방> - 버지니아 울프 독후감

DCT 프로필 DCT
2026-01-22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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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가 여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인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은 그녀가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여자대학에서 한 강연을 바탕으로 쓴 에세이다. 울프는 '왜 역사 속에 위대한 여성 작가가 거의 없었는가?' 그리고 '여성이 생각하고 창작할 수 있는 자유가 어떻게 억압되어 왔는가?'라는 질문을 깊이 있게 파고든다.
울프 자신의 경험이 토대가 된 이 에세이에서 가장 눈에 띄는 문장은 단연 이것이다. “여성이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연 500파운드의 수입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아마 많은 여성이 이 문장에서 발길을 멈추었을 것이다.
1930년대 영국의 500파운드는 어느 정도의 가치였을까? 당시 숙련 노동자의 연봉이 약 150~250파운드였고, 중산층 전문직 남성이 300~400파운드였다고 하니, 500파운드는 먹고사는 걱정 없이 창작에 몰두할 수 있는 꽤 여유로운 금액이었다. 울프 본인 역시 숙모에게 물려받은 상속 유산 덕분에 이 안정적인 고정 수입을 누릴 수 있었다.
지금도 그 정도의 경제적 자립이 보장된 삶이라면, 직장인인 나로서도 무척 부러운 일이다. 때때로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펴고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여유롭게 글 쓰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내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삶 속에서 오롯이 사유할 수 있는 공간을 갖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꿈꾸는 삶 아닐까.
지나온 나의 삶을 되짚어보면 여성으로서의 길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백 년 전 울프가 느꼈던 감정에 오늘날의 내가 공감한다는 사실이 서글프게 다가오기도 한다. 대학을 가고, 안정적인 직장을 얻고, 당연한 듯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살다 보니 어느덧 쉰이 넘었다.
그동안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을까? '여자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에 순응하며, 왜 그 선택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살아온 것은 아닐까. 이제 나는 울프의 문장을 나만의 방식으로 다시 써보려 한다.
“여성이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아가기 위해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독립된 소득과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한 최소한의 생각의 공간, 그리고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나만의 '방'을 짓고 있는 중이다. 거창한 집은 아니더라도, 매일 아침 플래너를 펼치며 "오늘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고민하는 시간만큼은 오롯이 나의 것이다. 잠들기 전, 하루의 발자취를 돌아보며 짧은 문장을 남기는 행위 또한 나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다.
물론 매일 완벽하게 써 내려가지는 못한다. 하지만 일상을 글로 옮기려는 이 시도 자체가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과정임을 믿는다. 500파운드의 수입과 물리적인 방이 당장 완벽하지 않더라도, 나는 이 짧은 기록의 시간들을 통해 나만의 단단한 성을 구축해 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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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A동 부사감 프로필 A동 부사감 | 7일 전
나만의 방, 나만의 성을 짓기 시작하셨다니 응원합니다. 그렇더라도 행여 그 안에 갇히진 마시길. 가끔은 활짝 문 열고 초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