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의 500파운드는 현재 얼마의 가치일까'라는 속물적인 생각부터 먼저 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글을 쓰고 있는 2026년 기준으로 약 4,500만 원이라고 한다. 매년 이 정도의 돈과 나만의 공간이 있다면 완벽한 경제적 자유를 얻은 것이 아닌가? 나라면 그저 내 인생을 즐겁게 살 궁리만 했을 것이다. 당장 미식, 여행, 사색, 독서, 그리고 미뤄놓은 드라마와 영화를 정주행하며 나만의 방에서 편리한 쾌락을 누리는 상상을 해본다.
그러나 그녀는 왜 여성의 권리를 위해 강연하고 글을 썼을까? 지금 내가 갈망하는 경제적 자유는, 여성이 충분히 누려야 할 권리보다 더 좁은 의미의 자유이기 때문 아닐까? 그녀는 진정한 자유를 위해 투쟁하고 항변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충분한 부를 가졌다고 해서, 나와 다음 세대가 겪을 불합리함을 알리고자 책을 쓰고 강연을 할 수 있을까? 솔직히 위에서 언급한 개인적인 욕망보다 공익을 먼저하지는 못할 것 같다.
그녀가 강연을 준비하며 편견과 차별이 만연한 수필과 서적들, 그 속에서 여성 혐오를 마주하며 얼마나 외롭고 지쳤을지 생각해 본다. 많은 책을 읽은 것은 아니지만, 책을 읽으면서 그녀만큼 분노를 느낀 적은 없기 때문이다. 운 좋게도 나는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좋은 책들을 더 많이 접할 수 있었고, 혐오 서적에(성차별과 모든 차별을 말하는) 노출되지 않았다. 이런 행운은 그녀와 같은 사람들의 노력이 만든 결과가 아닐까?
누군가의 노력으로 좋은 책을 읽으며, '책은 당연히 아름다운 것이야!!'라고 믿어왔던 것에 미안한 마음이 피어오른다.
오늘날 대부분의 책이 진실과 호기심, 아름다움을 말하고, 이 책을 읽지 않는다면 '블루스타킹'이라는 단어를 평생 모르고 살 수 있는 세상이 온 것에 고마움을 느낀다.
작가가 원했던 것처럼, 인류의 다른 절반에 대해 조금씩 새로운 태도를 더해나가는 것으로 그녀에게 작은 위로를 건네고 싶다.
작가가 원했던 것처럼, 인류의 다른 절반에 대해 조금씩 새로운 태도를 더해나가는 것으로 그녀에게 작은 위로를 건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