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캠프 단상

더듬이 프로필 더듬이
2026-06-08 07:18 (수정됨)
백로였을까. 두루미보다는 작았고 황새보다는 큰 것 같았다. 드넓게 펼쳐진 옅은 하늘색 아침 하늘 위로 양 날개를 활짝 펼친 채 아주 느리게 유영하듯 비행하는 새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마치 한 대의 행글라이더처럼 날개는 미동도 없이 고요히 상공의 기류를 타고 있었다. 순간 빨려든 듯 사로잡힌 내 시선은 그 유유자적한 새의 궤적을 따라 갔고 내 마음도 덩달아 창공 속으로 둥실둥실 떠 가는 것 같았다. 잠시 넋이 나간 듯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기만 했고, 지나서 기억해 보니 무아지경에 빠진 듯했다. 계속해서 이쪽으로 날아 머리 위로 지나갈 것 같았던 새는 아주 조금 살짝 몸을 트는가 싶더니 부드럽게 유턴을 했다. (군더더기 없는 몸매와 다리에 솜털처럼 가벼운 날개를 가졌기에 가능한 동작이다. 육중한 재질과 몸체에 고속 질주하는 항공기로서는 관성을 이기지 못해 도무지 불가능할 선회다.) 그러고는 오던 항로를 따라 미끄러지듯 이번에도 아주 느긋이 날아갔다. 다시 내 시선도 천천히 따라 이동했음은 물론이고. 새는 인근의 산 숲 쪽으로 서서히 하강하는가 싶더니 홀연히 그 속 어딘가로 사라졌다. 녀석도 아침 산책을 나왔던 걸까.

<장자> 제물론(齊物論)에 금자오상아(今者吾喪我)라는 표현이 나온다. 나는 나를 '잃었다'는 뜻이다. 그때 내가 그랬다.

이번 북캠프에서 또 한 편의 추도사를 썼다. 나는 나를 장사 지내고 왔다. 때가 되면 반복하는 일이다. 홀가분하다.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추억이 깃든 장소여서 아직도 이곳에서 배나무를 심고 기르고 때가 되면 손수 과실을 딴다는 아저씨의 숨은 사연을 이번에야 알게 되었다. 변하는 것은 무엇이고, 그런 중에도 지속되는 것은 무엇이며, 맨끝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바람결에 흔들리며 은은히 울려 퍼지던 풍경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나는 왜 하늘을 나는 새에게 매료될까.
고대 이집트의 무덤 벽화나 석관 같은 유물에 보면 사람의 심장을 저울질하는 의식을 그린 장면이 나온다. 예전에 런던 대영박물관에서 직접 본 적도 있다. 당시 이집트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누구나 심판을 받게 된다고 믿었다. 그 방식에 새의 깃털이 등장한다는 상상이 흥미롭다. 죽은 사람의 심장을 양팔 저울에 달아 깃털보다 가벼우면 영원한 안식처인 사후 세계로 들여보내지는 반면 더 무거우면 괴물 아밋에게 잡아먹혀 영원한 망각의 세계로 떨어진다고 믿었다고 한다. 깃털은 우주의 질서를 관장하는 진실과 정의의 여신 마아트를 상징했다. 
심장이 무겁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새는 저토록 훨훨 날아 높이 멀리 이동할 수 있는데 인간은 그럴 수 없는 것은 심장이 비대해졌기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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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문집사 프로필 문집사 | 1개월 전
자연은 군더더기가 없는 것 같습니다. 가진 것이 없으니 지킬 것도 없고요(물론 목숨은 지키고 자손은 번성시켜야 하지만).
갈수록 단순한 삶을 동경하고 실천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변하는 것은 무엇이고, 그런 중에도 지속되는 것은 무엇이며, 맨끝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죽음을 생각해보는 것은 맨끝에 무엇을 남기고 싶은지에 생각할 때 가장 좋은 도구인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추도사가 의미가 있었고요.
좋은 밤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