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의 나였다면 [북캠프 단상을 가장한 사담-]

문집사 프로필 문집사
2026-06-08 20:49 (수정됨)
어제 북캠프가 끝나고 기분이 무척이나 충만했다.
저녁에 일을 하러 사무실로 왔지만, 사실 감정을 정리하느라고 일은 거의 하지 못했다.
다만, 일을 할 예열과 풀지 못한 문제 하나를 풀었다(그것만 해도 출근한 값은 충분히 했다고 생각한다👍).

감정의 강도로 따지면 북캠프 전체보다 G님이랑 떨었던 수다가 더 깊은 잔향을 남겼다.
어제 G님과 카풀한 차 뒷자리에서 내내 수다를 떨면서 갔다.
뽀송하고 말랑하고 따뜻한 대화였다.
마치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수다떨던 기억과 비슷했다.

고등학교 2-3학년 때 유일하게 시간이 나던 일요일 저녁에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걸었다.
(평일에는 밤 11시에 학원이 끝나고 토요일은 밤에 끝났지만, 일요일은 저녁 6시에 끝났다)
지방 소도시에서 고등학교를 나와서 걸어서 산책하며 데려다줄 수 있었다.
친구들은 대부분 시내 가까이에 살았는데,
총 거리를 합치면 걸어서 학원에서 집까지 2시간 정도면 갈 수 있어서 적절한 동선을 정해
5-6명이 같이 걸으며 서로를 데려다주었다.
산책할수록 점차 인원이 줄어들고 한 명이 남으면 그 사람은 혼자 집에 갔다.
펭귄이 원 모양으로 모여 추위를 피할 때 가장자리에 있는 순서를 바꿔주듯, 혼자 집에 가는 순서는 산책마다 바꿔주었다.
앉아서 얘기할 때보다 걸으며 얘기할 때 훨씬 좋은 얘기가 나왔다.
별 탈 없이 사춘기를 무사히 넘기게 된 계기는 그 시간들이 주효했다.

또 베프였던 친구 I군과 교환노트를 하게 된 이벤트도 생각이 났다.
고등학교 2학년 광복절에 시카프(만화관련된 박람회로 coex에서 했음)를 보러 I군과 서울로 갔다.
모든 미대지망인의 희망인 홍대 구경을 하고 시카프를 보고 나서 저녁이 되어 고속터미널로 갔는데 표가 없었다.
기차를 타러 노량진역으로 갔는데 집으로 가는 기차는 없는 줄 알고(기차는 시간표에 종점역으로만 표시됨) 발길을 고속터미널로 되돌렸다.
집에다가 차를 놓쳤다고 전화를 한 뒤, I군과 노숙을 하기로 하고 근처를 물색했다. 여름이라 다행이었다.
고속터미널 근처의 놀이터 그네에 자리잡고 얘기를 했다. 오렌지빛 가로등 불빛이 기억에 남는다.
각자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을 시작으로 무척이나 길고 깊게 얘기했다.
그러다가 경비원 아저씨께 쫒겨나서 고속터미널로 갔다.
나는 의자 위에 웅크려서 I군은 의자 위에 누워서 잤다.
새벽이 되어 같이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왔다. 다행히 많이 혼나지는 않았다.
한동안 내 비밀번호 네 자리는 늘 0815(광복절)였다.

그후로 정리되지 않은 뭔가가 마음에 있어서
나는 총 3장짜리 편지를 일주일 뒤에 I군에게 건냈고, 받자 마자 I군은 가방에서 무려 반 권 분량의 편지를 쓴 노트를 줬다(물론 빽빽히 채우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교환 노트의 서막이었다.
3권인가 우리는 교환노트를 썼다.
G님께 교환노트를 써서 드리고 싶은 기분이다(👈이 얘기를 하려고 이 긴 얘기를 쓴거다).
(당시 교환노트는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약간의 유행이었는데, 같은 학교의 H양과도 교환노트를 썼다. 맨날 쓰다 보니, 점차 창의적인 방식으로 썼는데. 검정색 종이에 금색 볼펜으로 쓰기도 하고. 노트를 칸대로 오리고 끝을 카세트테이프로 이어 붙여서 테이프 모양으로 돌돌 말아 쓰기도 했다)

오늘 북캠프 단체 카톡에 사진이 올라왔다.
다들 너무 귀여웠다. :) 너무 그리고 싶었다.
10년 전의 나였다면, 분명히 감상을 만화로 그려서 스캔해서 업로드했을 것이다.
한 명씩 캐릭터 이름도 지어주고 내가 느낀 성격과 특징,
그곳에서 느낀 것도 적었을 것이다.
오늘의 나는 아이패드도 있는데, 그걸 그릴 시간이 없다.
내일 미팅이 있는데 준비를 못했다. 지금은 너무 피곤하다. 내일의 내가 새벽에 일어나서 어떻게든 하겠지.
돈받는 일은 좌우지간 하니깐.
하지만 오늘 발견한 볼거리 <저궤도인간> 링크 탭을 닫지 못하고 있는 나. 케케. 어른이 도대체 언제 되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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